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슈가 해금 켜고, 블랙핑크는 기와지붕 세우고... 미국에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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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간판 아이돌들이 전통문화를 음악과 공연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요즘 K팝 아이돌들은 전통문화를 자신들의 개성을 부각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지렛대로 사용한다.
밴드 롤러코스터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DJ 히치하이커는 "해외에서 한국적 요소는 이제 '힙(Hip·개성 있는)'한 문화가 됐다"며 "이런 변화 속에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K팝 그룹들이 전통적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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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요소 '힙'해진 결과"
#1. 흰 천에 수묵의 대범한 붓질로 웅장한 산세가 표현된 그림들이 나부끼는 곳에서 연주자가 "끼잉" 하고 해금을 켜기 시작했다. 그 구슬픈 소리 위에 거문고와 가야금의 연주와 대금의 청아한 소리가 하나둘씩 포개졌다.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국악 공연이 아니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가 지난 21일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에 공개한 음악 다큐멘터리 '슈가: 로드 투 디 데이'에서 국악 연주자들의 라이브 연주 시작 후 랩을 쏟아냈다. 슈가가 두 줄로 된 한국의 전통악기 해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신곡 '해금'은 22일 기준 미국 등 90개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 정상에 올랐다.
#2.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 현지 최대 음악페스티벌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의 메인 무대인 코첼라 스테이지엔 시옷자(字) 모양의 전통 기와지붕을 연상케 하는 대형 세트가 들어섰다. 분홍색으로 빛나는 세트 배경으로 블랙핑크는 강렬한 비트 사이에 거문고 연주 등을 넣은 '핑크 베놈'을 열창했다. 이날 공연 무대 연출의 키워드는 '한국 전통'. 블랭핑크는 '타이파 걸' 무대에선 대형 깃털을 활용해 부채춤도 선보였다. 미국 LA타임스는 "블랙핑크가 절 지붕 아래서 발을 구르며 거대한 무대를 활용해 K팝의 매력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전통 악기 소리 모으는 아이돌
K팝 간판 아이돌들이 전통문화를 음악과 공연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파격과 혁신으로 굴러가는 세계 대중문화 시장에서 한국의 전통은 K콘텐츠의 세계화를 위해 그간 되도록 드러내지 않아야 할 요소로 여겨졌다. 이제는 아니다. 요즘 K팝 아이돌들은 전통문화를 자신들의 개성을 부각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지렛대로 사용한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커진 데 따른 변화다.
23일 빅히트뮤직 관계자에 따르면 슈가는 3년 전부터 전통 악기 소리를 모았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공식 행차에 쓰이는 행진 음악인 대취타를 모티프로 '대취타'(2020)를 만들면서 그의 국악 탐구는 시작됐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생전에 다큐멘터리에서 '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을 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세상의 다양한 소리로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각 나라 고유의 악기 연주자들을 모셔 음악을 만드는 게 꿈이죠." 이런 목표를 세운 슈가는 국악과 힙합 비트, 록 음악 등을 융합해 솔로 앨범 '디 데이'를 21일 냈다. 슈가는 전통으로 틀을 깬다. 신곡 '해금'엔 '금지하던 것을 푼다'는 해금(解禁)의 뜻도 담겼다. 슈가는 이 노래에서 개방과 포용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통제와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꼬집는다.
이미 '뚜두뚜두'(2018) 뮤직비디오에서 기와지붕 모형의 세트를 처음 선보인 블랙핑크는 K팝 아이돌그룹 최초로 코첼라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초청되자 아예 그 세트를 미국까지 실어 날랐다. YG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코첼라는 음악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의 트렌드를 교류하는 장"이라며 "블랙핑크 멤버들과 오랜 기간 논의해 무대와 퍼포먼스를 한국 고유의 문화와 결합해 선보이기로 했다"고 이색 무대를 설치한 배경을 들려줬다.
K팝 주 무대로 소개된 궁... 영어권 관람객 증가
최근 2~3년 새 K팝 시장에서 전통과 접목한 K팝 창작 붐이 거세지고 있다. 스트레이키즈는 판소리 창법과 북청사자춤을 '소리꾼'(2021)에 녹여 미국과 일본 공연에서 선보였고, 방탄소년단이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서 펼친 '아이돌' 공연은 미국 NBC 인기 토크쇼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2020)으로 방송을 탔다. 밴드 롤러코스터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DJ 히치하이커는 "해외에서 한국적 요소는 이제 '힙(Hip·개성 있는)'한 문화가 됐다"며 "이런 변화 속에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K팝 그룹들이 전통적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팝의 주요 무대로 궁궐이 쓰이면서 국내 고궁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도 덩달아 늘고 있다. 문화재청이 3월 공개한 경복궁·창경궁 등 4대 궁 관람객 수 현황을 보면, 지난해 영어권에서 온 외국인 관람객 수는 35만 명으로 10년 전인 2012년 30만 명보다 5만여 명 증가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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