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칼럼] `쓰나미` 몰려오는데 위기의식 사라진 尹정부
위기는 단번에 오지 않는다. 징후들이 쌓여 어느 순간 쓰나미로 덮친다. 지금 한국 경제가 꼭 그렇다. 지난 4분기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마이너스 0.4%(전분기 대비)였다. 올 1분기도 겨우 플러스 성장에 턱걸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추경호 경제부총리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중국 리오프닝 효과와 반도체 경기 반등 기대를 근거로 "하반기엔 나아질 것"으로 낙관한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위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위기의 최대 요인은 수출 감소와 무역적자다. 경쟁력 약화로 구조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수출이 성장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2022년 기준)다. 지난해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2.74%로, 2017년 3.23%로 역대 최고치를 찍은 후 줄곧 하락세다. 수출 점유율이 0.1%포인트 하락하면 일자리가 약 14만개 감소한다.
반도체 수출 비중은 2018년 20.9%에서 올 1∼3월 13.6%로 떨어졌다. 무역적자는 지난해 역대 최대인 477억8400만달러에 달했다. 올들어서도 3월까지 수출이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보이면서 1분기 적자는 224억100만달러로, 이미 작년 연간의 절반에 이르렀다. 무역적자 행진은 13개월째다.
정부는 이를 경기변동상 순환적 흐름으로 보지만, 구조적 요인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과의 교역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 중국의 전체 수입액은 2조7155억달러로 전년보다 1.4% 늘었는데, 우리 수출은 1558억달러로 오히려 4.4% 줄었다. 대중 수출 가운데 중간재 품목의 비중이 74%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을 줘가며 중간재의 자국 생산을 확대, 상당한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게 중국 수출 감소의 진짜 이유다. 국산 중간재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대중 무역수지는 작년 10월부터 6개월 연속 적자다. 올 1분기엔 78억5000만달러로, 전체 무역적자의 35%다. 제1의 무역 흑자국이 제1의 적자국으로 돌아선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견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반도체 공장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 파이낸셜타임스는 대만 TSMC 등의 실적을 토대로 반도체 경기 하락이 예상보다 오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라빚과 가계빚은 빛의 속도로 늘고 있다. 문재인 정권 5년동안 나라빚이 408조원 증가,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갚아야 할 국가채무는 1067조6000억원으로 치솟았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일반정부 채무비율은 54.3%다. 가계부채는 지난해말 기준 1867조원으로, 2007년말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역사적으로 볼때 모든 경제위기의 출발점은 과도한 빚이다.
'빚의 홍수' 속에 '제2 레고랜드 사태'가 재현될 조짐이다. 과잉 유동성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버블의 붕괴는 피하기 어렵다. 비은행권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험노출액은 115조5000억원(작년 9월말 현재)로 사상 최대다. 상반기에 부동산 PF 중 브릿지론의 대규모 만기가 도래한다. 이게 진짜 파도다. 일부 저축은행·새마을금고·증권사들이 파산할 가능성도 있다.
SVB·시그니처은행 등 중소 은행 파산으로 홍역을 겪은 미국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은행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언제든 뱅크런이 나타날 수 있다. 금융사별 1인당 예금보장액을 1억원으로 신속히 올려 뱅크런을 방지하고, 새마을금고 등에 대한 금융감독권을 통합해 위기 발생시 발빠르게 대처하는 게 정부 책무이지만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위기를 활용하면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 교체 1년이 다돼가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노동·연금·교육·복지 개혁의 큰 그림조차 내놓지 못하고, 노동유연성 제고 등 핵심 이슈는 비켜가고 있다. 한전·가스공사의 경영 정상화도 지지부진하다. 다 표를 의식한 임기응변식 포퓰리즘 정책 때문이다.
요즘 국민의힘이 내놓는 정책들은 민주당과 별반 차이가 없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지도자들부터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개혁의 비전을 내놓고, 국민들에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보수 정권'이 가야 할 길이다. 신문총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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