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출신 맞아?” “머저리”... 英부총리, 직장 괴롭힘으로 사퇴
폭언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구설에 올랐던 도미닉 라브(49) 영국 부총리 겸 법무부 장관이 사임한다고 21일(현지 시각) 밝혔다. 전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특별 조사위원회가 그의 혐의 대부분이 문제가 되는 행동이라고 인정하는 47쪽짜리 보고서를 내놓자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
작년 10월 리시 수낙 총리 내각 출범 이후 세 번째 핵심 인사의 낙마다. 청렴을 전면에 내세운 수낙 체제 보수당이 체면을 구기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라브 장관은 21일 수낙 총리에게 보낸 사직서를 같은 날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사직서에서 그는 “조사를 요청했고, 조사 결과 괴롭힘이 발견되면 사임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부총리 겸 법무부 장관은 올리버 다우든 내각장관이 대체한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수낙 총리와 더불어 보수당에서 주목받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2018년 테리사 메이 총리 시절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담당 장관, 보리스 존슨 전 총리 때 외무·법무장관 등 3번의 내각에서 3개 부처 장관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지난 2020년 존슨 총리가 신종 코로나로 입원하자 총리 대행도 했다.
◇법무부 직원들 “라브 밑에서 일 못 해”
하지만 욕심이 과했는지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업무에 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11월 그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을 폭로한 영국 일간 가디언은 라브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다시 임명되자 그를 겪었던 직원들이 “라브 밑에서 일 못 한다”며 들고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비서실 직원은 물론 부처 공무원들, 심지어 고위 관료들에게도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고 전했다.
일간 업저버도 “라브가 브렉시트 담당 장관일 때도 폭언과 괴롭힘 등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정부 최고위층에 고서가 올라갔지만 아무 조치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또 “라브 부총리와 일한 고위 공무원 5명 중 4명이 그의 행실을 괴롭힘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맘에 안 든다” 물건 집어던지기도
라브 부총리가 존슨 내각의 외교부 장관 재임 시 외교 공무원들에게 수차례 “위협적이고, 지속적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점을 조사위원회는 문제 삼았다. 또 법무부 장관 재임 때는 “필요하거나 적절한 수준 그 이상으로 비판적인 평가(피드백)를 했으며, 직원들에게 모욕적으로 행동했다”고 했다.
보고서에 구체적인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은 적혀 있지 않다. 다만 더선·런던이브닝스탠더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평소 직원들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도 불같이 화를 냈다. 보고서의 오탈자를 보고 망신을 주거나, 나직한 목소리로 ‘머저리 같다’고 하기도 했다. 한 직원에게 “당신 명문대 나온 거 맞아?”라며 모욕을 줬다는 주장도 나왔다.
더선은 “브리핑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샐러드의 방울 토마토 세 개를 집어던졌다”고 보도했다. 직원들이 그와 대면을 꺼렸고, 일부 심약한 직원들은 두려움에 울거나 구토까지 했다.
◇라브 장관 ”괴롭힘 기준 너무 낮다”
다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갑질’ 의혹을 두고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8건의 의혹 중 2건만 괴롭힘으로 인정됐고, 나머지는 모두 기각됐다”며 “지난 4년여간 나의 행동이 괴롭힘에 해당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조사위가 괴롭힘의 기준을 너무 낮게 설정했다”며 “일부의 주관적 느낌이 괴롭힘이라면 정부 각료들이 일을 제대로 하기 매우 힘들고, 그 피해는 영국 국민이 입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직원들에) 요구한 속도와 높은 기준은 국민이 (정부에) 기대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수낙 총리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그는 지난해 11월 청렴과 전문성, 책임감을 내세우며 전임 트러스·존슨 총리와 차별화에 나섰다. 하지만 반년 만에 벌써 3명의 핵심 인사가 수낙 정부의 강령과 어긋나는 문제로 실각했다. 개빈 윌리엄스 내각부 장관은 동료 의원에게 욕설 문자를 보낸 혐의로 작년 11월 사임했고 나딤 자하위 보수당 의장은 세금 미납 의혹으로 올해 1월 해임됐다. 수낙 총리 부인도 정부 정책 수혜를 받는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도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의회 윤리위 조사를 받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