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사랑 찾아 떠나는 베로나 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배경 무대 베로나/포르타 누오바 지나 브라광장 들어서면 고대로마시대로 시간여행/원형경기장 아레나 디 베로나에선 매년 6∼∼9월 오페라 축제/명품샵 즐비한 마찌니 거리·에르바 광장 지나면 줄리엣의 집/줄리리엣 동상 오른쪽 가슴 만지면 영원한 사랑 이뤄져/카스텔 산 피에트로 오르면 아디제강·베로나 파노라마로 펼쳐져
#줄리엣 찾아 떠나는 베로나 여행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FR 기차로 1시간10분이면 닿는 베로나 여행은 관문인 포르타 누오바(Porta Nouva)에서 시작한다. 베로나 중앙역에서 버스로 5분거리. 1400년대 베네치아가 베로나를 점령했을 때 세운 ‘새로운 문’으로 1km가량 떨어진 시계가 있는 포르토니 델라 브라(I Portoni della Bra)를 통과하면 순식간에 옛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된 브라 광장을 시작으로 고대 로마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동화속 세상에 들어선 듯 중세 유럽풍의 건물들이 완만한 활처럼 곡선을 그리는 브라광장을 따라 늘어섰고 노천카페에는 오후의 햇살을 즐기려는 이들로 북적거린다. 통일이탈리아를 탄생시킨 ‘이탈리아의 아버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조각상이 늠름한 공원에선 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 오후의 열기를 식힌다. 그 뒤로 우뚝 선 원형경기장은 베로나의 랜드마크 아레나 디 베로나로 1세기에 지어진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 로마 콜로세움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2만5000명을 수용한다.
이곳에선 매년 6∼9월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려 50만명이 넘는 여행자들을 끌어 모은다. 건설 초기에는 로마 검투장으로 사용됐고 과일가게, 우시장 등으로 활용되다 오페라 페스티벌의 무대로 자리 잡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훨씬 더 규모가 웅장하다. 한쪽에는 벌써 올해 오페라 페스티벌을 앞두고 무대가 꾸며지고 있다. 오페라 아이다의 화려한 공연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베로나 오페라 공연 직관을 버킷 리스트에 추가해 본다. 가장 꼭대기까지 오르면 브라광장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아레나를 나서자 광장이 시끌벅적하다. 화려한 색상의 정장을 차려입고 화관을 머리에 쓴 청춘들이 노래를 부르며 아레나를 배경을 인생샷을 남기고 있다. 마침 이날은 베로나 한 대학의 졸업식. 졸업생들이 화관을 쓰고 하루를 축제로 보내는 것이 이 지역 대학의 전통이다.
에르베 광장 끝에는 다양한 신들의 조각상이 지붕 위에서 에르베 광장을 내려다보는 바로크 양식의 마페이 궁전(Palazzo Maffei)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의 돌기둥 위에 앉은 ‘날개달린 사자(마르치아 디 레오네)’는 당장이라고 포효하며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다. 사자는 베네치아의 주보성인 산마르코(마가)의 상징으로 과거 베네치아가 점령했던 곳에는 날개달린 사자상을 설치해 영토를 표시했다.
