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패’ 녹음파일 쥐고도 ‘첫 단추’ 못 꿴 검찰···송영길 소환도 ‘이따가’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방대한 분량의 녹음파일을 쥐고서도 ‘윗선’을 향한 수사의 첫 단추로 여긴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의 신병확보에 실패했다. 윤관석·이성만 민주당 의원 사무실 등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 이후 열흘 가까이 속도전을 펼치던 검찰 수사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수사 종착지로 지목되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검찰 조사를 자청하며 귀국길에 오른다고 했지만, 검찰로서는 핵심 피의자인 강 협회장을 비롯한 금품 공여자 측에 대한 선행조사 없이는 섣불리 소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구속영장 기각으로 녹취를 넘어서는 추가 증거 확보가 필요해진 검찰의 ‘수사 시간표’도 예상보다 길게 설정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윤재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강 협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구속영장심사)을 연 뒤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강 협회장이 압수수색 이후 관련자들과 증거인멸을 시도하거나 입맞추기를 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추가적으로 규명해야 할 부분이 남았다는 것이다. ‘관련자들의 증거인멸 시도와 입맞추기 정황이 있으며 사안이 중대하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검찰이 강 협회장부터 신병 확보에 나선 건 그가 이 의혹의 핵심 인물이자 윗선으로 향하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그는 2021년 3~5월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송영길 전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민주당 의원 등 관계자들에게 9400만원을 제공하라고 지시·권유하고 직접 제공한 혐의(정당법 위반) 등을 받는다. 강 협회장을 고리로 윗선 수사를 확대하려던 검찰 계획에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은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통화 녹음파일이라는 강력한 물증을 제시했음에도 영장을 받아내지 못했다. 녹취록을 기반으로 한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수사와 재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검찰은 2021년 녹취록을 혐의의 주요 근거로 제시하며 영장을 청구했지만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 차례씩 기각된 바 있다. 법원은 지난 2월 곽 전 의원의 알선수재·뇌물 혐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할 때도 50억 클럽 의혹과 관련된 녹취록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녹취록 내용을 그대로 증거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녹취록 내용의 전후 맥락과 상황, 녹취록 이외의 증거를 함께 고려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번에도 이 전 부총장의 녹음파일의 전체 내용과 맥락을 본 뒤 규명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녹음파일 외에 다른 증거가 부족했다고 봤을 수도 있다. 강 협회장 등이 마련한 9400만원의 출처 등 일부 혐의사실이 불명확하다고 여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보강수사로 녹음파일 외에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추가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 전 대표가 검찰 수사를 위해 오는 24일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조사는 당장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 검찰은 강 협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받아내 증거인멸 시도를 차단한 뒤 공여자 측인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을 조사하고 이어 송 전 대표를 부를 방침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공여자 쪽부터 시작해 수수자 쪽으로 수사를 확대해나간다는 기본 방향은 변함 없다”며 “송 전 대표가 사법 절차 밖에서 한 인터뷰에 수사는 영향받지 않는다”고 했다.
사건의 특성상 야당 내부의 정치적 상황이 수사의 가장 큰 변수라는 얘기도 나온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23일 “검찰 입장에서는 뜸을 들여야 진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과거 대선자금 수사 때처럼 관련자들이 서로 책임 공방을 하다 보면 진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 송 전 대표 등 관련자들에게 어떤 요구를 할지, 어디까지 책임을 지울지에 따라 수사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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