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불러낸 ‘4대강 보 활용’의 망령

김규원 기자 2023. 4. 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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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가뭄에 보 활용 지시했지만… 정작 생활·공업 용수는 섬진강에서
영산강 보는 수질 엉망, 물 갇힌 하굿둑 쌀에선 녹조 독성이
2023년 3월 말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4대강 보의 물을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 4대강 보의 물은 수질이 나빠 생활·공업 용수로 쓸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4대강 사업에 따라 영산강에 지어진 승촌보.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간 방치된 4대강 보를 최대한 활용하고, 노후 관로 정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지역 주민과 산단에 물 공급이 끊기지 않도록 하라. 환경부와 관계 부처에 지역 간 댐과 하천의 물길을 연결해 시급한 지역에 우선 공급하라.”(2023년 3월31일 전남 순천 주암조절지댐에서 윤석열 대통령)

“그간 방치된 4대강 보를 적극 활용하라. 환경부와 관계 부처는 댐과 하천의 물길을 연결해 시급한 지역에 물을 우선 공급하고, 어떤 경우에도 생활·공업 용수가 끊기지 않도록 가용 수자원을 총동원하라.”(4월4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

“기후위기로 극심한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재평가를 통해 4대강 보 활용 방안을 적극 강구해달라.”(4월17일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 회동에서 윤 대통령)

세 차례나 4대강 보 활용 지시한 윤 대통령

시작은 2023년 3월31일 순천 주암조절지댐을 방문했을 때다. 이후 대통령은 4월17일까지 18일 동안 세 차례나 가뭄 대책을 지시했다. 그 내용은 △4대강 보 활용 방안 마련 △생활·공업(생공) 용수 공급 중단되지 않게 할 것 △댐과 하천의 물길 연결 등으로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 잇따른 지시는 4대강 보의 물 활용을 둘러싼 오랜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3월31일 전까지 윤석열 정부에서 4대강 보의 물을 가뭄에 활용하는 방안은 2022년 7월18일 환경부 업무보고 때 나온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환경부는 “4대강 보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보의 활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한다. 농번기와 가뭄 등 물 이용이 필요하면 수위를 유지하고, 녹조 발생 등 물 흐름이 필요하면 탄력적으로 개방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윤 대통령이 주암조절지댐을 방문하기 불과 이틀 전인 3월29일 환경부가 발표한 ‘광주·전남 지역 생활·공업 용수 가뭄 대책 추진 상황’ 보도자료에서도 4대강 보의 물을 활용하는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3월31일 이후 환경부의 태도는 급변했다. 사흘 뒤인 4월3일 보도자료에서 환경부는 닷새 전 발표한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한 가지를 덧붙였다. ‘4대강 보 활용’이었다. “4대강 본류의 16개 보를 물그릇으로 최대한 활용해 가뭄에 도움이 되도록 운영하는 방안도 병행 추진한다.” 보 수위를 높여 4대강 영향 구간에 있는 70개의 취수장과 양수장, 71개의 지하수 사용 지역에 생활·공업·농업 용수를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또 이날 보도자료에는 그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보도자료 앞쪽에 가뭄 대책으로 4대강 보 활용을 지시한 대통령의 발언이 들어갔고, 뒤쪽에 4대강 보 활용을 강조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발언이 들어갔다. 그 전 보도자료에선 통상 맨 뒤에 담당 정책관(국장)의 발언만 들어갔다.

4월4일 환경부는 대통령 지시를 반영한 ‘댐-보-하굿둑 연계 운영 추진 계획’을 의결했다. 그 내용은 △가뭄 때 보 수위를 높여 물 부족 해소 △홍수 때 유량을 사전 조절해(늘려) 피해 예방 △녹조 때 방류하고 보 수위를 낮춤 등이었다. 이날 보도자료에도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의 발언이 있다.

이어 한 장관은 4월13일 충남 부여군의 금강 백제보를 방문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인 “댐과 하천의 물길 연결” 사례인 금강 백제보~보령댐 사이 도수로(물 관로)를 살펴보기 위한 자리였다.

광주광역시는 같은 수계에 있는 영산강의 물이 아니라 다른 수계인 섬진강의 물을 생활·공업 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2023년 4월19일 광주시가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전남 화순군 동복호가 상당 부분 말라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애초 대책에 없던 보 활용이 다시 들어가

4대강 보의 물을 가뭄에 활용한다는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의 질주에 환경단체들은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염형철 대표는 “윤 대통령의 주암조절지댐 방문 뒤 환경부가 광주·전남의 가뭄 상황을 과장하고 4대강 보의 물 활용이라는 무지한 정치적 주장을 정책에 끌어들였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주암조절지댐을 방문한 3월31일과 환경부가 대책을 발표한 4월3일 사이인 4월2일 기상청이 발표한 ‘기상 가뭄’ 상황을 보면, 광주·전남의 23개 시·군 가운데 가뭄이 나타난 지역은 10곳이었다. 그런데 모두 가뭄의 네 단계 가운데 가장 낮은 ‘약한 가뭄’(관심) 수준이었다. ‘약한 가뭄’은 가뭄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본격적인 가뭄 상황은 아니다. 이런 ‘약한 가뭄’은 전국의 비로 4월17일 광주·전남 지역에서 나주와 무안 2곳으로 줄었다.

