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2023청년보고서 '희망 금지'
◀ VCR ▶
화장실 하나 달린 5제곱미터 남짓한 단칸방.
냄비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바닥에는 빈 소주병들이 나뒹굽니다.
1964년생, 올해 쉰여덟인 이 방 주인이 이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죽음은 냄새가 퍼지고 나서야 드러났습니다.
[이웃주민] "막 이렇게 썩는 냄새가 나고 막 그랬거든요. <그럼 그게 한 며칠 정도‥언제부터?> "벌써 한 20일 정도 됐나?" <여기 사시는 분 실제로 못 보신지 꽤 되셨어요?> "네 우리는 근데 왔다 갔다 해도 잘 안 보고 사니까‥"
취약계층을 위한 LH임대주택에 살았던 걸 보면 고인의 형편은 넉넉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인이 메고 다녔을 배낭을 열자 목장갑과 흙 묻은 신발이 나옵니다.
"뭔가 작업하러 다니셨던 것 같아"
고된 삶을 달래는 버팀목이었을까요?
기타와 건반, 여러 번 본 듯한 영어 단어장과 일본어 회화책이 함께 발견됐습니다.
◀ 앵커 ▶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스트레이트> 진행을 맡게 된 이휘준입니다.
저희 탐사기획 스트레이트가 6년째를 맞이했습니다.
저도 시청자로서 함께 응원을 했었는데요.
앞으로는 여러분의 눈으로 함께 물어보고 답변도 찾아보겠습니다.
오늘은 스튜디오에 서유정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서 기자, 앞서 영상을 봤는데요.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 기자 ▶
처음에는 심한 냄새 때문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고인의 삶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뉴스에서도 종종 보셨을 텐데요.
고독사 현장입니다.
◀ 앵커 ▶
고독사 고독사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나요.
◀ 기자 ▶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고 뒤늦게 발견된 경우를 말합니다.
◀ 앵커 ▶
뒤늦게라면 뒤늦게라는 게 기준이 있는 건가요.
◀ 기자 ▶
경찰은 사망한 지 72시간 그러니까 사흘이 지나서 발견되면 고독사로 보고 있습니다.
보통 고독사라고 하면 노인들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요.
저희가 주목한 것은 2030대 청년들의 고독사입니다.
◀ 앵커 ▶
청년들이 고독사를 한다.
청년들은 사회 활동도 많이 하고 또 친구들도 많이 만나는 시기잖아요.
고독사가 저는 좀 드물 것 같거든요.
◀ 기자 ▶
그렇지 않았습니다.
청년들의 고독사가 너무 많습니다.
오늘 스트레이트는 지금 청년 세대들이 겪고 있는 암울한 현실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 VCR ▶
인천 미추홀구의 한 오피스텔입니다.
문 앞에 뜯지도 않은 생수 두 묶음이 놓여 있습니다.
초인종 옆에는 연락이 안 된다며 전화 달라는 집주인의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유품처리업체 직원들과 안에 들어가 봤습니다.
숨이 멎은 채 누워있는 반려견이 눈에 띕니다.
온몸이 굳었습니다.
주인은 30대 초반 여성이었습니다.
옷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체납 고지서들이 한가득입니다.
2만원 넘는 도시가스요금, 4천원 남짓한 전기요금도 밀린 적이 있습니다.
월세도 밀렸습니다.
[집주인] "그때 두 달 정도는 밀렸는데 한 달인가?" <포스트잇 붙여 놓으신 건 월세 한 달 정도 밀렸을 때 붙여 놓으신 거예요?> "전화가 안 되니까‥"
건강보험료를 보니 1만 4천 원 정도입니다.
연소득 1백만 원도 안 되는 최저소득계층이 내는 돈입니다.
뒤늦게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지만 "바쁘다"며 유품을 챙겨가지는 않았습니다.
[유품정리업체] "다 버렸어요." <유품을 가져간 게 없어요, 그러면?> "다 버리라고 하시더라고요. 냄새나서 못 쓰고 그러니까‥"
유품정리업체의 창고를 찾았습니다.
유족들이 없거나 있어도 찾아가지 않은 유품들이 모여있습니다.
구석 한 켠 선반에는 주민등록증이 쌓여 있습니다.
