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말한다] 온실가스 감축, 한숨 돌려도 될까?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진통을 겪으면서 일부 조정이 이루어졌다.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애초 국가 목표는 유지되었지만, 부문별 목표치에 변화가 있었다.
산업부문이 가장 격렬한 논쟁 대상이었는데, 산업부문 감축목표가 2018년 대비 기존 14.5%에서 11.4%로 하향 조정되었다. 감축에 따르는 당장 부담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조정으로 산업부문의 부담은 경감
온실가스 감축에서 산업부문이 그렇게 중요할까? 그렇다.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에서 산업부문 직접배출 및 공정배출의 비중이 3분의1 이상이며, 전기 사용에 따른 간접배출을 포함하면 절반을 넘어선다.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이 탄소중립의 관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선진국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부문 감축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이 유별나게 높기 때문이다.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8%에 달한다. 제조업 강국 중에서도 중국만이 우리 제조업 비중에 비견할 뿐이다. 또한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온실가스 다배출업종 중심의 산업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업의 온실가스 감축, 파괴적 기술혁신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이 그렇게 어려울까? 그렇다. 정말 어렵다. 에너지 절약적 공정개선과 설비투자를 통해 산업부문의 온실가스를 어느 정도 감축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제조업은 이미 세계 최고의 에너지 효율성을 보이는 최신예 설비를 확보하고 있다. 기존 기술에 의존한 노력만으로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기는 어렵다는 의미이다.
아직 지구상에 현존하지 않거나 상용화되지 않은 파괴적 혁신기술이 필요하다. 이번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하향 조정은 이러한 사정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철강의 코크스, 석유화학의 나프타, 시멘트의 클링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산업용 가스가 2030년까지는 대체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제 산업부문은 한숨 돌린 것으로 봐도 좋을까? 2030년까지 시간을 벌어놓은 것일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리다.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일 파괴적 혁신기술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에 따라 미래 글로벌 제조업의 판도가 바뀐다. 파괴적 혁신기술의 확보가 늦은 기업은 경쟁력이 조금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 게다가 수소환원제철, 바이오 나프타, 대체 가스 관련 파괴적 기술은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상용화, 스케일업, 대규모의 설비교체 이후 가동까지 실현되려면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예측 불가능하다. 지금 서둘러 시작해도 이미 충분히 늦었다.
◇탄소중립, 신성장동력 창출과 신 제조혁신의 기회로 활용해야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움직이고 있다. 유럽은 2019년 발표된 그린 딜을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규정하면서 철강, 화학산업의 청정기술 개발과 수소, 배터리 등 전략산업 육성을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해 제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투자, 청정기술의 개발과 전기차-배터리에 대한 보조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이 지난 2020년에 발표한 그린 성장전략은 제품, 소재, 부품, 인프라에 이르는 14개 산업 분야의 육성전략과 로드맵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도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도 녹색 경제회복을 주장하면서 자국이 경쟁우위를 갖는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등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추진했다.
이들 제조 강국들의 공통점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한동안 보이지 않던 산업정책까지 소환해 가면서 전방위로 혁신기술 역량을 향상하고 저탄소화를 위한 투자와 관련 신산업 창출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녹색 전환을 마지못해 쫓아가야 할 목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수단의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판도를 뒤엎을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종종 우리의 탄소중립 여건이 열악하다고 탄식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지만 탄소중립은어차피 가야 할 길이고 늦으면 글로벌 경제에서 우리 산업만 도태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탄식할 시간도 아깝다. 탄소중립 여건이 양호한 선진국들도 이미 출발하여 저 앞에서 뛰어가고 있는데, 여건이 변변치 않은 우리는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날아가지는 못할망정 아직 출발선에서 구시렁대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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