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은행, 1분기 충당금 확 늘린다…당국 요청에, OK
충당금 탓 '최대이익' 행진 1분기 끝날수도
'돈잔치' 부담스런 시선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 “부실 가능성 대비…나쁘지 않은 선택”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주요 시중은행과 금융지주들이 1분기 실적에 반영할 충당금을 당초 계획보다 크게 늘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충당금 산정 과정에서 약 3년에 걸친 대출 원금·이자 유예 상황과 악화가 예상되는 미래 경기를 보수적으로 반영해달라’는 금융당국의 권고를 받아들인 결과다.
은행과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충당금을 늘릴수록 이익은 줄어 ‘역대 최대 이익’ 경신이라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9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재무·리스크 담당 임원(부행장급)과 금융감독원은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충당금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당국 관계자들은 은행 충당금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정 수준보다 적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우선 코로나19 사태 이후 약 3년간 이어진 대출 연장·이자 유예 등 금융지원에 따른 착시 현상 문제가 거론됐다.
현재 각 은행은 부도율(PD·1년 내 해당 여신이 부도 처리될 가능성 예측치), 부도시 손실률(LGD·부도 발생 시 해당 여신 가운데 회수하지 못하고 손실 처리되는 비율) 등을 기반으로 적정 충당금 적립 규모를 산출한다. 통상적으로 과거 10년의 PD·LGD 관측 데이터가 활용된다.
하지만 최근 3년(2020∼2022년)의 경우 은행이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등에 계속 대출 원금 상환과 이자 납부를 미뤄줘 연체율이나 부도율 등의 부실 지표가 실제 상황보다 낮게 나타나는 만큼, 단순히 10년 데이터를 사용하면 충당금이 지나치게 적게 책정될 위험이 있다는 게 당국의 우려다. 아울러 당국은 경기가 갈수록 나빠지는 흐름을 반영해 충당금 산정 과정에서 PD 등을 보수적으로 추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특히 중소기업 등 취약부문에 대한 충분한 충당금 적립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올해 1분기의 경우 이런 대출 연장 등 금융지원 특수성과 미래 경기 전망 등을 반영해 각 은행과 금융지주가 알아서 충당금을 많이 쌓도록 요청했다. 2분기부터는 같은 맥락에서 충당금 관련 규정도 개정하겠다고 예고했다.
충당금 작년 1분기 대비 2배 이상 가능성
5대 은행과 금융지주는 당국의 권고를 받아들여 당장 이번 주 발표할 1분기 실적에 당초 계획보다 많은 충당금을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금융권에서는 1분기 충당금이 전년 동기보다 2배 이상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5대 금융지주와 은행은 지난해 연간 각 5조9368억원, 3조2342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새로 적립했다. 분기별로 나눠보면 5대 금융지주의 경우 △1분기 7774억원 △2분기 1조5585억원 △3분기 1조171억원 △4분기 2조5838억원을, 은행의 경우 △1분기 3017억원 △2분기 1조171억원 △3분기 4409억원 △4분기 1조4745억원을 쌓았다.
이 결과 5대 금융지주와 은행의 2022년 말 현재 충당금 잔액은 각 13조7608억원, 8조7024억원에 이른다. 예상대로 올해 1분기 충당금이 실제로 작년 같은 기간의 두 배로만 불어도 금융지주에서는 최소 약 1조6000억원, 은행에서는 약 6000억원이 추가된다.
은행과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취약 부문의 부실 가능성에 대비하고, 충당금을 늘릴수록 이익은 줄어 ‘역대 최대 이익’ 경신이라는 부담스러운 시선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이자 장사로 불린 이익으로 은행 임직원들끼리 ‘돈 잔치’를 한다고 비난한 만큼, 금융지주·은행이 최대한 충당금을 늘려 그만큼 1분기 순이익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정부뿐 아니라 여러 기관이 공통적으로 경기 침체를 경고하고 있는 만큼 충당금 증액에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두리 (duri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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