5년 동안 모인 게 모두 14장입니다.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니, 앳된 얼굴들이 많습니다.
<이것도 다 돌아가신 분들 주민등록증이에요?> "네, 맞습니다." <83, 87‥99년생이에요?> "네네" <이분은 청소년증? 이분은 혹시 언제 돌아가셨는지 기억하세요?> "한 2년 전쯤?" <이분도 98년생, 91년생‥다 90년대생인데‥>
1980년대생이 6명, 90년대생이 5명, 이렇게 이삼십대가 14명 가운데 11명입니다.
[길해용/유품정리업체 대표] "20, 30대 청년 고독사가 많아진 건 사실이에요. 예전 같았으면 이제 '저희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저희 형님이 돌아가셔서' 이런 식으로 연락이 왔으면, 지금은 '제 동생이 사망을 했는데', '저희 아들이 자살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늘어난 거예요."
유품정리업체가 촬영한 고독사 현장을 보면 청년들이 어디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좁은 원룸이나 고시원에서 지냈습니다.
살림살이는 침대 하나, TV 하나가 전부입니다.
비닐봉지 하나면 충분히 다 담을 만큼 옷도 많지 않습니다.
식사는 컵라면이나 즉석밥 같은 간편 식품으로 때웠습니다.
그래도 취업용 수험서는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길해용/유품정리업체 대표] "강제적인 '미니멀 라이프'라고 해야 되나? 그러니까 진짜 그냥 공부를 위해서 산 흔적들. 음식을 해 먹은 흔적도 사실 거의 없고, 배달이라든가 편의점, 그런 음식이라든가 이런 부분밖에 없고 취업을 하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들? 아니면 옷 몇 벌‥"
급여 200만 원, 숙식가능자, 농사 경험자, 경비, 미화.
깨알 같은 글씨로 구인 조건을 적어놓은 수첩에서 일자리를 찾느라 애쓰던 절박함이 묻어납니다.
빚에 허덕일 정도로 돈에 쪼들렸지만 취업의 벽은 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용정보 이런 데서 온 거 보면 뭐라고 해야 되죠?> "아마 신용불량‥이런 문제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코로나 19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구찬모/유품정리업체 대표] "너무 많아졌어요. 코로나 전과 코로나 후의 상황은 진짜 2.5배? 3.5배가 늘어난 것 같아요. 첫째로 경제적인 고립 그리고 또 우울증이나 은둔형 환자들이 좀 많은 것 같아요."
◀ 앵커 ▶
90년대생이면 20대거나 많아야 30대 초반인 거잖아요.
◀ 기자 ▶ 그렇죠 사실 청년 고독사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늘긴 했지만 외롭게 세상을 등진 청년들은 쭉 있었습니다.
◀ 앵커 ▶
그동안 보이지 않았을 뿐인 거군요.
◀ 기자 ▶
고독사 현장을 100곳 넘게 경험한 한 경찰관이 최근 책까지 펴냈는데요.
◀ 앵커 ▶
가져온 이 책인가요?
◀ 기자 ▶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쓴 경찰관을 따라가 봤습니다.
◀ VCR ▶
부산 영도구의 한 옥탑방.
지난 2018년, 여기에 살던 스물아홉 살 청년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웃들은 그제서야 방 주인을 알게 됐습니다.
[이웃 주민] "죽었다는 소문만 듣고 우리가 알았지, 누가 사는가도 몰라‥'자살을 했다' 말하는 게 있던데."
이 청년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는 고독사 현장을 수사해온 경찰관도 있습니다.
[권종호/부산 영도경찰서 경위] "집주인이 (신고)했어요. 월세가 안 나오니까, 거기에 대해서 안 나오니까 가본 거죠. 가보니까 냄새가 나고 좀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신고를 했죠. 신고를 해서 저희들이 현장에 왔고, 가보니까 이렇게 사망한 상태였죠. 시신의 상태를 봐서는 최소한 두세 달 정도는 넘어갔다고 봐요."
당시 옥탑방에는 쓰다 만 이력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권종호/부산 영도경찰서 경위] "이력서를 또 쓰기 위해서 있었고, 보통 아르바이트 정도로 이렇게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살았죠. 열심히 사니까 그 벽을 느끼는 거죠."
