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모가디슈와 하르툼

이명희 기자 2023. 4. 2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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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고립된 도시, 목표는 탈출이다. 1991년 1월12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강신성 주소말리아 대사와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은 내전으로 아수라장이 된 모가디슈 탈출에 극적으로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 공관원 1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긴박했던 3박4일이었다.

영화 <모가디슈>는 이 필사의 탈출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지난 6일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외교문서도 공개됐다. 당시 대사관저에 피신한 강 대사 가족과 대사관 직원 7명은 1월9일 구조기를 타러 공항으로 갔다가 탑승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강 대사는 김용수 북한대사와 북 대사관 직원 14명을 만나 공동 대피를 제안한다. 영화에선 북한 쪽이 요청한 것으로 그려졌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대사관에서 하루를 보낸 이들은 다음날 비행기편을 제공하겠다는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한다. 운전하던 북측 직원 1명이 총에 맞았지만 운전대를 놓지 않고 대사관까지 차를 몰았고, 도착 직후 숨을 거뒀다. 총격은 이어졌고, 그 속에서 북한 서기관이 태극기를 흔들었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백기를 흔드는 것으로 처리됐다.

불행하게도 비극은 되풀이된다. 영화 소재로 쓰인 ‘소말리아 남북 공관원 탈출’ 사건을 방불케 하는 긴급상황이 현재 수단에서 펼쳐지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정부군과 반군 신속지원군(RSF) 간 교전이 벌어지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주민들은 피란길에 올랐고, 세계 각국은 자국민 탈출 작전에 돌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22일 157명을 철수시켰고 미국은 자국민 70여명을 귀환시켰다. 한국 정부도 군 병력 투입을 늘리고 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707대테러특수임무대가 현지 작전을 맡았다. 하늘길 철수가 어려워질 때를 대비해 해군 청해부대도 수단 인근으로 급파됐다. 현재 교민 28명은 한국대사관으로 대피해 탈출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수단은 지금 생존이 최대 목표인 ‘모가디슈’의 2023년 판이다. 두 국가의 가장 큰 공통점도 민간인이 사지로 내몰린 통제불능 상태의 내전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1일 기준 수단에서 4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하르툼에 있는 교민들의 무사 귀환과 모든 이의 안전을 기원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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