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고갈' 원화, 달러보다 더 약세
SVB파산 뒤 상관관계 무너져
글로벌 달러 약세 심화에도
한달새 원화 하락 주요국 1위
外人배당 역송금·위안 약세
수출 부진까지 '삼중고' 직면
미국 은행 파산 등에 따른 금융 불안으로 인해 글로벌 긴축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갔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달러가 약세를 띠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여야 할 원화가 달러와 '동반' 약세를 보이면서 연중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무역수지의 적자 행진이 이어지고 있고, 원화와 동조화 경향이 높은 중국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는 데다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이 배당금 역송금에 나서는 등 계절적 요인이 겹치면서 원화가 맥을 못 추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달러가 약세 기조를 보이고 있다. 이달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1~102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장중 한때 약 1년 만에 100대로 떨어졌다. 달러인덱스는 지난 2월 1일 101.22에서 3월 8일엔 105.66으로 솟구쳤다가(달러 강세) 이달 21일에는 다시 101.82로 주저앉았다.
달러인덱스가 101을 소폭 웃돌던 올해 1월 말과 2월 초 달러당 원화값은 1220.3~1231.7원이었다. 하지만 지난 21일 달러인덱스가 2월 초 수준으로 회귀했을 때 달러당 원화값은 1328.2원을 기록하며 연중 최저를 기록했다. 달러인덱스를 감안할 때 원화값이 다른 통화 대비 100원 저평가된 셈이다.
게다가 원화는 주요국 통화 중 유독 낙폭이 크다. 최근 한 달간 달러 대비 각국 통화 등락률을 살펴보면 원화값은 1.296% 떨어져 아시아 11개국 통화 중 필리핀 페소(-2.786%) 다음으로 하락폭이 가장 컸다. 같은 기간 23개 신흥국 통화 중에서 원화보다 통화가치 하락폭이 컸던 것은 '상습 채무 불이행 국가'로 꼽히는 아르헨티나 페소화(-6.187%)와 1년 넘게 전쟁 중인 러시아 루블화(-5.459%), 필리핀 페소화 등 3개뿐이었다.
전문가들은 원화의 이례적인 약세가 내부 문제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가장 큰 원인은 수출 부진에 따른 무역 적자다. 한국 수출의 텃밭인 반도체와 대(對)중국 수출이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면서 한국 무역수지는 작년 3월부터 이달까지 14개월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수출 부진이 길어지면 원화값 저점을 1360원까지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에 집중적으로 외국인투자자에게 지급된 기업 배당금도 원화 약세 요인 중 하나다. 외국인투자자들이 배당금을 국내 주식 재투자에 활용하지 않고 본국으로 역송금하며 달러 수요가 늘어났다.
강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됐던 위안화가 약보합 흐름을 보인 것도 원화 약세를 부추긴 요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환당국의 개입도 약발이 잘 먹히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3일 국민연금공단과 350억달러 규모의 외환스왑을 맺으며 외환 시장에서의 국민연금 달러 수요를 줄였고, 최근 수차례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물까지 나왔지만 원화값 하락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원화의 유별난 약세 지속 여부는 결국 수출 회복에 달렸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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