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돈봉투’ 의혹과 ‘4지 사건’의 종말 [유레카]

강희철 2023. 4. 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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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특수부 검사들은 금품수수 사건을 '4지 사건'이라 부르곤 했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 검사들은 사실상 주고받은 두 사람만 아는 뇌물 등 사건의 경우 수사와 증거 확보가 매우 어렵다는 뜻에서 이 말을 쓰곤 했다.

과거엔 4지 사건 당사자가 1도라도 하면 수사기관이 골탕을 먹었다.

물론 세상엔 안 들킨 4지 사건이 훨씬 많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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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민주당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 김재욱 화백

예전 특수부 검사들은 금품수수 사건을 ‘4지 사건’이라 부르곤 했다. 세상에 딱 넷만 알 정도로 은밀하다는 뜻인데, 중국 고전 <후한서>의 ‘양진열전’에 나온다.

한 지방의 태수로 부임하게 된 양진에게 하위 직급인 현령이 인사청탁과 함께 금덩이를 건네며 말했다. “한밤중이라 보는 이가 없으니 넣어두시지요.” 양진이 점잖게 꾸짖었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 검사들은 사실상 주고받은 두 사람만 아는 뇌물 등 사건의 경우 수사와 증거 확보가 매우 어렵다는 뜻에서 이 말을 쓰곤 했다. 지난해 특수통인 이원석 검찰총장이 내부 강연에서 공직자의 바른 처신을 강조하며 이 고사를 인용했다고 한다.

‘4지’와 한 쌍처럼 자주 쓰이던 ‘1도2부3백’이라는 은어도 있다. ‘1도’는 혹여 수사를 받게 되면 일단 잡히지 말고 도망부터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뜻이다. 내친김에 오리발을 내밀며 부인(2부)하는 것이 차선이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백(백그라운드·배경)을 동원해 무마를 시도(3백)하라고 가르친다. 원래는 마지막에 ‘4돈’이 있었다. 체포되거나 출석이 불가피하면 몸값 비싼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최대한 방어하라는 것이 네번째 계책이다.

1도는 처벌저감 효과가 없지 않다. 1997년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조사받던 고위 공무원이 영장 청구 직전 검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도망갔다. 그는 10여년 뒤 자수해 훨씬 가벼운 죗값을 치렀다. 5년간 도피 생활을 하다 최근 귀국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도 비슷할 거란 예상이 많다. ‘테라·루나’ 사건의 권도형도 끈질긴 1도 끝에 최근에야 붙잡혔다.

잊혔던 이 말들이 요즘 다시 소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이 불거지면서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송영길 전 대표가 24일 국내로 돌아오게 됐지만, 한동안 귀국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부쩍 더 회자됐다.

과거엔 4지 사건 당사자가 1도라도 하면 수사기관이 골탕을 먹었다. 그러나 자금추적이 일반화하고, 천지 사방에 매달린 카메라가 아무나 찍고 저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용자보다 사용자의 행적을 더 잘 기억하는 스마트폰이 ‘증거의 보고’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번 돈봉투 사건도 ‘발화 지점’은 녹음파일이었다. 물론 세상엔 안 들킨 4지 사건이 훨씬 많겠지만.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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