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와인 엑스포 빈이탈리를 가다/이탈리아는 생산량 기준 최대 와인 생산국/베로나는 말린 포도로 만드는 아마로네· 소아베 화이트 와인 유명/와인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선정 와인 선보이는 ‘오페라 와인’으로 개막/4000여 와이너리 참가·바이어 10만명 찾아 코로나19이후 첫 완전체로 열려/PR 커뮤니카레 일 비노 와인 시음·와인러버 등 다양한 외부행사도
베로나 브라 광장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루프탑바 스카이라운지 아레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하나둘 여행자들이 몰려들면서 활기가 넘친다. 그들이 마시는 와인은 아마로네. 다크체리향의 검은 과일로 시작해 강렬한 커피향과 초콜릿향으로 이어지는 와인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릅답고도 비극적인 사랑만큼 달콤하면서도 아찔하다.
◆세계 3대 와인 엑스포 빈이탈리 가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떤 와인을 마셨을까.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작품의 무대가 베로나라는 점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바로 소아베와 아마로네다. 베로나의 소아베 지역에서 가르가네를 주품종으로 트레비아노 등을 섞어 만드는 소아베 와인은 신선한 산도와 풍성한 미네랄, 국화꽃차, 카모마일 같은 허브향이 돋보여 햇살이 좋은날 테라스에서 앉아 마시기 좋은 화이트 와인이다. 베로나 발폴리첼라에서 생산되는 아마로네는 코르비나, 론디넬라, 몰리나라 등의 품종을 실내에서 건조하는 파시토 방식으로 만드는 레드 와인으로 건포도, 말린 무화과의 아로마가 매력적이다. 드라이한 와인이면서도 달콤한 풍미 덕분에 사랑을 고백하는 자리에 아주 잘 어울린다.
또 베로나에서 동쪽으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발도비아데네와 코넬리아노는 이탈리아 대표 스파클링와인 프로세코의 고향이다. 글레라 품종으로 만드는 프로세코는 이탈리아에서 마르티노띠 메토도 (Martinotti Metodo)로 부르는 탱크방식으로 만드는 와인으로 신선한 버블과 아로마가 돋보여 햇살이 눈부신날 야외에서 즐기기 좋은 스파클링 와인이다. 탱크에서 1차 발효와 숙성을 끝내는 와인으로 보통 프랑스에서 샤르마 방식으로 알려졌지만 마리티노띠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탱크방식을 완성한 인물이다.
이처럼 이탈리아 와인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한 베로나는 매년 4월초 도시 전체가 와인의 향기로 물든다. 세계 3대 와인엑스포 빈이탈리(Vinitaly)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베네토주 베로나는 인구 26만명의 소도시이지만 매년 수백만명이 찾는데 오페라와 함께 베로나를 대표하는 상품 와인 덕분이다. 1967년 시작돼 올해 55회를 맞은 빈이탈리가 지난 1∼5일 베로나 무역전시장 등 베로나 시내에서 열렸다.
오페라의 도시답게 빈이탈리는 ‘오페라 와인’행사로 시작을 알린다. 유명 전문 와인 매체 와인스펙테이터가 100대 와인을 선정한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들만 선보이는 자리다. 지난 1일 행사가 열린 전시장 인근 갤러리 메르카탈리로 들어서자 마당에 ‘OPERAWIME’라 쓰인 포토존 앞에 멋진 수트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이탈리아 와인업계 관계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담소를 나눈다. 빈이탈리를 주최하는 베로나피에레의 페데리코 브리콜로(Federico Bricolo) 회장과 다미아노 톰마시(Damiano Tommasi) 베로나 시장 등 주요 인사들의 테이프 커팅을 시작으로 성대한 오페라 와인의 막이 올랐다. 지난해 새 시장에 오른 톰마시 시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과 맞붙은 이탈리아 축구대표팀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으로 한국에도 익숙한 인물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들로 꾸며진 만큼 행사장은 마치 한편의 잘 만든 오페라를 보는 듯하다. 세계 최고 와인 반열에 오른 수퍼투스칸의 원조 사시카이아를 비롯해 ‘이탈리아 와인의 왕’ 바롤로, 키안티 클라시코, 아마로네, 프로세코 등 분야별로 가장 돋보이는 와인들만 선보여 참석자들을 황홀한 와인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가장 인기있는 부스는 단연코 사시카이아. 이날 1999년 빈티지를 매그넘 보틀(1500㎜)로 선보였는데 마치 우아한 향수를 뒤집어 쓴 것 같은 아로마가 돋보였다.
