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있어야 가능한 정부의 ‘물관리 대책’

한겨레21 2023. 4. 2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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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지자체∙주민 수고로 가뭄 넘겼지만 기후재난은 ‘정해진 미래’
보의 물이 말랐는데 가뭄 대책으로 보의 물을 활용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정부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카운티 내 사막 공동체 ‘메카’로 콜로라도 강물을 운반하는 코첼라운하 모습. 캘리포니아주 상원은 최근 3년 동안 가뭄으로 댐 저수량이 떨어지고 강이 말라 주 전체가 극심한 가뭄을 겪자 1명당 하루 물 사용량을 현 208ℓ에서 2025년부터 178ℓ로, 다시 2030년부터 159ℓ로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REUTERS

아직 끝났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남부지방 가뭄은 큰 고비를 넘긴 것 같다. 최근에 내린 비가 해갈에 큰 도움이 됐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 물관리 담당 부처와 기관들의 총력 대응이 가뭄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광주광역시와 시민들의 선제 대응이 주효했다.

2022년 파키스탄에서는 국토의 3분의 1이 잠기는 대홍수가 있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3년 동안의 가뭄으로 댐 저수량이 떨어지고 강이 말라서 주 전체가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이 심각해지자 캘리포니아주 상원은 현재 208리터(ℓ)인 1명당 하루 물 사용량을 2025년부터는 178ℓ, 2030년부터는 159ℓ로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5년 봄, 수도권 물공급 위기 직전까지 갔는데

한국은 지리적으로 기후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고위도에 있어 재난이라 할 정도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우리는 매년 겨울과 봄에 가뭄으로 고통을 겪지만 우기에 접어들면서 해결되곤 했다. 힘들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었다. 주민들이 물 이용량을 줄이고, 댐에서 공급하는 하천유지용수의 방류량을 줄였다. 즉, 하천생태계와 주민들이 가뭄 피해를 감당해왔다. 하지만 봄에 극심한 가뭄을 겪다가 5~6월에 비가 내려 가뭄이 해결되곤 했던 우리나라의 고마운 강우 형태가 언제까지 계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5년 봄에 수도권은 심각한 물공급 위기 직전까지 갔다. 2600만 수도권 주민과 산업에 물을 공급하는 소양강댐과 충주댐의 저수율이 각각 25.8%, 22.7%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해 6월에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수도권은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기후재난 직전까지 갔다. 만일 2023년 남부지방에 2022년 정도의 강우량에도 못 미치는 비가 온다면 재난적 가뭄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기후재난을 언제까지 피해갈 수는 없다. 기후재난은 정해진 미래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우리가 그동안 경험했던 보통의 물부족과는 다른 상황을 말한다. 기후재난에 해당하는 가뭄은 물그릇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말라버린다. 캘리포니아에서 봤던 것처럼 2~3년 계속되는 가뭄으로 정상적인 물공급이 곤란한 인프라 실패의 상황이다. 쉽게 말해 댐과 하천이 바닥이 나서 정상적인 물공급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기후재난에 대응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말하는 가뭄 심각 단계가 2년 이상 계속되는 비상사태가 기후재난에 해당한다. 그런데 정부의 중장기 가뭄 대책에는 이런 기후재난 대책이 없는 것 같다. 최근 환경부가 발표한 영산강·섬진강 유역 중장기 가뭄 대책의 기본 방향은 ‘극한 가뭄 발생에도 차질 없는 생활·공업 용수 공급 추진’이다.

극한 가뭄으로 어쩔 수 없이 용수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재난’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런 재난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대책 방향을 정한 것이다. 댐과 하천의 물이 말라버리면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댐을 더 건설하면 된다는 식이다. 가뭄 대책은 곧 수자원 확보 대책이라고 생각하는 기존 물관리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의 작은 분산형 수원 관리·활용해야

4대강 보를 활용해서 가뭄에 대비하겠다는 발표가 그런 식이다. 가뭄에 4대강 보의 활용도를 높이려면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질 때를 고려해서 양수장과 취수시설을 개선해야 한다. 높이 설치된 기존 취수시설의 높이를 낮추는 것을 가장 먼저 해야 할 텐데 취수시설 개선은 하지 않고, 보와 댐에는 가뭄에도 항상 물이 차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평상시에 가득 찬 물그릇의 물을 가뭄 때 활용하겠다는 식이다. 타임머신이라도 있어야 실현 가능한 정책이다. 재난적 가뭄은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생활용수를 모두 줄여야 하거나 일부를 일시적으로 포기하고 조정해야 하는 비상사태임을 의미한다. 물공급의 대부분을 맡는 댐의 저수율이 20% 이하로 오래 지속돼 모든 부문의 물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재난적 상황이다.

이런 비상사태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은 지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산형 수자원을 활용·관리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광주 가뭄에서 본 바와 같이, 다른 하천 유역에 있는 댐에 물공급의 대부분을 의존할 경우 비상시에 지역 내 소규모 분산형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 평상시에 전혀 쓰지 않다가 몇십 년 만의 가뭄에만 사용한다는 식의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 재난적 가뭄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과도한 댐 의존을 낮추고 지역의 작은 분산형 수원들, 즉 하천·저수지·지하수를 평소에 잘 관리하고 활용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비상시의 물 배분 대책이다. 유역 내 지방정부와 주민, 이해당사자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 극한 가뭄 때 유역 내에서 이용 가능한 물의 양이 얼마이고 이를 지역·용도로 어떻게 나눠 쓸지 준비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유역수리권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지역의 분산형 자원을 활용하고 유역 내 물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지방정부와 주민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유역 내에서 지방정부와 주민, 이해당사자가 협의해 위기를 극복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8개월 동안 방치된 유역물관리위

유역을 기본으로 한 통합 물관리를 위해 한국은 20여 년의 논의 끝에 2018년 ‘물관리기본법’을 제정하고, 국가물관리위원회와 유역물관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런데 정작 이번 남부지방의 가뭄에는 유역물관리위도 유역물관리종합계획도 보이지 않는다. 2022년 8월 1기 임기가 끝난 유역물관리위는 8개월이 다 되도록 구성되지 않았고, 2022년 6월까지 세워야 하는 유역물관리종합계획은 1년이 다 되도록 방치됐다.

아직도 유역관리는 필요 없고 모든 것을 중앙정부와 국가물관리위원회가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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