[특파원 리포트] 日 헬기 추락과 음모론
일본 육상 자위대 사카모토 유이치 제8사단장의 사망이 21일 확인됐다. 지난 6일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宮古島) 인근에서 사카모토 사단장을 태운 자위대 헬리콥터가 행방불명된 지 15일 만이다. 당시 헬기는 지상 통제 센터와 ‘이상 없음’이라는 무선 통신을 남긴 지 2분 뒤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사카모토 사단장은 류쿠쇼(陸將)로, 육상 자위대 최고 계급이다. 우리나라의 대장이나 중장에 해당한다. 같은 헬기엔 8사단 최고 간부 5명이 탑승했다. 제8사단은 대만 유사 사태 시 난세이제도(南西諸島)에서 군사 활동을 전개하는 기동 사단이다.
중국에는 눈엣가시 같은 8사단의 지휘부가 한꺼번에 사망한 것이다. 때마침 중국 항공모함이 사고 하루 전날 난세이제도를 지나갔다. 인터넷에선 ‘중국의 미사일·전파방해 공격설’ ‘일본 정부 은폐설’이 들끓었다. ‘주변서 검은 연기를 본 어부가 있다’는 증언까지 온라인에 등장했다.
음모론과 벌이는 싸움에서 정권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다. 의혹 제기는 쉽지만 반증할 과학적 근거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여기에 여당이 음모론에 흔들릴수록 득을 보는 야당의 정치적 이해까지 더해지기 마련이다. 음모론이 일본 사회를 뒤흔들기엔 완벽에 가까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인 기시다 내각에 비판적인 마이니치신문·아사히신문은 달랐다. 음모론이 절정에 달한 11일, 아사히신문은 ‘헬기 사고가 공격이 아닌 이유’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방위성을 인용해 ‘폭발음이 없었고, 주변에 접근한 비행 물체도 없었으며 방해 전파가 확인된 게 없다’며 음모론을 반박했다. 마이니치신문은 14일 ‘검은 연기가 올라왔다는 사진이 (인터넷에) 있지만, 촬영자의 증언에 따르면 촬영 시간이 사고 2시간 뒤인 오후 6시로 확인됐고 연기를 사고와 연결할 근거는 없다’고 보도했다.
같은 편으로 여겨지는 두 신문의 논조 덕분일까. 야당에선 헬기 사고 다음 날, 대정부 질의 때 한 차례 중국군 연관설을 언급한 이후, 음모론을 부추기는 발언을 일제히 삼갔다. 일본 야당은 자위대가 사고 일주일 동안 수색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을 때도 비난하지 않았다. 자위대는 13일에야 헬기 기체를 해저에서 발견해 6명의 행불자를 확인했지만 4명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북한의 어뢰에 침몰당한 천안함은 여전히 자침설·암초설·유실기뢰설과 같은 음모론에서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9년이 지난 세월호 사고의 원인으로 잠수함 충돌설을 믿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게 현실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음모론을 진실일 가능성이 큰 팩트(fact)인 양 보도한 뉴스와 정치인들의 발언이 적지 않았다. 음모론 탓에 우리 사회가 치른 혼란의 대가는 감히 따지기조차 힘들다. ‘일본의 진보 언론이 부럽다’고 하면 너무 솔직한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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