냉장고는 비어 있고, 밥을 먹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바닥에 담요와 전기장판, 두터운 겨울 외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지만 한쪽 벽에는 유독 깨끗한 양복 한 벌이 걸려 있었습니다.
[권종호/부산 영도경찰서 경위] "부모님이 계셨고, 제 기억으로는 거기에 양복이 있었어요. 그 양복을 주니까 차라리 크게 꺼이꺼이 통곡이나 하셨으면 좀 나은데‥그 흐느낌이 비수 같아요. 진짜요‥"
경찰 생활 30년, 이렇게 겪은 고독사 현장만 100건이 넘습니다.
그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그 죽음들을 기록해 책으로 펴냈습니다.
곳곳에 그들의 외침이 실렸습니다.
"20년 혼자 살아온 무연고자입니다. 은행에 돈이 있으니 구청에서 화장 처리 비용으로 사용해 주세요. 경찰관님. 저는 혼자 살다 혼자 가는 것이니 제발 오지도 않을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마세요."
특히 청년들의 죽음이 눈에 밟혔다고 합니다.
[권종호/부산 영도경찰서 경위] "오직 눈물만 나요. 왜? 너희들 아직까지 피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쓴맛을 알아서 이렇게? 그리고 내가, 기성세대가 뭔가를 해준 게 없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눈물만 나는 거예요."
정부가 지난해 처음으로 고독사에 대한 공식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고독사한 사람은 1만 5천 명이 넘습니다.
한 해 평균 3천 명이 넘는데, 계속 늘고 있습니다.
오륙십대가 절반 이상입니다.
스트레이트가 주목한 건 2030 청년들이었습니다.
해마다 2백 명 이상 쓸쓸한 죽음을 맞습니다.
절반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다른 연령대보다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백종우/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 30대는 사망할 질환이 없어요. 그래서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40세 이하에서 사망했다' 그러면, 무조건 40%가 자살입니다. 20, 30대가 사망을 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특이한 일이죠.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청년 고독사를 보면 전문가들이 꼽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취업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 형편이 어렵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관계도 끊어집니다.
결국 사회적으로 혼자 고립됩니다.
[김재열/사람을 세우는 사람들 대표] "심리적인 압박감, 또 사회적인 죄책감, 또 사회적인 고립감 때문에 자기 자신의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러면 그 안에서 우울증도 생길 수 있고‥악순환되다 보면 언젠가는 '나는 안 되겠구나.' 그러면 결국 내가 탈출할 곳은 없죠.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으니까‥"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 716만 6천 가구, 전체 가구의 3분의 1입니다.
이 가운데 3분의 1이 30대 이하 청년들입니다.
260만 명이 넘습니다.
혼자 사는 청년들의 절반은 물리적, 정서적 고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권종호/부산 영도경찰서 경위] "청년 고독사 현장에는요, 지갑에 돈 천 원 하나 없습니다. 그게 이해를 못 하시겠지만, 진짜 천 원이 없어요. 걔네들이 주머니에 5만 원 또는 다음 달 방값이라도 낼 돈이 있었다면 걔네들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았을 겁니다."
◀ 앵커 ▶
"주머니에 5만 원만 있었어도 쉽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이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해마다 고독사하는 청년들이 드러난 것만 200명이 넘는 거면 잠재적으로 위험을 안고 있는 청년들은 훨씬 더 많다는 거잖아요.
◀ 기자 ▶
가족과 친구 또 직장과 지역사회와 단절된 것을 사회적 고립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고립이 깊어질수록 위험은 더 커집니다.
고립을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고립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VCR ▶
지난해 유튜브에 한 청년이 올린 영상입니다.
"저는 현재 수급자 탈출을 위해 공공근로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이런 일은 누가 하는지 줄 몰랐는데 다 저 같은 사람들이 하는 거였습니다."
영상에 붙인 해시태그는 '기초수급자'와 '흙수저', '우울증'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햄을 먹고, 책상, 침대, 전자레인지 같은 살림살이는 모두 무료 나눔을 받아 하나씩 채워갑니다.
