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빠진 한·중관계…인식 부족·최악의 타이밍 겹친 윤 대통령 발언

박은경 기자 2023. 4. 2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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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 문제를 별개 주권 인정받는 남북관계와 비교
시진핑, LG디스플레이 생산기지 방문 일주일 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수교 30년을 넘어선 한·중관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을 기점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에 대한 인식 부족을 보여줬고, 시기적으로도 중국이 매우 예민한 시점에 나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 기업과 교민들이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로이터통신과 인터뷰가 공개된 뒤 나흘간 중국 측 반응을 분석해보면, 중국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발언보다 양안 문제를 남북한 간의 문제로 빗대 말한 부분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고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 전 세계적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은 양안 문제는 유엔에서 별개 주권국으로 인정받는 남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고 있다. 중국 입장에선 윤 대통령의 발언을 한국이 1992년 중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한 수교 원칙을 깬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국 외교부가 21일 “하나의 중국 원칙 존중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갈등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중국 외교부가 23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쑨웨이둥(孫衛東)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지난 20일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에게 “한국 지도자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대만 문제를 한반도 문제와 비교했다”면서 “북한과 한국은 모두 유엔에 가입한 주권국가로, 한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는 성격이나 경위가 전혀 달라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점도 중국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해 온 환구시보가 이날 사설에서 “분단의 쓰린 기억이 있는 한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중국을 더 이해하고 지지하기를 바랐는데 (양안 문제에) 무지하고 악질적인 말을 할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한 것도 이런 인식을 드러낸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대만 압박을 높이는 가운데 공개됐다.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들은 지난 18일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적시했다. 올해 G7 의장국인 일본이 이번 공동성명 채택을 주도했는데, 이 같은 기조는 내달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이 만나 3국 안보협력 강화를 공언하고 대만 문제를 언급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중국이 강도 높게 반발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2일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 LG디스플레이 생산기지를 방문해 한·중 우의를 강조한 뒤 불과 일주일만에 나온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지난달 양회에서 집권 3기의 공식 출범을 알린 후 방문한 첫 외자기업이다. 외교 소식통은 “첨단 기술자립을 외쳐온 시 주석이 이례적으로 외자기업에 방문해 한국에 손을 내밀었는데 대만 발언으로 체면을 구긴 셈이 됐다”면서 “외교도 내부 결속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중국으로서는 최고 지도자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강경책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석열 정부의 ‘마이너스 외교’에 한·중 간 긴장이 고조되면 한국 기업들만 애먼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독일·스페인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 등 미국의 우방으로 꼽히는 유럽 선진국 수장들조차 중국을 찾아 탈동조화(디커플링)에 반대하며 실리 외교를 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대만 문제에 개입해 얻을 이익이 없다는 말하고, 디커플링을 대중 억제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조차도 경제적 실리를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 미국 경제를 총괄하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우리는 중국 경제와 우리 경제를 탈동조화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정작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인 한국의 대통령이 외교적 파장은 고려하지 않은 언사로 공격 빌미만 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최악의 시기에 외신을 통해 나온 윤 대통령의 대만 발언은 한·중관계에 큰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말참견하지 말라”는 거친 언사로 반발했고, 한국 외교부는 “국격이 의심된다”고 응수하면서 양국 간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질 기세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한국이 순회 의장국인 한·중·일 정상회의 성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강제동원(징용)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과 코로나19 등으로 2019년 12월 이후 열리지 못하다가 한·일관계 개선 분위기를 타고 윤석열 정부가 연내 개최를 추진 중이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개최까지 무산시키지는 않겠지만, 점점 끈끈해지는 한·미·일 협력이 중국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한·중·일 정상이 만나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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