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말빨의 향연보다 낯선 유기마의 진심에 더 끌린 까닭('놀뭐')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4. 2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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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마? 자유로워 보였던 말들에도 이런 아픔들이(‘놀면 뭐하니?’)
‘놀면 뭐하니?’, 웃기려는 말보다, 말 못하는 말들이 준 뭉클함

[엔터미디어=정덕현] "말 보호센터요?"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그런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유재석은 재차 그렇게 물었다. 어디로 데려가는지 영문도 모른 채 도착한 그곳은 제주 곶자왈 한 가운데 마치 섬처럼 존재하는 말 보호센터로, 우리가 상상하던 그런 말과는 전혀 다른 사연을 가진 말들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버려진 말이거나 퇴역 경주마, 승마장에서 방치된 불용마(미활용 말) 같은 말들이다.

사비를 털어 말 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남훈 대표는 경주마로 살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 말들은 이른바 '렌더링(Rendering)'이라고 "심하게 얘기하면 강아지 육포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5살 미만의 말들이지만 다리 골절 등으로 더 이상 못 뛰게 되면 살처분 되는 게 현실이라고.

그곳에 있는 새끼를 밴 루나(21)와 루티(10)는 제주의 불법도축현장에서 구조된 말이었다. 관광객의 고발로 찾아가 보니 이미 임신한 한 마리는 도축이 되어 있었고, 루나와 루티는 목이 묶인 채로 다음 도축을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구조된 이 말들은 이곳에서 잘 적응해 이제 출산이 임박해 있다고 했다. 김남훈 대표는 새끼들이 잘 나와 나중에 함께 뛰어 다닐 걸 생각하면 불법도축은 반드시 막아야할 일이라고 강변했다.

14개월 된 마야는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죽어 서열 1위 말의 체취를 묻혀 동냥젖으로 자라났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마야는 사람들을 너무 좋아해 쉽게 다가가고 교감을 하는데 익숙했다. 이제 8세가 된 천둥이는 승마장 다섯 군데에서 사람 다섯 명을 떨어뜨려 방출되어 도축 직전에 데려왔는데 알고 보니 훈련을 잘못시킨 사람의 실수 때문이었다고 한다. 본래는 너무나 순둥이라는 것. 29세로 사람나이로는 80세에 해당하는 로렌은 20년 간 마상공연을 하다 방출되어 역시 도축 직전 구출된 말이었다. 여전히 그 나이에도 튼튼하다고 했다.

<놀면 뭐하니?>의 이번 편 부제는 '제주 한 끼'다. 사실 지금의 대중들이라면 제목만 봐도 뭘 할 거라는 걸 상상할 수 있을 게다. 제주라는 공간이 주는 설렘 때문에 여행을 기대했지만 낯선 곳에 데려와 일을 시키는 콘셉트가 그것이다. 그리고 예상 그대로 흘러가는 내용은 최근 <놀면 뭐하니?>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한 끼'가 그나마 최근 나왔던 기획들 중 괜찮게 보인 건, 어디서도 보기 힘들었던 '말 보호센터'라는 곳을 찾아냈고, 특히 푸른 자연 속에서 말과 인간이 자유롭게 더불어 지내는 그 광경을 보여줬다는 것 때문이었다. 일단 '유기견', '유기묘'는 들어봤어도 '유기마'라는 말은 낯설게 느껴졌고, 특히 그 힘차게 달리는 모습이 주는 자유로움과는 정반대로 인간의 '쓸모'라는 기준에 의해 불필요해지면 도축되기도 하는 그런 말의 처지를 알려준 점이 가치 있게 느껴져서다.

사실 이번 회차에서도 출연자들의 강박에 가까운 '말의 향연'과 캐릭터를 활용한 티키타카는 현재의 예능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면이 있어 보였고, 어떤 면에서는 말 보호센터의 김남훈 대표가 보여준 진심과 그곳에서 지내는 말들이 전해주는 먹먹하면서도 아픈 정서를 방해하는 면이 있었다. 웃음에 대한 강박과 그것이 습관처럼 배어있어 늘 해왔던 코드 안에서 어떻게든 웃음을 꺼내놓으려는 모습들이, 모처럼만의 신선한 기획과 소재의 힘을 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차를 타고 이동하며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꽤 오래도록 이어지는 토크들이 지루하게 느껴졌고, 실제 노동을 하면서도 툭툭 들어오는 토크와 케미가 이 기획의 감흥을 떨어뜨리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회차는 그런 유기마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생산성 중심', '쓸모 중심'의 시스템과 거기서 비껴날 때는 소외시키고 도태시키는 비정함을 꼬집는 면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그리 강조되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그래서 이번 '제주 한 끼'편은 최근 대중들의 비판에 직면해 갈 길 몰라 하고 있는 <놀면 뭐하니?>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고 여겨졌다. 웃기려고 하고 애써 예능을 하려는 강박은 이제 '진짜'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에게는 그리 재밌게 다가오지 않는 시대다. 그보다는 하나의 중요한 '진심'을 꺼내놓는 것에 시청자들은 반응한다. 어째서 웃기려는 말의 향연보다 말 못하는 말들의 진심이 더 주목됐는지 제작진은 한 번쯤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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