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중대사에 윤 대통령 ‘대만 발언 항의’ 내용 뒤늦게 공개
중국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출국을 하루 앞둔 23일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통해 윤 대통령 대만 발언에 대해 공식 항의한 내용을 뒤늦게 공개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에 대해 신중을 기하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다시금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쑨웨이둥(孫衛東) 외교부 부부장이 대만 문제에 관한 한국 지도자의 잘못된 발언에 대해 지난 20일 정 대사에게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며 발언 내용을 공개했다. 공개된 내용을 보면 쑨 부부장은 정 대사에게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발언이며 중국 측은 심각한 우려와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고 대만은 분할할 수 없는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라며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 중 핵심이며 어떤 외부 세력의 개입이나 간섭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쑨 부부장은 이어 “한국 지도자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대만 문제를 한반도 문제와 비교했다”며 “우리는 한국 측이 한·중 수교 공동성명의 정신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며 대만 문제에 있어 언행에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앞서 지난 21일 정례브리핑에서 윤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 베이징과 서울에서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중국 관영매체들도 윤 대통령 방미에 앞서 공세에 가세하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이 “방미를 앞두고 미국에 충성심을 표시하고 중국을 도발해 미국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발언은 1992년 중·한 수교 이후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최악의 입장 표명”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 기밀문서에서 미 정보기관의 한국 고위 관계자 대화를 불법 감시한 것이 드러났을 때 한국은 왜 ‘강력히 항의’하지 않고 온순한 고양이처럼 물러섰느냐”며 “한국은 워싱턴에서 잃어버린 국격과 외교적 자존심을 중국을 통해 만회하려는 것이냐”고 따졌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보도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해협의 긴장 상황에 대해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대만 문제에 대해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써 가며 반발하자 한국 외교부는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해 강력 항의했다.
한·중 간에 대만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설전과 공방은 24일 시작되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더욱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윤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공동 기자회견을 계기로 대만 문제에 대해 보다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경우 한·중 관계 전반이 더욱 악화되는 상황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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