‘4대강 보의 물 활용’이란 측면에서도 정부 대응은 알맹이가 없었다. 이번 광주·전남의 가뭄에서 우려된 상황은 생공 용수의 공급 부족이었는데, 영산강의 2개 보인 승촌보·죽산보는 수질이 나빠 생공 용수의 원수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쓸 수 있더라도 물을 수요 지역의 정수장까지 옮기려면 도수로가 있어야 하는데, 도수로는 아직 계획도 나오지 않았다. 수질이 나쁜 영산강 2개 보의 물은 평소 농업용수로 쓰이지만, 3월 말~4월 초는 본격적인 농사철이 아니어서 수요 자체가 없었다.

전남의 생공 용수를 담당하는 한국수자원공사 영산강섬진강본부의 박종덕 영산강보관리단장도 “이번 가뭄에 대한 단기 대책으로 영산강 2개 보의 물을 활용하는 방안은 없다. 기존에도 영산강 2개 보의 물은 농업용으로 사용했고 생공 용수로는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가뭄 대책에서 생공 용수로 추가 확보된 물은 영산강 덕흥보의 물이었다. 덕흥보는 4대강 사업의 보가 아니다. 광주시는 과거에 상수원으로 사용된 이 덕흥보의 물을 3월 초부터 생공 용수로 하루 3만t씩 취수했다. 4월 말부터는 하루 취수량을 5만t까지 늘릴 계획이다. 임동주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 물운용총괄과장은 “4대강 사업의 영산강 2개 보를 활용하는 방안은 아직 환경부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존에 광주시는 같은 수계의 영산강이 아니라, 다른 수계인 섬진강의 주암댐과 동복댐에서 생공 용수를 100% 취수해왔다.

광주광역시는 2023년 봄 가뭄으로 섬진강의 상수원까지 줄어들자 수질이 좋지 않은 광주시청 부근의 영산강 덕흥보에서 하루 3만t의 물을 취수해 생활·공업 용수로 쓰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영산강 2개 보 물 농업용수로도 의문

영산강 2개 보의 물을 생공 용수로 공급하는 방안은 앞으로도 전혀 없다. 다만 4월3일 보도자료와 4월14일 관련 토론회에서 발표된 대책 가운데 영산강 2개 보의 물과 나주호의 물을 서로 바꿔 쓰는 계획만 나와 있다. 수질이 나쁜 영산강 2개 보의 물을 농업용수로 추가 공급하고, 수질이 더 나은 나주호의 농업용수를 생공 용수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도수로 설치를 전제하는 이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도 아직 나온 게 없다.

환경부의 박재현 물통합정책관은 “가뭄 때 영산강 2개 보를 활용해 농업용수를 확대 공급할 수 있다. 보를 닫아서 수위를 높이면 지류와 지하수의 수위도 함께 상승하기 때문에 더 넓은 지역에서 영산강 물을 농업용수로 쓸 수 있다. 이를 위해 승촌보의 수위를 5.5m에서 6m로 높여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영산강 2개 보의 물을 농업용수로 쓰는 것도 우려하고 있다. 녹조로 오염됐기 때문이다. 2023년 3월13일 낙동강네트워크와 대한하천학회 등의 발표를 보면, 영산강 하굿둑 주변에서 생산된 쌀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프랑스 식품환경노동위생안전청(ANSES)이 제시한 기준의 3배에 이르는 양이었다. 마이크로시스틴은 녹조에 포함된 독소로 청산가리의 600배 이상 독성을 가졌고 뇌와 간, 신경, 생식기에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3년 1월19일 판매 중인 쌀과 무, 배추 130건을 조사한 뒤 모두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특별위원회의 이철재 부위원장은 “환경단체는 녹조가 심각했던 영산강 하굿둑 주변 농산물을 조사했고, 식약처는 대부분 녹조 발생지가 아닌 지역의 농산물을 조사했다. 또 환경단체는 정부에 녹조 독성에 대해 공동 조사를 요구했으나, 정부는 조사 방법에 대한 공동 검증만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류연기 환경부 물환경정책관은 “환경단체와 식약처에서 조사한 결과가 다르게 나왔고, 환경부는 식약처의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현재 객관·중립적인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4대강 사업지 주변의 수돗물과 에어로졸(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입자), 농산물을 공개 검증하자고 환경단체들에 제안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환경단체와 식약처 조사 결과가 다른 이유

환경단체들은 광주·전남의 가뭄을 계기로 ‘기후위기 시대의 가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필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광주시의 가뭄 대책은 다른 수역인 섬진강이 아니라 우리 수역인 영산강을 먼저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또 농업·생활·공업 등 모든 분야에서 물 사용량을 줄이고, 빗물이나 지하수를 확보하며, 물의 재사용을 늘리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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