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입, 방미 직전 더 위험해졌다…중·러 들쑤시기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제공 내비치고 대만을 국제문제로 언급
‘전략적 모호성’ 깨고 중국·러시아 자극한 윤 대통령의 ‘막말’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 전망이 심상찮다. 방미를 앞둔 윤석열 대통령이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가치 외교’의 진수를 과시해서다. 미-중, 미-러 갈등 격화 속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날 선 원칙적 발언을 내놓으면서, 그간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에서 완연히 벗어났다. 선명성이 꼭 나쁠 건 없다.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 모호성은 기실 강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다만 드는 걱정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격한 반응이 불 보듯 뻔하다. 후속 대응은 준비돼 있는가?
친미 행보에도 지켜온 ‘전략적 모호성’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2023년 4월2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쟁점을 크게 네 가지로 꼽는다. 첫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불거진 한국 대통령실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의혹이다. 미국 쪽이 말끝을 흐리는 새,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이 한국 쪽에서 먼저 나오며 비판 여론이 끓어올랐다. ‘주권 침해’란 주장과 ‘세계 모든 정보기관의 일상사’란 반박과 별개로, 정상회담에서 미국 쪽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가 관심사다.
둘째,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 등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 입법에 대한 후속 대응이다. 관련 한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노력과 이에 대한 미국 쪽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얼마나 뒤따를 것이냐가 핵심이다. 기대감은 애초 높지 않았다. 미 재무부와 상무부는 4월17일 자국산 전기자동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를 현실화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 쪽이 입법권을 쥔 의회를 앞세워 말치레 수준의 대응에 그치리란 전망이 굳어지고 있다.
셋째, 북핵·미사일 대응과 관련한 추가 조치 여부다. 문재인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선 한-미 간 이견이 없는 상태다. 북의 위협은 한국에 국가 존망이 걸린 최대 안보 현안이다. 국내에선 독자 핵무장 여론까지 높아졌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이른바 ‘확장 억제’ 강화로 모인다. 이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추가로 해줄 수 있는 사안은 많지 않다. 이미 한·미의 대북 군사 압박 수위가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다. ‘상시 배치에 준하는 전략자산 전개’와 양국 간 각급 협의체 활성화 등이 미국 쪽 카드로 거론된다.
앞의 세 사안이 한국 쪽 요구에 미국의 ‘호응’이 필요하다면, 넷째는 이에 대한 미국 쪽의 ‘청구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노골적인 친미 행보를 이어왔지만, 중국·러시아 정책에는 전임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경제(중국)와 안보(러시아) 측면에서 사활적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이 4월19일 보도한 윤 대통령 인터뷰 내용은 그래서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우리가 북한에 최신 무기 제공한다면” 경고
핵심은 세 가지로 모인다. 북핵 위협 대응과 남북관계가 큰 줄기를 이룬 가운데, 통신이 주목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살상무기 지원 여부와 대만해협 양안(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을 드러낸 발언이다.
먼저 대북정책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1년의 입장을 되풀이해 강조한 수준이다. 확장 억제와 관련해 한·미 공조를 한·미·일 공조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견(사실상 동의)이 제시됐지만, 이 또한 그간의 ‘대세’와 일치한다. 문제는 나머지 두 가지다.
“만약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대량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한국도)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무를 것이라고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 가능성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이어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불법적인 침략을 받은 나라를 지키고, 원상회복시켜주기 위한 다양한 지원에 대한 제한이 있기는 어렵다. 전쟁 당사국과 한국의 다양한 관계, 또 전황 등을 고려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로이터>는 “윤 대통령은 1950~1953년 전쟁 때 한국이 입은 국제사회의 지원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의 방어와 재건을 돕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 쪽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지난해 전쟁 발발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고 짚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보수 진영에선 ‘전후 재건·복구 참여’를 파병의 명분으로 제시한 바 있다.
러시아는 빠르고 격하게 반응했다. <타스> 통신은 4월19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의 말을 따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분쟁에 개입하는 걸 의미한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그가 연임 제한에 걸려 출마를 못했을 때(2008~2012년) 대신 대통령을 지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연방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에 “우리의 적을 도우려고 열광하는 이가 새로 등장했다. 우리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에 최신 무기를 제공한다면 한국 국민이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고 썼다. 노골적인 보복 대응 경고다.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은 다음날
“결국 이것(대만해협 긴장 고조)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대중국 정책과 관련해서도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발언을 내놨다. 앞서 2022년 5월 윤석열-조 바이든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선 관련 문구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 번영의 핵심 요소로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표현됐다.
그 이전에는 한-미 정상 간 공동성명으로는 처음 언급된, 2021년 5월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으로, 문구는 “(한-미 정상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다. 2021년 당시 중국은 “불장난” 등의 거친 표현으로 비판했지만 외교 경로를 통해 항의하진 않았다. 2022년엔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했다. 공식 항의했다는 뜻이다. 두 성명의 차이는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 번영의 핵심 요소”란 표현의 유무다.
윤 대통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선 전세계적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이 ‘국내 문제’로 보는 사안을 ‘국제 문제’라고 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이 ‘개입’할 여지를 만든 셈이다.
중국 쪽은 반응을 서두르지 않았다. <로이터>의 보도 당일, 관영 매체들은 관련 내용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중국 대외정책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이 ‘대만 문제’란 점에 비춰 극히 이례적이다. 다음날인 4월20일 오후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 자리에서 뒤늦게 공식 입장을 내놨다.
“세계에 중국은 하나뿐이고, 대만은 떼어낼 수 없는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다.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의 내정이며,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고, 대만 문제 해결은 중국 인민이 해야 할 일로 타인의 간섭은 용납될 수 없다. 최근 대만해협의 긴장 상황이 조성된 것은 ‘대만 독립’ 세력이 외부 세력의 지원과 용인 속에 분열적 활동을 벌이기 때문이다. …대만해협과 지역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기 위해선 ‘대만 독립’ 반대란 기치를 선명하게 하고, 외부의 간섭에 반대하는 것이다.”
왕 대변인은 이어 “북한과 한국은 모두 유엔에 가입한 주권국가이며, 한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의 성질과 경위는 완전 다르며, 근본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며 “한국 쪽이 중-한 수교의 정신을 철저히 준수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며, 대만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대만과 관련한 중국의 기본 입장을 재천명하는 수준에서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역으로 4월26일 발표될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 같은 내용이 담긴다면, 중국 쪽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대중·대러 외교를 동맹외교의 뒤처리 정도로 여겨서야
윤 대통령의 <로이터> 인터뷰 발언이 우발적인 것인지, 사전에 준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생각이다. 윤 대통령이 실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정책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정상회담이란 최고 수위의 정치 행위를 앞둔 시점에, 관련 당사국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상대방의 요구를 사전에 전폭 수용하는 듯한 발언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직업 외교관 출신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렇게 짚었다.
“신냉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진영 구도가 심화한 상태다. 외줄을 타듯 조심스럽고 정교해야 한다. 북핵·미사일 위협 고조 속에 미국 쪽으로 기우는 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대중·대러 외교를 동맹외교의 뒤처리 정도로 여겨선 안 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와 지원 없이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비핵화와 번영, 통일이란 한국 외교의 목적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 밀착하더라도, 대중·대러 정책과 통합·조율된 좌표와 방향을 세워놔야 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지금까지 그게 보이지 않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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