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공급망 전쟁의 시대, 배터리 음극재 '탈중국' 현장
도전 10여년만에 '음극재 중국천하' 균열…세계 점유율 8%수준
(세종=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구체화하자 접촉해오거나 직접 찾아오는 국내외 기업이 정말 부지기수입니다. 비중을 줄여야 하는 중국 빼고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보니 저희에게 오는 것이죠."
지난 20일 세종시 첨단산단의 포스코퓨처엠 세종2공장에서 만난 정규용 음극소재실장은 최근 국내외에서 쏟아지는 '러브콜' 상황을 전하며 한껏 상기된 표정이었다.
국내외의 잠재 고객들이 먼저 '을(乙)'을 찾을 정도로 포스코퓨처엠의 몸값이 오르고 있다.
미국의 IRA 세부 지침 공개 후 배터리 업체에는 중국 소재 의존도 낮추기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기 때문이다.
IRA는 미중 신냉전이 빚어낸 '공급망 전쟁'을 배경으로 태동했다.
전기차 배터리에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써야 최대 3천750달러를 차량 구매 보조금이 나간다. 게다가 이 비율은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80%까지 오른다.
'핵심 광물'에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같은 양극재 소재와 더불어 포스코퓨처엠이 만드는 음극재의 주요 재료인 흑연도 들어간다.
보조금을 꼭 받아야 하는 각국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공급사에 이 기준을 맞추라고 압박할 수밖에 없다. 배터리 공급 업체들 역시 소재 공급망에 큰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작년 기준 5억8천만달러(약 7천7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음극재 시장에서 포스코퓨처엠의 시장 점유율은 8%가량.
풍부한 천연 흑연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일찌감치 장악한 중국 업체들을 빼면 포스코퓨처엠과 일본의 히타치, 미쓰비시 정도가 가능한 대안인데, 업계에서는 가격·성능 면에서 포스코퓨처엠 제품이 일본 업체 대비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한다.
이번에 찾아간 포스코퓨처엠 세종2공장에서는 천연 흑연 음극재가 생산된다.
안전모와 방진 마스크를 쓰고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완전히 자동화된 설비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 키만한 커다란 주머니에 담긴 흑연 원료가 거대한 자동 제어 로봇 팔에 매달려 컨베이어 벨트의 공정 투입구로 쏟아져 들어갔다. 흑연이 이차전지의 음극재로 변하는 '연금술'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흑연 더미는 자동으로 여러 개의 작은 내화 상자에 나눠 담긴 채 좁은 터널 구조의 전기로를 10시간 이상 느리게 이동하면서 섭씨 1천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진다.
구워진 흑연은 다시 고운 가루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나면 공중에 복잡하게 설치된 좁은 공기관에 빨려가 날아가며 자동으로 다음 단계 공정으로 옮겨진다.
이 과정에서 미세한 마이크로미터 단위 크기의 흑연 입자에 '피치'라는 코팅제가 입혀지고 극미량이라도 남을 수 있는 철 성분을 완전히 빼내는 '탈철' 작업 등 후공정을 거친다.
모든 과정을 거친 뒤 컨베이어 벨트 끝에 고운 검은 모래처럼 생긴 이차전지 음극재가 쏟아진다. 제품을 담은 주머니는 혼자서 움직이는 로봇 지게차에 실려 다시 크레인 로봇이 관리하는 창고 선반으로 옮겨졌다.
이처럼 전 공정이 자동화돼 작업 현장에서 일상적 운영 업무를 보는 직원은 네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세종 2곳, 포항 1곳 등 총 3곳의 공장에서 포스코퓨처엠은 연 8만2천t의 음극재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고성능 전기차 기준(60kWh) 약 160만대에 들어갈 배터리에 넣을 음극재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산된 음극재는 스마트폰, 전기차 등의 제품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구성하는 4대 물질 중 하나다.
이차전지는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으로 이뤄진다. 이 중 리튬, 니켈 등으로 만들어진 양극재가 원가의 4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음극재가 차지하는 비중도 17%에 달한다.
양극재는 배터리의 용량과 평균 전압을 결정하는 데 비해 음극재는 충전 속도와 수명을 좌우한다. 최근 들어서는 전기차와 각종 전자기기의 급속 충전 수요가 커지고 있는데, 그만큼 음극재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을 글로벌 배터리 강국으로 발돋움했지만, 국내에서 음극재가 생산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포스코퓨처엠은 2010년 음극재 국산화에 성공한 후에도 품질을 인정받아 고객사로부터 선택받고 대량 납품이 이뤄진 2017년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정 실장은 "음극재 사업이 기술 장벽이 높아 국내 배터리 3사에 본격 납품을 한 2017년까지 많은 고생을 했다"며 "국가적인 사명감이 없다면 쉽게 진입할 수 없는 분야인데 포스코그룹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같다"고 말했다.
그는 "탈중국은 우리의 과제"라며 "양극재를 하는 한국 기업은 많지만 음극제는 저희가 유일한데, 만일 우리가 이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중국이 지금처럼 음극재 가격을 안정적으로 해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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