2021년 이탈리아 최초로 ‘와인의 신’ 마스터 오브 와인(MW)에 오른 가브리엘레 고렐리(Gabriele Gorelli)는 “오페라 와인은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만 선보이기에 와인전문가들에게도 가장 매력적인 행사”라며 “이탈리아 와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자리가 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보석같은 와인 찾아 삼만리
본격적인 빈이탈리가 시작된 2일 전시장 앞은 전세계에서 몰려든 바이어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난해 빈이탈리에는 영국 등 139개국 바이어 8만8000명이 찾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에서 완전히 벗어난 아시아권 바이어들까지 가세하면서 약 10만명 가까이 늘었다. 현장에 와보니 이탈리아서 와인은 단순한 주류가 아닌 매우 거대한 산업이란 사실이 피부로 와 닿았다. 실제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프랑스가 금액 기준 1위이지만 생산량 기준은 이탈리아가 1위로 2022년 5030만헥토리터(1hl=100ℓ)를 생산했고 프랑스(4420만hl), 스페인(3330만hl)이 뒤를 잇는다.
올해도 토스카나, 피에몬테, 베네토, 롬바르디, 캄파냐,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시실리아, 트렌토-알토 아디제, 에밀리아 로마냐, 풀리아 등 이탈리아 전역의 와이너리 4000여개가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행사전에 온라인으로 등록을 마친뒤 종이로 출력한 입장권의 바코드를 스캔한 뒤에야 행사장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우선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전체규모가 8만8289㎡로 축구장 12개 크기이며 주별 전시관과 특별 전시관 등 17개로 구성됐다. 따라서 바이어들이 4일 동안 전시장을 모두 돌아 보기란 쉽지않다.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가성비 와인이나 밸류 와인을 고르려면 비지땀을 흘리며 뛰어 다녀할 정도다.
행사전에 주요 미팅 대상자들을 선정하지만 현장에서 즉석 미팅이 성사되기도 한다. 실제 이탈리아 무역공사 초대로 빈이탈리를 찾은 한국 수입사들은 18개의 미팅을 통해 수입할 와인을 찾느라 이른 아침부터 쉴새없는 미팅 전쟁을 벌였다. 한국 언론중 유일하게 현장을 찾은 기자도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 때문에 한두시간 간격으로 인터뷰를 소화하며 전시장을 뛰어 다니다 군대 제대이후 처음으로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빈이탈리에 처음 참석한 김나희 동원와인플러스 브랜드 매니저는 “한공간에서 유명 와이너리부터 소규모 부티크 와인 생산자까지 약 4000개에 달하는 와이너리를 만날 수 있는 뜻깊은 행사였다”며 “이번에 만난 와인 생산자들과 계속 미팅을 통해 좋은 이탈리아 와인을 한국 시장에 소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최대 와인유통그룹 에티카 와인스(Ethica Wines)는 별도의 부스를 마련해 세계에서 온 바이어들을 맞았다. 에티카 와인즈는 크게 북아메리카와 아시아퍼시픽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이탈리아 와인 전문 유통기업으로 유통 와인의 90%가 이탈리아 톱 생산자들이다. 현재 56개 브랜드를 전세계에 유통시키고 있으며 캐나다를 포함한 북아메리카의 파인 이탈리아 와인 시장에선 부동의 1위를 달린다. 특히 미국내에서는 볼륨 1위, 밸류 2위다. 한국에 수입되는 와인중에선 프란치아코르타 벨라비스타(Bellavista)를 비롯, 시칠리아와인 쿠수마노(Cusumano),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리카솔리(Ricasoli), 프로세코 와인 니노 프랑코(Nino Franco)와 안티카 퀘르치아(Antica Quercia), 소아베 와인 안셀미(Anselmi) 등이 에티카 와인스를 통해 한국에 공급되고 있다.