하루하루를 담담히 일기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상의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이름도, 나이도 공개를 꺼리면서 1990년대생이라고만 했습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아버지는 옛날에 사업하다가 사기당해서 파산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청소일 같은 걸 하시는데 따로 사시고, 자기 입에 풀칠하기 바쁘신데‥"
가족의 도움 없이 취업에 도전한 지 올해 5년째입니다.
기회가 올 때마다 이력서를 냈지만 매번 퇴짜를 맞았습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경력을 조금 더 쌓고 오면 어떻겠냐'고 메일로 답변을 줬거든요. 거기가 최종면접까지 갔었는데 떨어져서‥" <너무 아쉬웠겠다. 또 한 번 좌절하셨을 것 같은데?> "모집 공고 같은 거 봤을 때 경력자를 선호한다는 그런 얘기가 있어서, 경력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냐고‥"
지금은 공공근로 사업에 참여해 한 달에 130만 원을 법니다.
도로 보수, 제설함 정리, 폐자전거 수집 같은 일입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지금 이제 4개월 차 됐어요. 조금 있으면 이제 끝나요. 다 줄였는데 여기서 식비밖에 더 줄일 게 없거든요. 지금 찬장에 보면 라면으로 꽉 차 있고 국수, 싸고 양 많은 것들‥"
냉장고는 텅 비었습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음료수 같은 거라도 조금 넣어놓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비싸잖아요. 물만 많이 먹어요. 물도 안 사다 먹었었어요, 원래 수돗물 먹었는데‥"
밥은 정부 지원 쌀로 지어먹지만 반찬은 틈틈이 모아둔 라면 스프가 전부입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라면 먹을 때 조금씩 모아놓은 거, 그냥 밥 말아 먹거나"
행운이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취약계층에게 우선권을 주는 로또 판매점 운영권에 당첨된 겁니다.
하지만 희망은 곧 좌절로 변했습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이걸 차리려면, 보증금 3천만 원짜리 월세로 건물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자기 자본금 50%는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렇게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수급자 안 하고 제가 딴 거 하고 살았겠죠."
가난은 오랜 인연도 멀리하게 했습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돈이 있어야 사람을 만나죠. 무조건 만나면 돈이 나가는데. 그래서 제가 연락을 끊고‥"
고립감은 공포처럼 커졌습니다.
고독사라도 하면 자기가 누군지 못 알아볼까봐 신분증뿐만 아니라 군번줄도 습관처럼 챙깁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고독사에 관련된 다큐를 많이 봤는데 연락이 단절되고 우울증이 오고, 집에서만 이렇게 생활하다가 어느 순간 '돌아가셨다' 하면서 그런 걸 봤는데 사실 그게 남 일 같지가 않더라고요."
유튜버에 올리는 영상은 "나 여기 살아있다"고 세상에 알리는 일종의 생존 신호입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유튜브를 시작한 것도 제가 살아있음을 좀 어떻게 알리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네, 그런 의도에서 시작한 것도 있어요"
기초생활수급자는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삼십대 청년들 가운데 이런 기초생활수급자가 26만 명입니다.
10년 전보다 50% 넘게 늘었습니다.
한창 일할 때인데 취업의 벽을 넘지 못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홀로서지 못한 청년들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 겁니다.
세대 간 벽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나 때는 안 그랬다"며 부모 세대가 청년들의 어려움을 몰라주다 보니 좌절감은 더 커집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내내 일자리를 찾고 있는 이 청년은 혼자만의 공간에 자신을 가뒀습니다.
[양권호 (가명)] "방의 커튼을 걷은 기억이 거의 없다. 방 안에 햇빛이 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립이란 게 그런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 상태였다. 도와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고, 도움을 요청할 방법조차 몰랐으며 도움을 청해도 되는 건지 헷갈렸다."
이제는 방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버겁습니다.
부모도 기댈만한 든든한 언덕이 아니었습니다.
[양권호 (가명)] "가족과 단절이 아무래도 조금 컸던 것 같아요. 심리적으로 의지할 곳이나, 아니면 소통할 창구가 전혀 없었거든요. '중·고등학교 멀쩡히 다녀놓고 대학 가서 갑자기 왜 이러니?' 아니면 '너는 그냥 게으른 것 같은데 조금 부지런히 살아보지 그러니?'"
