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에 분노한 중국…깨진 균형외교, 방미 이후 벼른다

최현준 2023. 4. 2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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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엄중한 우려와 강렬한 불만을 제기한다.”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인 대만 문제와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 “(이 문제는) 북한 문제처럼 지역 차원을 넘어선 세계적 문제”라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19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 대해 중국이 나흘째 강한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중 관영 “한국 외교 국격 산산조각”

중국 외교부는 23일 새벽 1시27분께 누리집을 통해 자료를 내어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명령을 받아’ 한국 지도자의 대만 문제와 관련된 잘못된 발언에 대해 지난 20일 정재호 주중한국대사에게 엄중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명령을 받아’(奉命)란 표현으로 이 항의가 중국공산당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된 첫날인 20일엔 “다른 사람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겠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고, 대만 문제를 신중히 처리해 달라”(왕원빈 외교부 대변인)고 불만을 터뜨렸고, 21일엔 윤 대통령이나 한국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타 죽을 것”(친강 외교부장)이라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이에 더해 이례적인 시간대에 추가 자료를 내놓으며 불만을 거듭 쏟아낸 것이다.

<글로벌 타임스> 등 중국 관영 언론도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 났다’라는 사설을 누리집 최상단에 올리며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잘못된 인식이 이렇게 멀리 갔는지 몰랐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한국을 향해 거듭 날 선 비판을 쏟아내는 것은 26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민감한 상황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발언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이 그어둔 ‘레드 라인’을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윤 ‘대만 발언’ 금지선 넘는 도발로 판단

첫째, ‘외교 문외한’인 윤 대통령의 발언 자체가 극히 거칠었다는 점이다. 한국이 공식 문서에서 중국이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만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은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 때였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낸 공동성명에서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언급했다. 대만 문제를 중시하는 미국을 배려한 선택이었지만, 곧바로 최종건 당시 외교부 제1차관 등이 나서 “일반론적인 문장을 담은 것”이라며 중국의 불만을 미리 봉쇄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번엔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당시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말을 처음 썼다.

중국의 신경을 더 긁은 것은 자신들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으로 파악하는 대만 문제를 북한에 빗댄 것이다. 윤 대통령이 1992년 시작된 한-중 수교의 기본 전제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위험천만한 발언이었다. 미·일 정상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지만, 괜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고 있음을 먼저 밝힌다. 중국 외교부는 23일 자료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한국 지도자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무엇 하나 언급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중국이 이례적인 분노를 쏟아내는 근본 원인은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미국 편향 외교 탓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시기 한-중 관계를 안정시킨 대중 ‘3불 정책’(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에 불참하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은 이미 형해화된 지 오래다. 한·미·일은 지난 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안보회의(DTT)를 개최하고 미사일방어 훈련과 대잠수함전 훈련을 정례화했다. 한국 정부는 나아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정보 공유 체계를 확대·강화하거나 새로운 체계를 만들려는 구상을 내비치고 있다.

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향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냉전 해체 이후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이 누린 번영의 토대가 됐던 ‘미-중 균형 외교’의 폐기와 ‘한·미·일 3각 동맹’을 통한 중국 봉쇄이다. 베이징에 있는 한 중국인 소식통은 “중국은 이 발언을 보고, 한국이 한층 더 미국 쪽에 선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곧 있을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 구체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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