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 심화 속 … 韓 전략적으로 명료해져야 동맹 강화"
우리 정상의 12년 만의 국빈 방미이자 윤석열 정부의 최대 외교 이벤트인 한미동맹 70주년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전직 외교 수장들은 이번 회담이 동맹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도 핵 보장 구체화, 경제안보 세부 합의 등의 성과를 거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야 간 외교정책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정치 논쟁은 국경 안에서 멈춰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과거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었던 시절 버락 오바마 정부와 한미정상회담을 10회(2008~2010년) 수행했고,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빈방문(2013년)을 비롯해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을 8회(2013~2017년) 수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국빈 방미·한미정상회담에서 꼭 챙겨야 할 성과가 있다면 무엇인가.
▷유명환 전 장관=일단 한미동맹 70주년의 해에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미 의회에서 연설을 한다는 그 자체가 가장 큰 성과일 뿐만 아니라 한미 관계를 강화하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5월 윤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미래 지향적 한미 관계의 발전 방향에 관해 큰 틀의 합의를 봤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이를 재확인하고 양국 정부가 취해 나갈 정책 방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윤병세 전 장관=이번 국빈 방미에서는 북한의 핵 억제와 한국에 대한 핵 보장 강화 구체화, 경제안보 및 전략적 경제 기술 협력의 세부 합의 내용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글로벌 및 인도·태평양 지역의 협력 중 중국과 러시아에 관련된 표현의 강도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의 의회 및 하버드대 연설에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과 가치동맹 비전이 행동이나 메시지로 구체화되는 부분, 한미동맹의 미래 청사진과 미래 세대의 교류 등이 우선적 관전 포인트라고 하겠다.
―북한의 핵 도발 강도가 날로 거세지고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자체 핵 무장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국민의 불안을 달랠 수 있는 획기적 핵 억지책을 기대할 만한가.
▷유 전 장관=북한의 핵 도발 빈도와 강도가 점점 고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그 점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리고 있는 것이다. 2만8000여 명의 주한미군이 상주하고 있고, 한미연합사령부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전쟁 발생 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확장 억제'다. 더구나 북한이 도발을 자행할 때마다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함으로써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견제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에 큰 억제 효과를 보여준다.
▷윤 전 장관=점증하는 한국의 우려를 완화시키기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벗어나지 않고도 현 단계에서 보다 실효성 있는 강화된 확장 억제 조치가 도출될 것으로 본다. 방점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처럼 전술핵을 지상 배치하지는 않더라도 미국의 핵과 전략자산에 대한 정보 공유·기획·운영 과정에서 한국의 참여도를 나토 일반 회원국 수준 이상으로 격상하는 '한국형' 내지 '한미 동맹 맞춤형' 핵 공유 체제를 수립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본다. 또 향후 한·미·일 간 정보 공유와 핵 기획 협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으로 본다.
―정부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행동하는 한미동맹'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동맹의 미래를 위해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더 선명한 반중 노선이 필요한가.
▷유 전 장관=한미동맹 강화와 한중 간 전략적 협력 관계 강화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도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를 상호 '제로섬' 관계로 보지 말고 '플러스섬' 관계로 발전시키자고 강조한 바 있다. 미·중 관계가 상호 경쟁 관계에서 장기적인 긴장 관계로 전환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미·중 관계를 개선하는 데 있어 한국의 역할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 있어 한국은 이미 건설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상호 의존적인 한중 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윤 전 장관=우리로서는 당연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고 경제적 번영을 증진하는 것이 우선순위이다. 그러나 신냉전이 진전되면서 격동하는 국제 정세의 큰 맥락 속에서 사안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행동하는 한미동맹'은 이러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내실화하기 위해 안보·경제·기술·가치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본다. 과거보다는 전략적 명료성이 분명해지는 것이라 하겠다. 국제 질서가 진영 간 대립으로 분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핵심 국가로서 상당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한 대원칙과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불필요한 긴장을 예방하고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게 메시지를 관리하고 확대된 집단적 대응 장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경제안보 분야에서 최근 우리 기업의 수출 부진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반도체법 등 산업정책이 맞물리면서 국내에서 부정적 여론도 만만치 않다. 경제안보 분야에서 우리 국민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유 전 장관=바이든 행정부의 산업정책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내의 제조업 기반을 다시 구축하기 위한 것이므로, 한국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국민들의 우려가 큰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제 경제안보는 국제 정치의 현실이다. 그만큼 한미 간에 전략적인 차원에서 첨단 반도체는 물론 5G·바이오·우주산업 등에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발굴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협력 관계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윤 전 장관=기본적으로 글로벌 산업·기술 생태계에 앞으로 상당 기간 자국 우선주의 경향이 계속될 것이라는 불편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지각 변동을 인식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면 그간 유관 부처 장관들이 각각 우리 기업들의 우려를 제기하고 기업들이 각개 약진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차원을 넘어서서 양국 정부 차원의 제도적 협의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졌는데 특히 외교 분야에서 부정 평가가 높다. 외교 분야의 성과를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유 전 장관=최근 미국 방문을 앞두고 외교안보 라인이 대폭 교체돼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고 일본을 방문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내 외교안보 관계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여야 간 외교정책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그런 논쟁은 국경 내에서 멈춰야 한다. 외교 분야의 경우 그 상대가 주권국가이고 모두 자신의 국내 정치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시적 성과를 단기간 내 이루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외교는 국가의 안보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향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도 서서히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윤 전 장관=최근 외교 분야 지지율 하락의 큰 요인인 강제징용 해법과 정상 방일 결과에 대해서는 사안의 성격과 문제의 원인을 냉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정치적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결단한 것이지만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부의 노력과 국민의 눈높이는 항상 큰 격차가 있음을 재확인시켜 준 것이다. 향후 이어지는 G7 정상회의 등의 계기에 한일, 한·미·일 관계 개선과 선순환이 얼마나 알차고 속도감 있게 잘 이루어지느냐가 여론 전환의 관건이다. 중·러와의 관계는 시대 변화의 성격상 앞으로 점점 어려워질 가능성이 큰데,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핵심 국가로 부상한 한국이 부담해야 할 역할과 고뇌를 국민들과 진솔하게 공유해야 할 것이다. 그간 여타 외교 사안의 경우 본질과 무관하게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식의 실점 사유가 쌓이고 이것이 정쟁화된 측면이 있다. 외교는 전략적 큰 틀에서부터 세부 사항과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의전까지 어느 하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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