가슴에 쌓인 상처는 병이 돼 최근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양권호 (가명)]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 제가 살아있는 게 스스로도 놀랍듯이, 앞으로도 살아있어 봤으면 좋겠네요."
◀ 앵커 ▶
경제적인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부모 세대와의 벽도 참 높아 보입니다.
이런 사회적 고립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라면서요.
◀ 기자 ▶
영국 정부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전담 부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말로 하면 외로움부 정도가 될 것 같은데요.
고독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 문제로 본 겁니다.
왕세자 부부까지 나설 정도입니다.
[윌리엄-캐서린 왕세자 부부 (영국 왕실 라디오, 작년 5월 13일)] "지난 2년은 정말 우리에게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줬습니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아는 누군가가 외롭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그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그들 집의 문을 두드리세요."
◀ 앵커 ▶
최근에 일본도 고독부 장관을 임명했다.
이런 뉴스를 제가 본 적이 있거든요.
우리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요.
◀ 기자 ▶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심리 상담이나 식품 쿠폰 지급 정도입니다.
◀ 앵커 ▶
저는 그 정도로 청년들의 문제가 해결이 될지 의문이 들거든요.
◀ 기자 ▶
취재하면서 만난 청년들은 한목소리로 출발선부터 다른 현실을 짚었습니다.
청년들은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VCR ▶
[남덕우/당시 재무부장관 (대한뉴스, 1970년 1월 17일)] "저축이나 채권에는 현재 28% 이상의 고금리가 붙고있습니다."
1970년대, 은행에 돈만 넣어둬도 20% 넘는 이자가 붙었습니다.
[서정숙/주부 (대한뉴스, 1970년 09월 12일)] "월급에서 매달 30% 떼어서 저금을 하고, 또 우리 온 가족이 검소한 생활을 한 결과 이렇게 집도 마련하고."
두자릿수 금리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경제 성장율도 두자릿수를 넘나든 고도성장기, 가난했지만 일자리는 넘쳤습니다.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옛날 이야기입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황금기였다고 그러죠. '몇 년 동안만 돈 모으면 집도 살 수 있는 시기였다'고 그러고, '대학 등록금 같은 것도 한 달 바짝 어디 막노동 같은데 나가면 그걸로 일해서 돈 냈다' 이런 소리도 하더라고요. 이제 뭐 그분들도 나름 열심히 살아오셨겠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죠."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성장률은 1%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이제는 근로소득이 아니라, 아파트, 땅, 주식, 코인같은 자산이 돈을 불립니다.
코로나 이후 풀린 막대한 돈 때문에 자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열심히 일해 번 돈만으로는 내집 마련은 어림도 없습니다.
무주택자와 다주택자 사이 자산 격차는 지난 4년간 19배까지 벌어졌습니다.
격차는 대물림됩니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누구는 금수저, 내지는 더 나아가서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누구는 구리수저 아니면 그것도 안 되는 수저로 비하하거나, 아니면 그런 좌절감을 표현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들이 보는 미래는 그만큼 불투명하고 여러 점에서 불안정하다 보니까 큰 가위에 눌린 그런 청년 세대‥"
스물세 살 이지수 씨는 휴학생입니다.
약학대학원을 목표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지난해 2학년까지만 마쳤습니다.
국가장학금으로 학비는 근근이 해결했지만 지독한 생활고를 버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 청주에 머물며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지수(가명)/대학 휴학생] "매번 쪼들리고 매번 벌어서 쓰고 그런 게 아니라 조금 넉넉히 갖춰 놓은 상태에서 학교 다니면서 돈에 스트레스 안 받고 그냥 딱 공부만 하고 싶어서‥"
지수 씨는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홀어머니와 지수 씨 남매 세 가족은 그동안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으로 생활해왔습니다.
지금도 친구 집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학교가 지원한 즉석밥과 간편 식품도 생활비에 보탬이 됩니다.
사다 먹을 때는 먼저 가격에 눈이 갑니다.
[이지수(가명)/대학 휴학생] "양배추 같은 게 저렴해서 한 통에 990원밖에 안 하니까 그냥 한 통 사가서 이렇게 소분해서 먹으면‥"
하지만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자신과 달랐습니다.
