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어도 타는 벤츠·포르쉐 지겨워서…“이름이 뭐예요” 궁금증 폭발 [세상만車]
남들이 알아줘야 뿌듯해
PPL로 하차감 강화 추진
베블런·스놉효과도 기대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자동차 기사에 뜬금없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이름’ 때문이다.
이름은 자음과 모음의 나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존재에 대해 인식했고 의미를 부여했다는 뜻이다. 다른 존재와 구별을 하는 동시에 관계를 맺는 데 영향을 준다.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이름이 뭐예요”라는 말이 조건반사처럼 입 밖으로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드라마나 영화가 뜨면 ‘길복순 애마’ ‘이선균 슈퍼카’ ‘공유(도깨비) 차’ ‘현빈 오픈카’ 등 주연이나 조연의 차량으로 궁금증을 유발하는 신스틸러(명품조연)가 된다.
또 애칭·별칭으로 불리다가 점차 벤츠 G클래스, 맥라렌 GT, 마세라티 르반떼, BMW Z4 등 브랜드명과 차명까지 시청자 뇌리에 박힌다.
‘뇌리 각인’ 효과를 위해 새로 나올 신차를 모터쇼나 신차공개행사보다 드라마나 영화에 먼저 내보내는 브랜드도 있다.
반대로 소비자들이 차명이나 브랜드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냥 수입차, 예쁜 차, 슈퍼카 등 뭉뚱그린 표현에 그친다. 그 이상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다.
비슷한 엠블럼 때문에 벤틀리를 보고 제네시스라고 부르거나 페라리보고 포르쉐라고 부르는, 해당 브랜드 입장에서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등 프리미엄 브랜드가 주도하던 PPL 시장에 맥라렌, 롤스로이스 등 슈퍼·럭셔리카 브랜드가 뛰어들고 있다.
사실 슈퍼·럭셔리카 브랜드는 ‘누구나 아는 명품’이 아닌 ‘아는 사람만 아는 고고한 명품’을 추구한데다 가격 부담 때문에 수요가 한정돼 PPL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다.
구입 가능성이 있는 일부 수요층만을 대상으로 럭셔리 매체나 다른 명품 브랜드와 협업(컬래버레이션)만 진행했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이 차명은 아니더라도 브랜드는 알아줘야 판매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벤틀리가 제네시스로, 페라리가 포르쉐로 여겨지는 참사는 피하고 싶어했다.
베블런 효과는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가격이 더 비싼 물건을 흔쾌히 구입하는 현상을 뜻한다.
스놉 효과는 다른 사람들이 구매하면 오히려 그 재화나 상품을 구매하지 않고 차별화를 시도하는 소비 현상을 일컫는다.
비싼 돈을 주고 산 명품 옷이라도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더 이상 그 옷을 입지 않는 게 스놉 효과에 해당한다.
벤츠, BMW, 포르쉐 등 브랜드 입장에서도 판매량이 증가한데다 누구나 ‘이름’을 알게 돼 PPL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수입차 국내 판매 1위인 벤츠는 지난해 8만976대, 2위인 BMW는 7만8545대에 달하는 실적을 올렸다.
1억원대 차종을 주로 선보이는 포르쉐는 8963대 팔았다. 2013년 법인 설립 이후 최대 판매대수를 기록했다.
벤틀리는 지난해 25개 수입차 브랜드 중 가장 높은 판매 증가세를 기록했다. 2억원대 모델 3개 차종만 국내 출시한 벤틀리는 지난해 775대를 판매했다. 전년보다 53.2% 증가했다. 벤틀리 플라잉스퍼 V8(2억7393만원)은 380대 팔렸다.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는 지난해에 전년보다 14.2% 증가한 403대를 판매했다. 브랜드 모델 중 가장 저렴한 슈퍼 SUV인 우루스(2억6155만원)는 309대 팔렸다. 10대 중 8대 가까이가 우루스 몫이다.
4억원 이상 줘야 하는 롤스로이스도 지난해 234대 판매됐다. 전년보다 판매가 4% 증가했다. 럭셔리 SUV인 컬리넌(4억7460만원)과 고스트(4억7100만원)가 각각 87대 팔렸다.
맥라렌은 남들이 알아줘야 타는 맛이 생기고 내릴 때 뿌듯한 ‘하차감’이 생겨 구매욕구를 자극한다고 판단, PPL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맥라렌은 SBS 드라마 ‘법쩐’을 통해 맥라렌 GT 이름 알리기에 나섰다. 몽골 대초원을 빠른 속도로 내달리던 블루 컬러의 슈퍼카에서 주인공 은용(이선균 분)이 내릴 때 문이 위로 열리는 장면은 “저 차 뭐지”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맥라렌은 헤지펀드 매니저로 성공한 주인공이 ‘법’과 ‘돈’의 카르텔에 맞서 싸우는 통쾌한 복수극과 쿨하고 스마트한 이미지가 맥라렌 GT에 제격이었다고 평가한다.
영업 현장 반응도 좋았다. “이선균이 탄 차 이름이 궁금하다”, “쇼룸에 가면 볼 수 있나” 등의 문의가 이어졌다.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환희의 여신상’을 바라보다 감동하며 무릎 꿇는 장면, 실수로 후면 범퍼를 긁은 뒤 포털 사이트에 수리비를 검색하며 전전긍긍하는 장면은 극의 활력 및 시청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롤스로이스는 고전적이면서 우아하지만 고리타분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PPL을 통해 신선하고 젊은 ‘드림카’ 메시지를 전달하며 이미지를 개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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