광장 중앙에 선 폰타나 마돈나 베로나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베로나를 지키는 성모 마리아상으로 1368년 스칼리제 가문 성주가 설치했다. 마돈나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수갑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동판 리본으로 ‘정의를 행하고 칭찬을 사랑하는 도시’라는 옛 베로나의 모토가 적혀있다. 마돈나 앞에서 설치된 작은 대리석 구조물은 라 트리부나(La Tribuna). 쇠사슬로 연결된 목에 채우는 형벌도구가 달려있다. 베네치아가 베로나를 점령하던 시절 베네티아 상인들의 엄격한 상거래 질서의 흔적이다. 베니스는 사기꾼 등 범죄자에게 가장 혹독한 엄벌을 내렸는데 이곳에 묶어 죽을때까지 내버려 뒀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앉을 수도, 서있을 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에 형벌도구가 달려 있다. 죄인들은 엉거주춤한 상태로 고통 받으면서 죽어갔다고 하니 베네치아의 엄격했던 규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금은 오스테리아, 카페, 젤라또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들어섰지만 에르베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대부분 14세기에 지어져 한눈에도 오랜 역사가 느껴진다. 빛이 바랬지만 프레스코 벽화가 그대로 남아 화려했던 시절 베로나의 역사를 전한다. 토레 데이 람베르티는 베로나에서 가장 높은 탑. 나선형계단 200개를 걸어 약 84m 높이의 탑 꼭대기에 오르면 에르베 광장과 베로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12세기에 지은 건물로 타워 중앙에 커다란 시계가 설치됐고 그 위 종각에선 매시간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줄리엣 만나면 사랑이 이뤄질까
에르베 광장을 뒤로 하고 5분을 걸으면 유명한 줄리엣의 집이 등장한다. 입구 벽면은 사랑의 낙서와 메모지로 가득하고 마당은 줄리엣 동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여행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운명적인 사랑과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문 덕분에 베로나를 찾는 전세계 여행자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필수코스가 됐다. 동상 위로는 줄리엣이 서 있었을 것 같은 예쁜 테라스도 보인다. 여친이 이곳에 오른 뒤 남친이 마당에서 줄리엣처럼 인생샷을 찍는 것이 포인트. 하지만 내부 관람은 유료다. 영화에 등장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옷, 침실, 그릇세트 등으로 꾸몄지만 돈을 내고 관람할 정도로 볼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당연히 줄리엣의 집은 진짜가 아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니 말이다. 베로나시에서 1905년 13세기 저택을 개조해 줄리엣의 집으로 꾸몄는데 연인들에게 소문나면서 이제는 마치 실제 줄리엣의 집으로 여겨지고 있다. 걸어서 5분거리에 로미오의 집도 있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다. 실존 인물은 아니만 가문간에 펼쳐지는 비극적인 사랑은 충분히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 13세기 베로나는 소설처럼 가문의 권력다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가문을 보호하기 위해 요새처럼 만든 저택도 700채가 넘는다니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극적인 사랑이 그려진다.
#피에트로성에 올라 베로나를 마주하다
다시 에르베 광장으로 나와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시뇨리 광장으로 겨울이면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광장의 상징인 단테 동상을 구경하고 아디제강쪽으로 길을 잡으면 베로나의 또 다른 명물 폰테 피에트라를 건너게 된다. 아디제강을 가로 질러 베로나의 서쪽과 동쪽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 주변 엔 많은 연인들이 따뜻한 햇살과 피크닉을 즐기며 사랑을 속삭인다. 마침 날이 맑아 아디제강은 푸른 하늘과 구름을 그대로 담는다. 베로나에서 이보다 더 로맨틱한 곳이 있을까. 스위스에서 발원한 아디제강은 무려 410km를 흘러 롬바르디아 평원의 포강과 나란히 동쪽으로 흐르다 베네치아 남쪽 아드리해로 흘러 들어간다.
1세기에 지은 베로나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폰테 피에트라는 자세히 보면 두 종류의 돌로 구분된다. 2차 세계대전때 다리 대부분이 파괴됐는데 무너진 돌을 인근 주민들이 보관해 두었고 1957년 베로나 시에서 이를 모아 복구했다니 베로나 사람들의 역사를 지키는 열정이 대단하다. 피에트라 다리를 건너면 베로나에서 가장 뛰어난 조망을 즐기는 카스텔 산 피에트로가 한눈에 보인다. 가파른 언덕을 20여분 올라 산 피에트로 광장에 서자 “와∼”하는 감탄이 저절로 쏟아진다. 베로나를 시내를 감싸며 아름다운 곡선으로 휘돌아 나가는 아디제강과 고풍스런 폰테 피에트라. 그리고 강건너 베로나대성당의 높은 종탑과 베로나 시내의 붉은 지붕들까지.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오래오래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이다.
돌벽 난간엔 이곳을 찾은 많은 연인들이 남긴 하트 낙서가 빼곡하고 자물쇠도 주렁주렁 달려 이곳이 연인들의 성지임을 전한다. 북쪽으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리는 언덕과 건물은 산투아리오 델라 마돈나 디 로우데스. 찾는 이가 많지 않지만 가장 높은 곳에서 베로나 시내를 조망하며 천천히 산책하기 좋으니 꼭 들러보길. 산 피에트로를 오르내리는 길에 만나는 테아트로 로마노는 아레나 보다 오래된 야외극장. 로마시대 유적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길 수 있다.
베로나=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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