[이지수(가명)/대학 휴학생] "고등학교랑 다르게 이제 친구들이랑 차이 나는 게 체감이 되잖아요. 고등학교 때는 교복만 입고 같은 급식 먹고 이러는데. 학식이 한 4,500원 정도였는데, 그것도 전 비싸다고 느꼈거든요. 근데 학식 맛없다고 앞에 나가서 먹으면 다 1만 원이잖아요 한 끼에. 근데 그거 아무렇지 않게 먹고 밥 먹었으니까 카페에서 또 케이크 하나, 음료 하나 시키면 그것도 1만 원이고‥"
지수 씨 컴퓨터 화면에는 상장들이 가득합니다.
그동안 노력의 증거들입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면 공부, 봉사면 봉사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은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지수(가명)/대학 휴학생] "뼈 빠져라 일해도 집을 자가로 마련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주거가 갖춰지지 않으면 다른 것들도 흔들리기 마련이라 생각해서 애초에 기대도 없고 그냥 포기한 상태인 것 같아요. 그냥 내 위치에서 더 이상 내가 뭐 바꿀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냥 열심히 하지 뭐‥"
스물한 살 대학생 김성빈 씨도 비슷합니다.
성빈 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로 진학했습니다.
아버지는 경비원으로, 어머니는 학원 보조교사로 일하며 삼 남매를 키웠지만 가정 형편은 늘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김성빈/대학 휴학생] "옛날처럼 정석책 펴놓고, 영문법책 펴놓고 진짜로 4시간 자면서 공부하고 그럼 대학을 붙여주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보니까‥수능시험만 봐서 대학을 간다고 할지라도 정보가 되게 많이 필요하고, 그리고 지역 격차도 있고 소득의 격차에 따라서 돈을 주고 열람할 수 있는 정보가 되게 많아졌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한 뒤 격차는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김성빈/대학 휴학생] "서울에 사는 애들에 비해서 소득격차도 조금 많이 나고 생활양식에서도 조금 차이가 나다 보니까 제가 제 스스로도 조금 자격지심을 갖게 되는‥돈도 많고, 성격도 좋고, 사교성도 되게 좋고, 능동적이고 그냥 잘 살더라고요. 그러니까 걔네는 가졌고 받을 만큼 받고, 걔네는 이제 무리 없이 살고 뭐 좋은 대학도 다니네?"
성빈 씨는 학교가 창업 지원자에게 제공하는 무료 기숙사에 살며 방값을 아끼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원하는 무료 식권으로 끼니 대부분을 해결합니다.
과외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벌지만 교통비에 통신비에 이것저것 빼고 나면 돈을 모을 수는 없습니다.
[김성빈/대학 휴학생] "당장 졸업만 하더라도 직장을 구하면 살 데도 구해야 되는데, 차도 사야 되는데, 애인도 솔직히 만나야 되는데 우리 부모님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이제 가진 게 없으니까 그것조차도 제가 만들어야죠. 그게 힘들어요. 미래가."
작년에는 동생 병원비까지 대느라 4백만 원 넘는 빚도 졌습니다.
[김성빈/대학 휴학생] "가족이 한 명이 아파서 그때 좀 빚진 게 많고 그래서‥대출도 다 갚아야 되고 제 돈이 아니잖아요."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이 2년 새 40% 넘게 늘었습니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기간을 버틸 돈이 또 필요합니다.
생활비를 벌다 보면 취업은 더 어려워 집니다.
[김성빈/대학 휴학생] "사실 저희가 먹고살려고 다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는 건데, 그거를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을 투자하면 또 먹고살기가 힘들어져요. 악순환이 되는 거예요."
[전국대학생네트워크 (지난달 23일, 생활고 증언 기자회견)] "대학 생활비 부담 완화하는 정책 발표하라." "발표하라! 발표하라! 발표하라!"
하루 한 끼만 먹는 대학생도 많습니다.
생활비가 없어서입니다.
[박서림/대학생]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 것은 사치가 되고, 하루 두 끼를 먹으면 과식한 하루가 되고, 한 끼만 식사를 하고 나머지는 과자나 커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일상이 됩니다."
그렇게 청년들은 혼자가 됩니다.
