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100년 역사 전통술 현대적 재해석 '명주' 자리매김

김재근 선임기자 2023. 4. 2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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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100년째 도가 운영, 양촌양조 이동중 대표
좋은 쌀과 물, 정성 더해 고품질 청주, 막걸리, 소주 생산
아름다운 술병으로 iF와 레드닷 디자인어워드 잇단 수상
양촌양조 이동중 대표는 3대를 이어 100년째 술도가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양촌은 이름부터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동네이다. 볕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뜻의 '양촌(陽村)'은 밝고 따뜻함, 푸근함,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양촌양조는 이 마을의 한 골목에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다.

"술이 잘 익으면 과일향이 납니다. 곡물이 발효돼 알콜이 만들어질 때 사과향 같은 게 나오는 것은 효모균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양촌양조 이동중 대표는 도가 안의 향기에 대해 묻자 쌀과 누룩, 발효, 막걸리와 청주 등에 대해 술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1950~60년대 술을 보관하고 운반하는데 사용했던 '술춘'.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양촌양조의 술이 좋은 것은 물이 좋기 때문이라는 점도 빠트리지 않았다. 대둔산의 자연과 정기를 머금은 샘물이 술맛을 더해준다는 것이다. 지금도 술을 빚을 때 1920년경 할아버지가 파놓은 샘물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한다.

술 애호가와 전문가들은 양촌양조에서 생산하는 술을 '명주(名酒)'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주류대상(2020, 2022년), 전통주전문주점협회 선정 7대 박걸리(2018), 충남술 TOP10(2019)에 선정된 바 있다.

<젊은 세대에 맞춰 '맛'과 '디자인'을 최고로>

"우리 전통주를 새롭게 하고 싶었습니다. 옛날에는 술을 빚는데 쌀을 못쓰게 했는데 요즘은 뭐든지 가능하잖아요? 젊은 세대에게 우리 술이 케케묵은 구닥다리가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술 못지않게 맛있고 건강에도 좋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양촌양조는 디자인으로도 이름이 높은 회사이다. 최근 이 회사의 소주 '여유'의 술병이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iF디자인어워드 패키지디자인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몸통이 짧고 목이 긴 흰색 소주병으로 곡선이 부드럽고 미려하다. 붓글씨체로 '여유'라고 써붙였는 데 한글의 조형미가 돋보이고 글씨 자체에서 여유를 느끼게 한다. iF디자인어워드는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디자인공모전으로 독일의 레드닷, 미국의 IDEA와 함께 3대 디자인상으로 손꼽힌다. '여유'의 전체 디자인은 이 대표의 조카인 이태희씨가 맡았고, 글씨는 강병인 서예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2023년 iF디자인어워드 패키지디자인 부문 상을 수상한 '여유'의 술병.
2014년 '양촌 생동동주'의 디자인이 독일의 레드닷 디자인어워드를 수상했다.


양촌양조는 2014년에도 생막걸리 '양촌 생동동주'의 디자인이 독일의 레드닷 디자인어워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부문 상을 받았다. 시골 양조장이 세계적 디자인상을 2차례나 받은 것이다.

양촌양조는 이 대표의 할아버지인 고 이종진이 일제 때 처음 문을 열었다. 1923년 가내 주조 형태로 술을 빚기 시작했고, 1960년에는 부친인 이명제, 1990년부터는 이 대표가 가업을 이었다. 3대 100년째 볕이 잘 들고 물 맛이 좋은 양촌에서 도가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중 대표가 옛날 술을 빚는데 사용했던 옹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대학을 다니던 1976년부터 양조 일을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바쁠 때 도와주는 정도였는데 형제들도 모두 대처로 떠나, 자연스럽게 경영을 맡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1980년대 소주와 맥주가 한참 맹위를 떨칠 때 우리 술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대형 주조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지,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등등…

"막걸리를 하찮은 싸구려 술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술이 살아남으려면 미래의 소비자인 젊은 층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재료로 맛있는 술을 빚고, 술병도 다른 회사와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술병 디자인에 크게 신경을 쓴 것은 이러한 경영전략의 일환이다. '맛'과 '디자인'을 젊은 세대에 맞춰 현대적 감각으로 개발한 것이다.

현재 이 회사에서는 막걸리를 비롯 소주와 청주까지 생산한다.

양촌양조는 지금도 1930년에 세워진 건물에서 술을 빚고 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소화6년(昭和六年 1930년)이라고 쓰여진 술 공장의 상량문.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오랜 역사를 간직한 양촌양조장 건물.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여유'는 1956년 이 회사에서 출시했던 증류식 소주의 전통을 계승한 술이다. 한국식품연구원과 손잡고 전통방식의 소주를 현대적으로 해석, 복원한 것이다.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게 '우렁이쌀 청주'이다. 이 술은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논산 찹쌀에 감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60일간 저온 숙성하여 제조한다. SNS 등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호주 등 해외에 수출도 하고 있다.

'우렁이쌀 손막걸리'와 '우렁이쌀 손막걸리 드라이'는 찹쌀 순막걸리로 프리미엄 제품이다. 수제 막걸리로서 오랜 시간 저온숙성을 거쳐, 맛이 담담하고 깊다.

논산 우렁이쌀을 사용하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인근에서 사는 이 대표의 친구가 우렁이를 이용하여 무농약으로 벼 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그 쌀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친구는 안정적으로 쌀을 팔아 좋고, 자신은 고품질 쌀로 좋은 술을 만드니 서로서로 좋다는 것이다.

100년 역사의 '양촌 생막걸'리와 '양촌 생동동주'도 지역 애주가들에게 꾸준하게 팔리고 있다. 이 대표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오랜 세월 품질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양촌양조는 요즘 미주가는 물론 관광객들도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2016년 '찾아가는 양조장'(농림축산식품부 주관)으로 선정됐고, 요리 연구가 백종원씨가 이곳의 전통양조 방식을 전국에 소개했다. TV와 유튜버들도 앞다퉈 양촌양조를 다루고 있다.

"지금도 1930년 할아버지께서 지은 건물에서 술을 생산합니다. 자연스러운 통풍이 발효에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제공합니다. 우리 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술을 빚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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