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에 역전세…" 전국 `전세보증사고` 빨간 불

이미연 2023. 4. 2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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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아파트에 현관문마다 전세사기 경고문구가 붙어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출처=연합 그래픽뉴스

"전세계약 만기라 나가겠다고 했더니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가 안들어오면 보증금 못돌려준대요."

올해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우후죽순 발생하고 있다. 역전세난은 일명 '갭투기'가 많이 일어났던 지역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는데, 해당 지역에서는 전세보증사고 역시 함께 늘어나고 있다.

집값 하락 국면에는 전세가가 매매가를 추월하는 역전세 현상이 발생해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등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역전세와 전세사기는 결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보증금을 못돌려받을 걱정에 세입자들의 불안은 전세사기 이슈로도 쏠리고 있다.

정부가 23일 당정협의를 갖고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을 만들기로 한 것도 이같은 휘발성과 폭발성에 미리 대처하자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전국 갭투기 최다지역 '서울 강서구'…'빌라왕' 주무대인 화곡동 집중

23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주택자금 조달계획서(2020년~2022년 8월)에 따르면, 주택 가격 대비 세입자 임대보증금 비중(전세가율)이 80%를 넘는 갭투기 거래는 12만1553건이 체결된 것으로 집계됐다.

시군구별는 서울 강서구가 5910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충북 청주 5390건 △경기 부천 4644건 △경기 고양 3959건 △경기 평택 3857건 순이었다.

특히 '빌라왕' 사건이 발생한 강서구의 경우 5910건 중 74%인 4373건이 화곡동에 집중됐고, '건축왕'의 주요 무대였던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은 읍면동 기준 전국에서 3번째로 많은 1646건의 갭투기 거래가 이뤄졌다.

아직 전세금 반환 피해가 표면화되지 않은 곳에서도 곧 피해 신고가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갭투기 거래가 연립 다세대 주택 등 주로 저가형 주택에서 이뤄진 점도 불안 요소다. 이 기간 갭투기 거래의 평균 매수가는 2억5000여만원으로 집계됐다. 전체의 71%인 8만7000여건의 거래가 3억원 미만 주택에서 이뤄졌다.

주택 유형으로 살펴봐도 서울 연립 다세대 주택은 2만8450건(23.4%), 경기·인천 연립 다세대 주택은 2만8439건(23.4%)이 거래돼 갭투기의 절반 가까이가 수도권 연립 다세대 주택에서 이뤄졌다. 이 문제는 아파트까지 번질 가능성도 있다. 전체 갭투기 거래의 29.6%(3만5886건)는 수도권 아파트인데, 그 중 2만9986건이 경기·인천지역 아파트에 쏠려 있다.

◇전세보증보험 사고 폭증해 올 1분기 '역대 최다'

역전세난 여파로 세입자가 전세 계약 해지나 종료 후 1개월 안에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거나, 전세 계약 기간 중 경매나 공매가 이뤄져 배당 후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한 전세보증보험 사고도 폭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주택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 금액은 총 797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4분기 5260억원 대비 52% 증가한 수치이며, 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다.

주택 유형별로는 다가구주택의 사고금액이 3928억원으로 전체의 49.3%를 차지했다.

2020년과 2021년 다가구주택 보증사고 규모는 각각 55억원, 58억원으로 100억원 미만에 그쳤다. 그러나 역전세난과 전세사기 피해가 본격화된 지난해 6678억원으로 급증했고, 올해 1분기는 이미 작년 전체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은(58.8%) 수준의 보증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다가구주택 다음은 아파트다. 특히 올해 1분기 아파트 보증사고 금액(2253억원)가 이미 작년 1년치(2638억원) 사고 금액의 85%에 달할 정도다.

'빌라'로 통칭되는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의 보증사고는 각각 1513억원, 35억원으로 총 1548억원을 기록했다.

보증사고 폭증으로 HUG가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액은 1분기에만 5683억원이다. 작년 전체 변제액(9241억원)의 60%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전세 만기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신청한 임차권등기명령 건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임대인이 숨진 '빌라왕' 사건 이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지난달 말부터 임대인 고지없이도 임차권 등기를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 통계상 올해 3월 집합건물 임차권 설정등기 건수는 3484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월(2850건)보다 22% 가량 늘어난데다, 지난해 3월(851건) 대비로는 무려 4배가 넘는다.

서울에서는 최근 '빌라왕' 전세사기가 집중된 서울 강서구의 3월 임차권 등기 건수가 256건으로 가장 많았다. '건축왕' 전세사기가 집중된 인천 미추홀구도 3월 현재 인천 지역 최대인 183건을 기록 중이다.

양경숙 의원은 "최근 빌라왕이나 건축왕과 같은 전세사기가 전국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면서 임차인의 피해가 확산하고, HUG의 보증사고도 크게 늘고 있다"며 "피해 세입자의 주거 안정과 함께 HUG의 대위변제 부담 증가에 따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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