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피고인 허위진술에 무방비”…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53% ‘무죄’

박진영 2023. 4. 23. 18: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담 검사 워크숍서 대책 논의
보이스피싱 무죄판결도 증가세
“일반인 배심원이 유·무죄 판단
평의가 충실히 이뤄질지 의문”
‘지역민 배심원’ 참여 2차피해도
檢 “최후진술 반박할 법 개정을”
올해 국민참여재판 시행 15주년을 맞은 가운데, 최근 국민참여재판 중 성범죄와 보이스피싱(전화 금융 사기) 사건 무죄율이 두드러져 검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검사가 피고인의 허위 최후진술을 반박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대검 청사에선 ‘국민참여재판 전담 검사 워크숍’이 열렸다. 전국의 국민참여재판 전담 검사 등 30명 정도가 모여 보이스피싱·성범죄 국민참여재판 유·무죄 사례를 발표하고, 두 사건 무죄율이 높은 원인과 배심원 선정 전략 등 대책을 논의했다.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의 저자인 성범죄 재판 모니터링 전문가 ‘D’의 강연도 진행됐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전체 사건의 1심 무죄율은 31.5%인데, 성범죄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무죄율이 52.9%에 달했다.

최근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이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도 증가 추세라고 한다. 법원행정처가 사기나 보이스피싱 국민참여재판 관련 통계를 집계하지 않아, 수치로 확인되진 않는다.

이를 두고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면서도 “재판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배심원으로 법정에 갑자기 나와 유무죄를 판단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이고, 배심원 평의가 충실히 이뤄질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국민참여재판은 원칙적으로 매일 재판을 진행해 1~3일 안에 재판을 마치도록 운영한다는 게 대법원 설명이다.

이어 서 변호사는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은 폐쇄회로(CC)TV 등 물증보다 피해자 진술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 위주로 진행된다”며 “피고인 측이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따라 범행 전후의 피해자 태도 등을 문제 삼아 무죄를 주장하면 배심원들이 그에 경도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간 성범죄자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악용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실제로 지난해 국민참여재판 신청 건수 811건 중 성범죄는 203건으로, 4건 중 한 건을 차지했다. ‘박사방’ 주범 조주빈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에선 피해자가 검찰 측 증인으로 채택되는데, 배심원들이 같은 지역사회 주민들인 점 때문에 출석을 포기하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서 변호사는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은 결국 마녀사냥처럼 피해자에 대한 재판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법원행정처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해 개별 사건의 특성에 맞게 국민참여재판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도 국민참여재판의 공소 수행 역량 강화, 공소 유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2018년 11월 검찰 내 비직제 연구 모임인 공소 유지 전문 지원팀, 일명 ‘공판 어벤져스’가 꾸려져 국민참여재판 무죄율 제고 방안, 국민참여재판 수행 시 단계별 유의 사항 등을 연구 중이다. 이달 기준으로 전국의 국민참여재판 전담 검사는 총 49명인데 정기 인사 때 청 또는 부서 이동에 따라 새로 지정된다.

검찰은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국민참여재판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참여재판에서 피고인과 변호인의 최종 의견에 대해 검사가 반박하는 절차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검 관계자는 “현행 국민참여재판법은 국민참여재판 진행 시 별도 규정이 없는 경우 형사소송법을 준용하고 있어, 국민참여재판에서 일반적으로 검사의 의견 진술 뒤 피고인 최후진술이 진행된다”며 “피고인 측이 허위 사실을 전제로 변론하거나 의견에 불과한 것을 사실인 것처럼 강조하면 검찰 측 반박 의견서를 제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참여재판은 변론 종결 뒤 배심원 평의와 판결 선고가 당일에 이뤄져 검사가 즉시 법정에서 반박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 의원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 향상이라는 국민참여재판 취지를 고려해,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는 보장하면서도 사법부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제도 개선과 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