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전세사기 피해지원에 수조원… 일각 "정부의 ATM 전락"

강길홍 2023. 4. 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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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대출에 이자 면제까지
신한·우리·KB·하나 등 쏟아내
상호금융·카드사도 적극 나서
"정부가 할 일 떠넘겨" 비판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부동산에 걸린 빌라 전세, 월세 정보. 연합뉴스

금융당국은 물론 은행·카드사 등 금융업권이 전세자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정부가 나서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매각 유예 조치를 유도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은 법률상담과 이자면제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은 총괄·대외업무팀, 경매유예 점검팀, 종합금융지원센터 운영팀 등 3개팀으로 구성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TF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과 관련한 정보를 금융위원회·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실시간 공유하는 한편 피해자 지원을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은 지난 21일 여의도 본원 및 인천지원에 '전세 사기 피해 종합금융지원센터'를 열고 피해자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 앞서 각 금융권 협회를 통해 전세 사기 피해자 거주 주택에 대한 경매·매각 유예 및 매각 기일 연기 신청을 요청한 바 있다.

◇ 수조원대 지원책 쏟아낸 은행권= 정부의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대책에 발맞춰 금융권도 다양한 지원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우리은행이 가장 먼저 5300억원 규모의 주거안정 금융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전세자금 대출은 가구당 최대 1억5000만원 한도로 총 2300억원을, 새로운 주택을 구입하는 세대에게는 2억원을 한도로 최장 40년(거치기간 5년) 만기로 총 1500억원을 지원한다. 경매 주택을 경락받고자 하는 피해자는 100% 경락자금 대출을 최대 2억원 한도로 총 1500억원 규모로 지원한다.

신한은행은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함께 무료 법률 상담은 물론 소송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송비용, 변호사 보수 등 실비용을 무료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신한은행은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총 15억원 규모의 기부를 실시한다.

또한 신한은행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전세피해 확인서를 제출한 경우 전세자금대출의 금리를 최대 2년간 2%포인트(p) 감면한다. 해당 주택을 구입하거나 경매낙찰을 받을 때 필요한 주택구입자금대출에도 최대 1년간 2%p의 금리를 감면한다. 금융 지원 세대당 한도는 전세자금대출 1억5000만원, 구입자금대출 2억원이다.

하나은행도 전세 피해 가구에게 세대 당 2억원 한도로 총 5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실시한다. 경매가 완료됐거나 거주지를 상실한 가구에게는 2000억원 규모의 전세자금 대출 지원 및 1500억원 규모의 구입자금 대출을 지원하며, 경매가 진행 중이거나 피해가 예상되는 가구에게는 1500억원의 경락자금 대출을 지원한다. 대출 실행 후 발생되는 최초 1년간 이자는 전액 면제하고, 대출 진행 시 발생되는 부대비용도 전액 지원키로 했다.

KB국민은행은 피해자들에게 전세·주택구입(오피스텔 포함)·경락 관련 자금을 대출하고 최초 1년간 대출 금리를 2%p 깎아주기로 했다.

◇은행은 '정부 ATM'(?)= 4대 은행이 앞장선 은행권의 금융 지원 규모는 수조원대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참여 은행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신협, 수협, 산림조합 등 상호금융권도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감면하고 경락자금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새마을금고는 전세 사기 피해자가 자사에 전세대출이 있을 경우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3% 포인트 감면하고 경락자금 대출 한도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밖에 롯데, 비씨, 삼성, 신한, 우리, 하나, 현대, KB국민, NH농협카드 등 카드사는 전세 사기 피해자에 대해 일정 기간 대출 원리금 만기 연장, 상환유예, 분할 상환 등을 지원한다.

금감원은 "금융권의 자율적 노력들이 정부 및 정책금융기관의 지원 노력을 보완해 피해자에게 보다 많은 지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피해자들에 대한 경매 중단이나 금융 지원 대책들이 '시간 끌기'에 불과하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금융권에 미루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금융권 지원이 대출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는 만큼 일부 상호금융권은 부실이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은행권은 지원 여력이 크다는 평가지만 정부의 '현금인출기(ATM)'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대규모 상생금융 대책을 쏟아낸 가운데 또다시 대규모 금융지원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당국은 금융권으로부터 소액생계비대출 재원을 추가로 기부받기로 했다. 취약계층에게 최대 100만원을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은 올해 총 1000억원을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수요로 이르년 9~10월께 예산이 조기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돌려줘야 한 국민행복기금 초과회수금 약 640억원을 기부받아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권에 대한 사회적 지원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은행권에 떠 넘기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강길홍기자 sliz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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