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전세사기’···전세사기 도운 공인중개사들은 책임없나

류인하 기자 2023. 4. 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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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및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0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 대책 관련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을 촉구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전세사기 피해자 A씨(27)는 23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전세사기 공범인 공인중개사들을 왜 전부 사기죄로 처벌받게 할 수 없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모든 상황이 다 힘들지만 제일 화나는 건 계약을 했던 공인중개소는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려다가 포기했다. 입증책임이 피해자인 A씨에게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계약서 체크란에 적힌 ‘공인중개사의 설명을 충분히 들었다’는 문장에 체크한 것이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사회초년생인 A씨는 변호사비를 감당할 경제적 여력도 없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부터 전세사기 가담이 의심되는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전세사기 가담사실이 확인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는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포함한 금고형 선고를 받으면 자격이 취소된다.

지난 3월에는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역시 공인중개사가 임대인의 체납여부를 확인해 알려줘야한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빌라왕’ ‘건축왕’과 같은 계획적인 범죄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을 위한 공인중개사의 배상책임 강화에는 정치권도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이다.

현행법상 A씨와 같이 임차인들이 직접 공인중개사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 공인중개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문제가 있는 집을 중개했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이 임차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미 속아서 사기를 당한 피해자에게 ‘중개사가 이렇게 속여서 내가 사기당했다’는 것을 입증하라는 얘기다.

‘전세사기 공범’ 공인중개사…“임차인이 사기 입증해라?”

홍정환 법무법인 루트 대표변호사는 “현실적으로 주택을 임차하려는 사람들은 해당 주택과 임대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반면, 공인중개사는 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중개를 성사시키기 위해 묵비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 변호사는 “중개인이 주택의 권리관계나 임대인의 자력 등에 대한 중요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가 고객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중개인은 ‘고지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할 뿐 아니라 형사상 사기죄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 경우 임차인이 중개인의 고의·과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이 지난해 공인중개사의 설명의무 범위를 두텁게 봐야한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소송이 향후 증가할 가능성은 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6월 30일 임차인 B씨가 경매로 넘어간 전셋집을 중개한 공인중개업소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낸 ‘공제금등청구의소’에서 “다가구주택 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임차인들의 선순위임대차보증금의 액수 등에 대해 중개인이 고지하지 않았더라도 중개행위에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왼쪽)과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지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대법원은 “공인중개사는 자기가 조사·확인해 설명할 의무가 없는 사항이라도 중개의뢰인이 계약을 맺을 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이라면 그에 관해 그릇된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 되고, 그 정보가 진실인 것처럼 그대로 전달해 중개의뢰인이 이를 믿고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신의를 지켜 성실하게 중개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하더라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공인중개사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피해배상금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임차인은 임대차계약 체결시 중개업소로부터 계약서 원본과 함께 ‘부동산 공제증서’를 받는다. 사고가 났을 때 공인중개사가 중개책임을 지고 배상해주겠다는 일종의 증서다. 정부는 지난 2021년 공인중개사의 책임한도를 기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상향조정해 중개업소의 보증한도를 높였다. 부동산거래시 공인중개사에게 중개수수료를 내는 이유도 중개사가 이같은 책임을 지겠다는 보증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증한도액 2억원’이라는 것은 각 계약별 한도가 아닌 1년간 1개 중개업소에서 발생한 모든 거래의 총 합계액이다. 이 마저도 소송을 통해 배상범위가 확정되기 때문에 1억원 미만 소액 임차인들은 승소하더라도 배상액보다 변호사 비용만 더 들 가능성도 있다.

강서구 화곡동, 인천 미추홀구 등 한 지역에서만 전세사기 피해자가 수백 명에 이르는 경우에는 중개업소에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 자체가 실익이 없는 셈이다.

류호연 변호사(국회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 법제사법팀 입법조사관)는 “정부의 전세사기방지대책을 보면 주로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정보비대칭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근본적으로 임차인이 위험성 있는 전세계약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인 만큼 공인중개사의 책임가와 등 전세사기 위험성이 있는 전세계약이 사전에 체결되지 않도록 하는 입법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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