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끓는 물속 개구리’ 전략, 대만의 가장 큰 위기
[세계의 창]
[세계의 창] 왕신셴 |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아연구소 소장
지난 3월 말과 4월 초, 대만의 전·현직 총통이 우연찮게 동시에 외국을 방문했다. 마잉주 전 총통(국민당)은 12일 동안 ‘평화로운 조상참배 여행’을 한다며 중국 본토 여러곳을 방문했다. 1949년 양안(중국과 대만) 분리 이후 대만 전·현직 총통이 중국 본토를 방문한 첫 사례이다. 차이잉원 총통(민진당)은 대표단을 이끌고 중남미 우방국을 방문하면서 ‘민주주의와 번영의 동반자 순방’ 명목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들러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과 회동한 뒤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대만 총통이 미국 땅에서 미 하원의장을 만난 최초의 사례이다.
이 두 순방은 ‘첫 사례’라는 것 외에도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전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을 거의 동시에 각각 방문한데다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있어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두 행동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대만은 지난 5년여 동안 미-중 경쟁, 특히 미-중 간 지정학적 마찰과 미국의 중국에 대한 ‘기술 봉쇄’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에서, 시 주석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며 미-중 간 정치의 기초 중의 기초”라고 말한 바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하기 이전 미국은 양안 관계에서 안정추 역할을 했다. 중국이 대만에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나오거나 대만이 중국의 ‘마지노선’에 지나치게 도전하면 개입함으로써 ‘미·중·대만’의 3각 구도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중 경쟁이 격화되면서 대만이 미국에 완전히 기울고 중국이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앞서 언급한 미·중·대만 3각 구도는 미국과 중국의 양자 관계로 변모했다. 이런 국제정세의 변화와 대만의 선택으로 인해, 대만 전·현직 총통의 미국과 중국 방문은 사실상 미-중 전략 경쟁의 일부가 됐다.
둘째, 미-중 경쟁 속에서 전·현직 총통의 미·중 방문은 나름의 좋은 의미를 담은 행사였다. 마 전 총통의 중국 방문은 중국과의 대화를 통해 양안 간 긴장을 낮추길 원하는 대만 국민 일부의 열망을, 차이 총통의 미국 방문은 중국의 위협에서 보호받고자 하는 대만 일부의 열망을 반영했다. 그러나 대만 내부 정치 상황 때문에 다른 반응이 나왔다. 마 전 총통의 중국 방문은 조상에 대한 제사와 청년 교류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중국에 대한 굴복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차이 총통의 미국 방문 역시 대만을 미국의 ‘졸’로 만들고, 대만을 더욱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고 지적받았다.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평화를 추구하려고 한 전·현직 총통의 이중 전략은 국내 선거라는 정치 현실에서 완전히 부딪히는 이슈가 된 것이다.
차이 총통과 매카시 하원의장의 만남 이후 중국은 대만을 상대로 군사훈련과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다만, 시 주석이 3연임을 확정한 지난해 10월 ‘20차 당대회’ 이후 중국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에도 나서는 등 세계의 ‘평화 조성자’ 역할을 하며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를 쥐려고 한다. 그 때문에 대만에 대한 군사훈련의 강도와 규모는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보다는 작았다.
그러나 중국은 군함·군용기·항공모함을 동원해 대만을 강하게 위협함으로써 ‘외세의 개입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중국 상무부는 대만의 2455개 품목에 대한 무역장벽 조사를 시작했다. 대만 정부는 중국의 이런 조처가 시민 정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의도적으로 경시하고 있다. 대만인들은 중국이 대만에 가하는 군사적 억압과 경제제재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아마도 중국 공산당의 이런 ‘끓는 물속 개구리’ 전략이 대만이 당면한 가장 큰 위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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