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참 편했는데” 이젠 또 반차 내고 소아과 가야 할 부모들

2023. 4. 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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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DB]

[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회사에 반차 쓰고 퇴근해서 아이 하원 시키고, 병원가면 또 1시간 기다려야 했어요.”

워킹맘 A(35)씨는 비대면진료를 활용하기 전 아이가 아플 때마다 비상이었다. 잔병이 많아 수시로 소아과를 가야 하는데, 그 때마다 회사에 급하게 반차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A씨는 “비대면진료 덕분에 코로나 때도 지금도 숨통이 트인다. 워킹맘 사이에선 비대면진료가 육아의 필수”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A씨도 다시 반차 쓸 준비를 해야 한다. 비대면진료는 코로나19로 한시적 허용됐고, 이대로라면 곧 법적 근거를 상실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논의되는 법안도 비대면진료 업체의 생존이 불가능한, 그저 허울 뿐인 법안이란 게 업계의 토로다.

의·약사단체는 비대면진료에 강하게 반발하고, 국회나 정부 차원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결국 최대 피해는 비대면진료를 원하는 환자들 몫이다.

이는 타다 사태, 로톡 사태 등과도 유사하다. 새로운 IT 기술과 시대 변화에 맞춰 경쟁력 있는 서비스가 탄생하지만, 타다에선 택시기사, 로톡에선 변호사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업체들은 줄줄이 존폐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이젠, 전 세계 주요 선진국이 이미 대거 활용하고 있는 비대면진료 시장 차례다. 이대로 법적 근거를 상실하면, 이미 수많은 환자가 이용하고 있는 비대면진료 업체들도 줄줄이 존폐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123RF]
“소아과 대란도 야간 진료도 비대면진료 절실한데…”

정부는 코로나19 때 비대면진료 업체를 적극 활용했다. 한시적으로 비대면진료를 허용한 것도 비대면진료가 방역에 꼭 필요해서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등장으로 확진자 수가 50만명을 넘는 등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환란에서 비대면진료 업체들은 정부의 재택치료 방침에 호응했다. 당시 업계 1위 닥터나우 월 최대 접속자 수는 100만명에 달하기도 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공개한 설문 조사에 결과에서 이용자들은 ‘비대면진료에 만족한다(62.3%)’ ‘향후 비대면진료를 활용할 의향이 있다(87.9%)’고 응답했다.

코로나 이후로도 비대면진료 사용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소아과나 야간진료 등 기존 병원에서 제대로 받지 못한 의료 서비스 분야에 환자가 집중되는 추세다. 지금 소아과는 의사 기피 등의 여파로 전국이 소아과 대란에 직면한 상태다.

최근엔 감기 환자가 늘고 소아과 감소에 따라 기존 소아과에 더 많은 환자가 몰리면서 마치 명품 구매처럼 ‘오픈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실제 데이터로도 반영된다. 업계 1위인 닥터나우가 자사 3040 여성의 비대면진료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이용한 진료과목은 소아과(23.7%)였다. 소아과 대란이 있었던 지난해 12월엔 소아과 비대면진료가 전월 대비 31.7% 증가했다.

나만의닥터도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체 소아과 진료건수가 약 50% 늘었고, 특히 해당 기간 소아과 진료 건수 중 6세 미만 영유아 비중이 80% 차지했다. 굿닥은 지난해 소아과 진료 비중이 약 3%에 불과했으나, 올해 1월에는 약 8%로 상승했다.

병원이나 약국 이용이 어려운 야간시간대도 비대면진료가 널리 활용된다. 닥터나우는 지난달 처방약 배송 시간을 밤 10시까지로 시범 운영한 데 이어 최근에는 심야시간대 운영할 약국 모집에 최대 1000만원의 지원금을 약속하기도 했다. 앱 이용자의 약 30%가 밤 2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집중됐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나만의닥터도 약 배송에 시간제한을 두지 않았다.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이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스위치22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비대면진료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제공]
“이젠 회사 문 닫게 생겼다”

“미래 성장 가능성과 의료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다는 보람으로 한 사업인데, 더 회사를 운영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큽니다.”

비대면진료 서비스를 하고 있는 한 업체 대표의 토로다. 코로나19 때 비대면진료를 방역에 적극 활용했지만, 정작 고비를 넘기자 이젠 당장 회사를 운영할 법적 근거가 사라질 위기다.

이에 국회나 보건복지부도 관련 법안 마련을 논의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논의 중인 법안이라면 사실상 비대면진료 사업은 유지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국회와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법안은 ▷재진 환자 중심 ▷대면진료 보조 ▷비대면진료 전담 의료기관 금지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 등을 전제로 논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대면진료 업체들로부터 의견 수렴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논란은 재진만 허용하는 데에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2월부터 지난해까지 코로나19 재택치료를 제외한 비대면진료 건수가 736만건이었고, 이중 재진이 600만건(81.5%)이라고 공개했다. 이에 따라 재진 중심으로 이미 비대면진료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대면진료 업체들은 이 데이터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반발한다. 재진 환자의 특성 상 동일한 환자가 주기적으로 계속 약을 수령하는 진료가 대다수이니 당연히 진료 건수가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정확한 통계는 진료건수가 아닌 이용자 수로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업체들의 초진 비율은 99%에 육박한다. 즉, 서비스 대부분이 초진 위주로 운영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초진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비대면진료 서비스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중요한 증상이라면 비대면진료가 아닌 직접 병원을 가야 할 일이 많다”며 “비대면진료는 가벼운 증상을 겪을 때 환자가 편하게 이용하는 게 주된 서비스다. 이용자 대부분이 초진 환자인 이유”라고 전했다.

[닥터나우 제공]
타다는 택시기사, 로톡은 변호사, 비대면진료는 의·약사 반발

최근 비대면진료업체가 직면한 상황은 앞서 타다나, 로톡 등이 직면한 상황과 유사하다. 새로운 기술과 접목, 신규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타다는 택시노조, 로톡은 변호사단체와 기나긴 대치를 겪었다.

비대면진료업체도 의사, 약사단체의 거센 반발을 겪어왔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는 비대면진료 업체들을 대상으로 의료법·약사법 위반 등을 이유로 수차례 고발에 나섰다. 현재까지도 대립 중이다.

비대면진료 업체들은 재진 중심의 제도화가 업계를 죽이는 결과를 나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에 더해 생활 속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했던 역할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앞서 협의회는 “보건당국이 재진 환자만을 위한 포지티브 규제로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추진하면서 직장인, 워킹맘 등 1379만명의 국민이 경험했던 비대면진료와 이를 운영했던 기업들은 모두 고사 위기”라고 호소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당장 다음 달 사업을 접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상당한 상황”이라며 “오미크론 때는 약 배송에 업체 돈을 써가면서까지 국민 건강을 지켰다. 사업 종료 혹은 축소는 국민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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