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워킹맘은 죄인인가

기자 2023. 4. 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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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후 괴롭힘과 극단 선택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들의 희생 언제까지 방치할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지난 4월20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대기업 여성노동자 사망과 유가족의 고소사건(“워킹맘이라 차별” 네이버 직원 극단선택…노동부 수사 착수)은 한국 사회에서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여성들이 처한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지난해 9월 당사자가 세상을 떠났고 올해 3월 유가족이 고소를 제기한 이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고 결과가 어떠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비보(悲報)임은 틀림없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워킹맘은 죄인인가. 그가 남긴 카톡의 한 구절이다. 육아휴직 후 괴롭힘을 겪으며 어린아이를 비롯한 가족을 두고 세상을 떠날 만큼 힘들고 절망적이었을 상황에 어떤 애도의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라는 인간적 조건이 ‘삼류 직원’쯤으로 치부되는 일터에서 모욕과 좌절을 견디며 안간힘을 쓰는 여성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느꼈을 심정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제도는 한국 사회에도 여럿이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임신기 태아검진휴가와 근로시간 단축 등등. 그러나 이 제도들이 실제로 일터에서 얼마나 이용되고 있는지, 이용자들에게 불이익은 없는지 따져보면 사정은 복잡하다. 출산휴가를 제외하면 사용률은 물론 제도의 인지도조차 매우 낮다. 이런 제도들을 사용하는 여성들은 ‘모성페널티’, 임신과 출산·육아를 수행하는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불이익과 차별에 직면하기 쉽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 일하고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일 이외에 다른 생활상의 책임이 면제된 사람을 이상적인 노동자로 여기는 조직 속에서 워킹맘들은 매우 이질적인 존재들이다. 인사고과나 승진, 임금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제도가 육아휴직이다.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둔 남녀 노동자들에게 1년간 주어지는 휴직의 권리이지만, 실제로는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로 50인 이하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찾는 서울시 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의 상담사례집에 따르면, 2022년 이뤄진 상담의 74.1%(3372건)가 임신·출산·육아기 노동권에 관련된 것이고, 그중 육아휴직 관련 상담이 62.6%(2112건)로 가장 많았다. 내용을 보면, 육아휴직을 신청한 노동자에게 해고나 권고사직 또는 자진퇴사를 요구하는 경우, 휴직 후 출근한 노동자에게 업무를 주지 않거나 원치 않는 부서로 전보발령하는 경우, 재택근무로 전환시켜 부서 회의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있었다. 영세사업장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넘겨버릴 수도 없는 것이 대기업이나 전문직종에서도 이런 사태는 종종 발생한다.

육아휴직이 모성페널티를 불러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첫째, 회사의 조직문화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회사에서 그들이 처한 이질적 조건을 인정하고 돌봄의 가치를 조직문화 속에 수용하려는 노력과 변화를 위한 최고위 경영진의 인식이 중요하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둘째, 육아휴직으로 인한 회사와 노동자들의 부담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육아휴직자의 증가는 인력 부족이나 업무성과 감소 같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또 동료 노동자들이 육아휴직자의 몫을 대신해야 하는 경우 노동자들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은 ‘특혜’를 받는 사람이며, 그들의 몫을 대신하는 노동자들은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 결과 육아휴직 후 복귀한 노동자들은 여러가지 불이익에 직면하기 쉽다. 이 문제는 개별 기업이나 노동자들의 의지로 해소될 수 없으며, 결국 국가 제도와 사회적 실천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셋째, 양육에서의 성별 불평등이다. 2021년 ‘양성평등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부양과 돌봄에서 부부가 동등하게 책임을 지고 있다는 비율은 16.4%에 불과했다. 또 같은 해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가족은 36만8548가구로 이 중 다수가 여성 한부모 가족이었다. 두부모 가족이든, 한부모 가족이든 워킹맘들의 희생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합계출산율 0.7로 치닫는 사회에서 워킹맘의 존재 의미는 역설할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열쇠를 쥔 집단이 신음하고 있다. 육아휴직 후 괴롭힘과 노동자의 극단적 선택은 산업재해이며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워킹맘들의 희생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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