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파크골프장인가요”···마을 공원을 지키려는 사람들
서울 서대문구 백련산 자락에는 ‘논골마을’이라 불리는 작은 동네가 있다. 홍제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0여분쯤 굽이굽이 올라가면 나오는 주택가 동네이다. 이 마을에 30년 거주한 한 주민은 “올라오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공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조용한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 서대문구청이 올 초 동네의 유일한 공원인 ‘백련근린공원’을 ‘파크골프장’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부터 별일 없던 동네는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 20~30년간 살아온 주민들을 중심으로 ‘파크골프장 반대를 위한 주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꾸려졌다.
비대위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백련근린공원에 모여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23일은 8번째 시위였다. 비대위는 오프라인 400명, 온라인 1800명 등 파크골프장 조성 반대 서명을 모으기도 했다.
오후 2시가 다 돼 가자 비대위에 속한 주민을 포함해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듯 하나둘 공원 벤치에 모여들었다. 이날 시위에는 50~80대 장노년층 30여명이 참석했다. 구청과의 소통을 맡은 장성암 비대위원장이 지금까지의 경과를 참석자에게 설명했다. 주민들이 궁금한 점을 장 위원장에 되묻기도 했다. 50년간 3대가 걸쳐 논골마을에 살았다는 강순옥씨(71)는 “이 좋은 공간을 왜 주민들로부터 빼앗아 가려는 건지 묻고 싶다”고 했다.
파크골프는 공원에서 골프를 치는 개념의 스포츠로 이용료가 저렴하고 약식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어 5~6년 전부터 중장년층 사이에서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에 최근 지자체들은 잇따라 파크골프장 조성을 추진하고 나섰다.
서대문구청은 구비 7억5000만원을 투입해 오는 11월 백련근린공원 일대에 파크골프장을 착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이 지난해 8월 직능단체와의 차담회에서 관내 파크골프장 설치 건의를 받은 뒤 사업계획이 수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파크골프장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에게 쉼터로 활용돼 온 공원을 헐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 “누구를 위한 골프장 건설이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서대문구청은 지난 17일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 및 검토해 반영할 계획”이라며 구청장 직통문자 민원에 답했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통화에서 “아직 조성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며 “추후 주민 설명회 등을 통해 의견 수렴 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비대위 주민들은 ‘공원 보존을 위해 안이 철회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논골마을에 35년 거주한 오광부씨(81)는 “공원은 주민들에게 사랑방이자 휴식터”라며 “파크골프장이 들어서면 마을 노인들은 갈 데가 없다”고 했다. 동네에서 20년째 미용실을 운영해 온 황서하씨(49)는 “주택가와 공원이 딱 붙어있지 않냐”며 “잔디 때문에 농약을 뿌리면 아이와 노인들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골프장 조성 및 관리에 사용되는 농약은 전국 각지에 파크골프장이 들어설 때마다 주민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문제다.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공원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들며 “서울 도심에 이만한 생태공원이 없다”고 했다. 이날 오전 11시 공원 내 유아숲체험장에는 다섯 가구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나와 있었다. 아이들은 실개천에서 올챙이를 만져보고 주변에 핀 들꽃을 관찰하기도 했다.
딸 나은양(11)과 공원을 찾은 주민 정화연씨(44)는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고 했다. 그는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원을 소수의 파크골프 회원만을 위해 뒤엎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대문구체육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구내 파크골프 회원 수는 총 237명이다. 나은양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나무들을 베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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