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포비아 덮친 동탄 …"월세로 돌려달란 전화만 와요"
"전세 피해 사건이 터진 뒤 이번주에 오피스텔 전세를 보러 온 손님이 한 명도 없었어요."
최근 인천 미추홀 전세사기 사건에 이은 화성 동탄신도시 '깡통전세' 대란으로 전세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중개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면서 당분간 거래절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서둘러 전세사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근본 원인을 해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3일 방문한 동탄역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을 흐린다더니 악성 임대인과 그의 전속 중개업자 한 명 때문에 동탄 전체가 피해를 입고 있다"고 토로했다. 동탄역 일대는 롯데백화점을 비롯한 상권이 잘 갖춰져 있어 2030 직장인들의 오피스텔 수요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하지만 최근 오피스텔 250채를 보유한 부부가 전세보증금 반환을 못하겠다며 "경매에서 낙찰받으라"는 문자를 세입자들에게 보내고 잠적했다. 이에 따라 동탄역뿐 아니라 1동탄 지역까지 오피스텔 전세시장이 초토화됐다.
오피스텔이 신축되거나 완공을 앞둔, 롯데백화점 맞은편 블록은 요즘 한창 거래가 몰릴 시기지만 이번 대란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곳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며칠 새 전세 문의가 끊기다시피 했다"면서 "일부 임대인은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있지만 수요 자체가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이날 동탄역 인근 오피스텔 앞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은 딸과 함께 공인중개업소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는 "딸아이가 월세로 살 집을 함께 보러 왔다"면서 "아이가 부동산 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어 불안해서 같이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1동탄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번 '깡통전세' 대란을 일으킨 박 모씨 부부는 2동탄 지역보다 1동탄에 더 많은 오피스텔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폴리스로를 기준으로 양쪽에 형성된 오피스텔 밀집 지역이다. 이곳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사건이 터진 뒤 전세 문의는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면서 "앞으로 월세만 거래되거나 전세금을 확 낮춘 물건만 거래될 듯하다"고 말했다. 바뀌는 전세보증보험 제도도 오피스텔 '전세 실종'을 부채질한다. 정부가 예고한 대로 다음달부터는 집값의 90%까지만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집값의 100%까지 보험에 들 수 있었는데 한도가 줄어들면서 전세 기피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동탄 전세 피해자들이 모인 단톡방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오피스텔 현재 시세는 전세보증금보다 1000만~2000만원 정도 낮은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경매로 넘겨진 오피스텔을 울며 겨자 먹기로 세입자가 직접 낙찰받더라도 전세보증금을 전액 회수할 수 없고, 여기에 취득세 부담까지 떠안아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례가 동탄신도시 오피스텔에만 그치지 않고, 앞으로는 전국적인 '깡통전세' 대란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집값 급등기에 전세계약을 하고 올해 2년 만기가 되는 시점에서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진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드러내듯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는 지난달 31일 개소 후 19일까지 3주일도 안 된 기간에 피해 사례 1000여 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대면 상담을 마친 피해자는 100여 명에 달한다. 센터 상담사는 "최근 들어 (동탄을 포함한) 화성시 피해 신고가 크게 늘었지만 수원·안산·오산 등지에서도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 피해 주택 유형과 관련해서도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이 많고, 아파트도 피해 접수가 들어온다"고 전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도 전세사기 피해 지역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인천 미추홀과 화성 동탄뿐 아니라 수원, 부천, 시흥 등 권역별로 전세 피해자들의 단톡방이 개설돼 있고, '김○○ 전세피해방'처럼 임대인 이름으로 만들어진 단톡방도 10여 개에 달한다. 대부분 2030 직장인인 피해자들은 업무시간을 쪼개 피해지원센터 또는 변호사 상담을 받고 있다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잠도 오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다.
[박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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