[박서림/대학생]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그리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 일을 더 각박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면 좀 달랐을까?
[김민경/대학생] "'내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농담하는 후배에게 제가 당장 해줄 말이 '힘들겠지만 열심히 살자' 뿐이라서‥"
◀ 앵커 ▶
희망이 없다는 청년들 얘기를 들으니까 참 먹먹해집니다.
최근에 전세 사기 뉴스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데 피해자들 절반 가까이가 2030대 청년이더라고요.
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보증금도 떼이고 대출금도 갚아야 되고 그런데도 취업은 어렵고 막막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 기자 ▶
개인의 노력 부족 탓으로만 돌리기에 청년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가혹해 보입니다.
열심히 해라 노력해라 이렇게 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 VCR ▶
지난 13일, 정부와 여당이 일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한 청년 노동자가 이런 목소리를 냈습니다.
[청년 노동자] "69시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현장에서는. 근데 이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거라는 게 좀 커서‥"
알고 보니 평범한 노동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대표인 회사의 생산관리팀장이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사장 아들 섭외해서 근무시간을 논하다니, 시트콤 찍냐", "서민들 심정을 이해해달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정부 여당은 중소기업중앙회가 섭외한 거라 몰랐다, 이 청년이 생산라인에도 근무하고, 정책에 대해 쓴소리도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김종진/일하는시민연구소장] "우리와 공감되는 이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을 만나는 거는 정부가 번지수도 잘못 찾은 것 같고요. 청년들과 대화하려는 자세도 안 돼 있고."
여야 막론하고 총선이 다가오면서 이른바 MZ세대 표심 잡기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의 식비 부담을 덜기 위한 '1000원의 아침밥' 사업 확대에 한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청년들과 앞다퉈 간담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청년 정책은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저성장 시대.
일자리는 줄고 있습니다.
구직을 포기한 청년들이 역대 최고입니다.
그냥 쉬었다고 답한 청년이 49만명이 넘습니다.
[정익중/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렇게 청년층이 스펙이 좋았던 적이 없어요. 그런 청년층들에게 '우리는 밑바닥부터 시작했으니까 너네 거기부터 해봐라' 이게 잘 안 먹히는 것 같아요."
일자리를 구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입니다.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사회 첫발을 떼는 청년들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습니다.
[김종진/일하는시민연구소장] "청년들이 실업이나 장기 실업, 사회적 고립이 지속, 장기적으로 반복됐을 때 10, 20여 년 후에는 자기 전반의 삶에서 큰 상처, 흉터가 된다 그래서 '흉터효과', '상처효과'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그래서 국가는 조기 개입을 해야 돼요. 또 관심갖고, 개입하고 다리 역할을 하는 게 정부의 정책 역할인데 우리는 사실은 인턴, 무슨 취업사관학교 이런 방식으로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죠."
당장 이들이 직면한 문제는 생존입니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일자리 만들고 그걸 해결한다는 식으로 청년들한테 희망고문하듯이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청년들이 지금 고파하는 거, 부채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면 부채를 경감하거나‥"
청년들도 이제 적극적으로 복지의 대상으로 삼되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성아/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 "고립청년, 은둔청년, 자립준비청년 이렇게 이름 짓기 해서 그들을 각각 지원하는 건 '또 다른 낙인감 혹은 또 다른 관계의 단절을 만들어내는 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방법은 좀 지양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고요. 그냥 청년이라면 편하게 가서 어울리다가 '내가 이런 어려움이 있구나' 그러면 '도움을 좀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만한 그런 곳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청년들은 한 사회의 미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2년 12월 20일] "우리 미래 세대가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을 버린다면 그거는 국가가 바로 망한 거나 다름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미래세대는 진짜 희망이 있는 건지 사회에 되묻고 있습니다.
[이승훈(가명)/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솔직히 집은 고사하고, 결혼 뭐 꿈도 꾸지 않고요. 어떻게 그냥 숨만 잘 붙여서 지금 살아보고 있는데 더 나아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앵커 ▶
청년 세대가 희망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사회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저희 스트레이트도 함께 답을 찾아가겠습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저희는 다음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1388', '다 들어줄 개' 채널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유정 기자(teenie0922@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476825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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