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人문화] 극단이 전부였던 삶 20년… "이제 여행처럼 다채롭게 살고 싶어요"
미술공부하다 우연히 연극에 빠져들어
1997년 극단 '여행자' 창단 쉼없는 도전
슬럼프 끝 준비한 '페르귄트' 연극 大賞
평창올림픽 총연출 맡으며 인생 전환점
영화·미디어아트 등 새로운 만남 시도
"'파우스트'는 인간의 원형과 본질에 대한 괴테의 깊이 있는 철학을 담은 작품이에요. 앞서 연출한 여러 고전과는 다른 차원이죠."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총 연출을 맡았던 양정웅(55) 연출가는 요즘 LG아트센터가 서울 강서구 마곡으로 이전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연극 '파우스트'로 관객들을 맞고 있다. LG아트센터는 지난 2021년 역삼에서의 마지막 기획공연 '코리올라누스'에 이어 이번에도 양 연출에게 새로운 작품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양 연출은 시대와 공간, 문화와 언어를 뛰어넘어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파우스트'를 선택한 뒤 제작사로 샘컴퍼니를 추천했다.
지난 21일 LG아트센터에서 만난 양 연출은 "한 인간의 여정은 누구나 숭고하고 특별하다"며 "그중에서도 파우스트의 인생은 판타지와 사유, 사랑과 방황, 지혜와 경험, 그리고 깨달음의 위대한 여정"이라고 작품 선택 계기를 밝혔다.
"내가 누구인지 등 기본적인 질문조차 꺼리는 현대인들에게 자화상처럼 거울을 마주하게 하는 작품이에요. 노력하고 방황하는 인간이 욕망의 질주 속에서 어떻게 절망하고 울부짖는가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지난달 31일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에서 첫 막을 올린 '파우스트'는 각종 티켓예매 사이트에서 연극 예매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고전을 현대적·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한 양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도 고전 속 문장들을 쉽게 풀어내 공감과 이해를 극대화했다.
양 연출은 "문학적 표현의 수사와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본연의 뜻과 괴테의 의도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잘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고 시간을 들였다"고 전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쓴 원전을 2시간 가량으로 그려내긴 쉽지 않아 이번엔 1부만 담았다. 양 연출은 "2부는 2개 파트로 나눠 총 3부작으로 완성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며 이어질 '파우스트' 2부의 연출도 시사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양 연출이 문학에 관심을 가진 건 어렸을 때부터다. 그의 부모는 소설가 양문길 씨와 극작가 겸 소설가 김청조 씨다. "제가 전공도 문학이고, 아무래도 문학 집안에서 태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학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일찌감치 했던 것 같아요. 고전을 다룰 땐 문학의 활자를 말로 잘 풀어내 연극 언어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편입니다."
양 연출은 학창시절에 진로를 미술로 정하고 그림을 그리다가 영화감독의 꿈을 품게 됐고, 우연히 참여한 청소년 연극을 통해 연극에 빠지게 됐다. 부모님 모두 연극을 사랑해 양 연출이 연극을 하겠다고 했을 때 적극 지지해주셨다. 양 연출은 "영화나 연극을 하려면 시나리오를 직접 써야 되니 문학을 공부하라고 조언해주셔서 서울예대 문창과에 가게 됐다"고 말했다.
양 연출은 1997년 극단 '여행자'를 창단한 이래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 예술에 쉼 없이 도전해왔다.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총연출을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렀다.
2008년 큰 슬럼프가 왔지만 1년가량 방황끝에 다시 작품 준비에 몰두할 수 있었다. "젊은 패기에 오만하고 자만했죠. 번아웃을 세게 겪었는데 욕망과 욕심보다 내면에 집중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는 깨달음이 생겼어요.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모든 생계활동을 다 끊고 칩거하면서 고른 작품이 '페르귄트'였어요."
양 연출은 노르웨이 극작가인 헨리크 입센의 '페르귄트'를 준비하면서 극단 단원들과 6개월 동안 연습실에 틀어박혀 영혼을 갈아넣었다고 했다. 그렇게 올라간 공연은 '2009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작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의 총연출을 맡은 것도 그의 연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양 연출은 "독일 연극의 아버지인 막스 라인하르트의 총체극과 같은 공연을 하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며 "평창올림픽은 그런 꿈을 이루게 해준 기회였다"고 밝혔다.
평창올림픽 이후엔 서울예대 공연학부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극 활동을 잠시 쉬었다. 극단 대표 자리도 배우 김은희 씨에게 넘기고 고문 활동만 하며 운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극단의 삶이 제 삶이고 제 삶이 극단인 채로 20년을 살았더니 이제 자신의 삶을 찾아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예술을 좀 펼쳐볼까 싶어서 영화도 하고 미디어아트도 했어요."
양 연출은 지난 2021년 3월 개봉한 영화 '더 박스'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를 했고, 지난해에는 울산시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 전시에 'X미인도'를 내놓으며 미디어아트 작가로도 데뷔했다. 지금은 좀비를 소재로 한 웹툰 원작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1월에 개막하는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의 총감독도 맡아 '파우스트' 폐막 이후에도 바쁜 나날을 보낼 예정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형식의 예술에 계속 도전해보고 싶다"는 양 연출은 그 원동력으로 '호기심'을 꼽았다. 그는 "이젠 젊기만 한 나이는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저희 극단 이름인 '여행자'처럼 가보지 않은 곳을 가고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는 건 지속하고 있다"며 "거창하게 도전과 실험을 얘기한다기 보다 그냥 삶의 여행을 좀 더 다채롭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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