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후변화 대응과 책임있는 국가의 자세
1597년, 선조가 이순신 장군에게 부산포 공격을 명령했지만 이순신 장군은 무리라고 판단해 이를 거부했다. 반면, 원균은 선조의 명을 그대로 따라 부산포 공격을 강행했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 조선 수군의 참담한 괴멸이었다. 유사한 사례는 중국에도 있다. 곡식을 쪼아먹는 참새가 농사에 해롭다고 생각한 마오쩌둥이 참새 박멸을 지시했다. 그 결과 메뚜기가 창궐해 흉작과 대기근이 발생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무리한 목표를 달성하려다 오히려 일을 그르친 경우다.
지난 정부는 2020년 12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가 2018년 배출량 대비 26.3%라고 국제연합(UN)에 제출했다. 2021년 10월에는 40%로 높였다. 불과 10개월 남짓 기간에 50% 넘게 끌어올렸다. 그 영향으로 산업부문 NDC는 6.4%에서 14.5%로 2.3배 늘어났다. 산업계와 전문가들의 많은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 지난 정부는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나라의 역할 때문이라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볼 일이 아니었다. 우리 산업은 다른 나라와 달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힘든 구조다.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이 2021년 기준 28%로 독일 20%, 일본 21%, EU 15%보다 높고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 비중도 7.3%로 독일 5.2%, 일본 6.5%, EU 4.8%보다 높다. 또 이런 업종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도 전 세계적으로 부족하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무시했다. 당시 산업계는 NDC 이행이 강제되면 생산량을 줄이거나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우리와 산업구조가 비슷한 대만이 우리의 40%보다 낮은 25%를 국가 전체 감축목표로 제시한 것도 이런 현실을 고려해서다.
새정부는 40% 목표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달성이 어려운 목표라고 판단했지만, 이전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사항이라 지키기로 결단했다. 한 번 제출한 목표를 낮추면 안된다는 파리협정의 '진전 원칙' 때문이었다. 대신 산업, 전환(에너지), 건물, 수송 등 각 부문별 목표를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조정해 40% 목표의 이행가능성을 높이기로 했다. 그 결과, 산업부문 목표는 당초 14.5%에서 11.4%로 낮아졌다. 이 내용은 지난 4월 11일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수립되며 반영됐다.
일각에서 '정부의 탄소감축 의지 후퇴', '기업 봐주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목표가 낮아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초 14.5% 목표에 이행 불가능한 비현실적 내용이 있어 이를 걸러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틸렌 같은 기초 소재를 생산하는 석유화학기업은 그 원료로 나프타를 사용하는데 이를 석유가 아닌 콩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로 만든 친환경 바이오나프타로 대체하면 탄소배출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2030년 탄소배출을 1180만톤 줄이는데 바이오나프타 2360만톤이 필요했다. 그런데 2030년 바이오나프타 전 세계 생산량은 880만톤으로 전망돼 모두 수입해도 목표 달성은 불가능했다. 결국 계획 자체가 부실했던 것이다. 반면, 이번에는 지난 계획에 없던 자가용 태양광 확대, 배출권거래제 고도화 등을 통해 800만톤 이상을 추가 감축하기로 했다. 일각의 주장처럼 탄소감축 의지의 후퇴가 아니라 계획의 현실화라고 보는 게 타당한 이유다.
남들이 보기에 좋고 의욕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건 쉽다. 그러나 2030년에 목표를 이행하지 못하는 것보다 실행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이행하는게 국제사회에 책임있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산업계도 책임감 있게 탄소중립을 향한 길에 적극 동참해 주길 기대한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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