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거리’ 없앤 우크라, 러시아 관련 명칭 금지 법제화…“우크라 문화 정체성 보호”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와 연관된 명칭의 사용을 금지하고 시민권 획득 요건으로 우크라이나의 언어와 역사에 대한 지식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법제화했다.
22일(현지시간) 키이우인디펜던트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점령 국가 또는 그 국가의 주목할 만한 역사적, 문화적 장소, 도시, 날짜, 사건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침략을 수행한 인물을 영속화, 홍보, 상징하는 명칭”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1991년 독립과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을 거치며 진행된 우크라이나의 ‘탈러시아화’는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을 받으면서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수도 키이우는 지난달 ‘레오 톨스토이 거리’를 20세기 초 우크라이나 정치인의 이름을 딴 ‘파울로 스코로파즈키 거리’로 개칭했다. 지난 1월에는 키이우 지하철 ‘레오 톨스토이 광장역’을 20세기 우크라이나 시인의 이름을 딴 ‘바실 스투스역’으로 바꿨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은 이 같은 노력들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3개월 후 이 법안이 발효되면 각 지방정부는 6개월 이내에 공공장소에서 러시아와 연관된 상징들을 제거해야 한다. 개칭이 필요한 명칭들의 목록은 중앙정부 차원의 위원회가 작성할 예정이다.
타라스 셰우첸코 국립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바흐탕 케불라제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이는 우리 거리와 도시에서 러시아 제국주의의 흔적을 지우는 것과 관련된 문제”라면서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고 연구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키이우 한복판에 톨스토이의 이름을 딴 거리를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관련 명칭 사용 금지법안과 함께 시민권법 개정안에도 서명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얻으려는 사람은 우크라이나어와 역사, 헌법에 대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냉전 시기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는 공용어처럼 사용됐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세 명 중 한 명은 가정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일상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않는 보이콧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NYT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들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지우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침공에 맞서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데 얼마나 단호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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