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수단의 눈물
북아프리카 이집트 바로 아래 있는 수단이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찰턴 헤스턴 주연 영화 ‘하르툼’이 1967년 국내 개봉됐을 때다. 찰스 고든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지금의 수단 수도인 하르툼에서 이슬람 민족 지도자 마흐디와 맞붙었다가 모두 전사한다. 이후 오래 잊혔다가 수단에서 의료·선교 봉사를 하다가 선종한 이태석 신부를 통해 다시 주목받았다.
▶번영 조건을 갖추고도 절망의 늪에 빠진 나라가 적지 않다. 수단은 그중에서도 최악이다. 청나일강과 백나일강이 만나 나일강 본류가 형성되는 지점에 자리 잡은 하르툼은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무역도시로 번영했다. 그러나 수단인들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의지가 부족했다. 19세기까지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고 이어 20세기 중반까지 영국 식민지였다.
▶하르툼은 9·11 비극을 잉태한 도시이기도 하다. 1955년 영국에서 독립한 수단을 통치한 이슬람 지도자 알투라비는 유럽의 선진 문명과 기술을 따라잡기보다는 ‘반외세 반이교도’ 탄압에 몰두했다. 오사마 빈라덴을 불러들여 테러 조직 알카에다 결성도 도왔다. 또 다른 독재자 알바시르는 수단 석유 자원이 70% 넘게 매장된 남수단 지역의 분리 독립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다르푸르에서 30만명을 학살했다. 1994년 퓰리처상 사진 부문 수상작은 굶주림으로 쓰러진 수단 소녀와, 소녀가 죽으면 잡아먹으려고 기다리며 지켜보던 독수리를 함께 찍었다. 내전으로 신음하는 수단의 비극을 고발한 사진이었다.
▶2019년 독재자 알바시르가 쿠데타로 쫓겨난 뒤 비교적 안정을 찾아가던 수단에서 이달 들어 다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알바시르를 축출한 반군에 가담했던 무장 세력 신속지원군(RSF)이 신정부군의 민병대 해산 추진에 반발해 수도 하르툼을 공격했다. 30년 내전 끝에 2011년 수단에서 독립한 남수단 사정도 다르지 않다. 독립 후 거듭된 내전으로 이웃한 소말리아와 함께 ’파탄 국가’로 분류된다.
▶한국과 수단은 식민과 전쟁의 어두운 역사를 공유한다. 수단 국화(國花) 히비스커스도 무궁화속(屬)이다. 그러나 수단인들은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 꽃을 피우지 못했다. 이태석 신부는 생전에 수단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브라스밴드를 결성해 슬픔에 빠진 아이들 손에 악기를 쥐여주고 희망을 연주하게도 했다. 그 눈물겨운 활동이 ‘울지 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심금을 울렸다. 히비스커스는 차로 우려내면 우울증에 좋다고 한다. 수단이 역사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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