프란체스코 간즈(Francesco Ganz) 에티카 와인 CEO는 “에티카는 지사를 현지 마켓에 두고 로컬에서 직접 비즈니스를 하는 독특한 형태로 운영한다”며 “와이너리를 소유하거나 지분은 없지만 독점 유통권을 갖고 있으며 단지 와인만 파는 것이 아니라 레이블 등 생산자들에게 필요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고 스태프 교육 등을 통해 와이너리의 철학과 문화까지 현지 시장에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현지 지사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와이너리 선정의 첫번째 기준은 당연히 품질이며 성장하는 시장에 맞춰 생산량도 키울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엄격한 기준을 통해 유통 와인을 선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와인메이커들 결성단체인 그루포 마투라(Gruppo Matura)도 별도부스를 마련하고 많은 바이어들과 수출상담을 했다. 마투라 그룹에는 이탈리아 많은 탑 와인들을 탄생시킨 유명 양조 컨설턴터 에밀리아노 팔시니(Emiliano Falsini)이 등이 참여하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이름을 건 시칠리아 와인 페우도 피냐토네(Feudo Pignatone)와 볼게리에서 만드는 수퍼투스칸 와인 리미테(Limite), 일 데비오(IL Debbio)을 선보여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특히 카베르네 프랑 100% 와인 리미테(Limite)는 우아한 향수같은 아로마가 돋보여 바이어들의 극찬을 받았다.
◆와인 향기로 물든 베로나
빈이탈리는 B2B 미팅뿐 아니라 다양한 마스터 클래스와 시음행사도 진행된다. 키안티 클라시코 협회에서는 지오바니 마네티 회장이 직접 나서 생산지를 11개 지역으로 세분화해 올해 새로 도입한 생산지 표시(UGA) 개념과 생산지별 특징을 소개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또 이탈리아의 미쉐린 가이드격인 감베로로쏘가 매년 최고의 와인을 선정해 와인잔 3개를 부여한 트리비키에리 와인 시음회, 이탈리아 탑 생산자들의 모인인 그란디 마르키 와인 시음회, 주요 생산지별 와인을 소개하는 마스터 클라스 등 400여개 행사가 진행됐다. 워낙 행사가 많다보니 자정을 넘겨 다음날 새벽까지 행사기 진행될 정도다. 솔앤아그리푸드(Sol&Agrifood) 음식박람회, 최고급 레스토랑 스타 세프들의 푸드쇼, 올리브 오일 박람회, 엑셀런트 비어 맥주박람회도 함께 열렸다.
전시장에 밖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이탈리아 최대 와인 홍보기업 ‘PR Comunicare IL Vino’가 베로나 시내 입구의 멋진 빌라 마르티니 인테리어스에서 41개 와이너리 와인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PR 컨설턴트이자 저널리스틴 리카르도 가브리엘레(Riccardo Gabriele)가 이끄는 Comunicare IL Vino는 포도밭에서 한병의 와인이 만들어지기까지 와이너리를 전반적으로 케어하고 다양한 시음행사 등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와이너리를 성장키기는 일을한다. 현재 아브리조 지오반니(Abrigo Giovanni), 베콘치니(Beconcini), 보칼레(Bocale), 보스카렐리(Boscarelli), 부투씨(Butussi), 카페짜나(Capezzana), 카스텔로 손니노(Castello Sonnino), 이나마(Inama) 등의 와이너리들이 PR Comunicare IL Vino의 케어를 받고 있다. 또 1874년 고품질 키안티 클라시코의 레시피를 완성해 ‘키안티 클라시코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카솔리(Ricasoli) 32대 오너 프란체스코 리카솔리(Francesco Ricasoli)의 취임 40주년 기념 디너가 아레나 디 베로나를 조망하는 브라광장 레스토랑에서 열렸고 일반 소비자들도 참여하는 ‘와인러버’도 열려 베로나를 와인 축제로 들썩이게 만들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알자스와 호주, 체코, 스위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