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송영길…정계은퇴 요구엔 "민족 화해·평화통일 사명"(종합)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22일(현지시간)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돈봉투 조성 및 살포 관련 인지 의혹에는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함구했다. 당 일각의 정계은퇴 요구에 대해서도 '민족 화해와 평화 통일의 사명'을 거론, 이를 일축했다는 해석을 낳았다.
한국인 교민이 운영하는 파리 시내 무역업체 사무실에서 열린 이날 기자회견은 돈봉투 의혹 정국의 한복판에 선 송 전 대표의 '입'에 이목이 쏠린 상황을 반영한듯, 시작 한참 전부터 취재진이 몰려들어 장사진 이뤘다. 카메라가 여러 대 길거리에 서 있자 지나가는 시민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파리에 주재하는 특파원은 물론 서울에서 출장 온 기자 등 20여명으로 가득 찬 사무실은 곳곳에 원단이 쌓여있어 통상 정치인이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장소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송 전 대표는 예고된 시각인 현지시간 오후 4시(한국시간 오후 11시)보다 이른 3시 51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90도로 인사하면서 기자회견을 시작한 송 전 대표는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온 A4 용지 4장 분량의 기자회견문을 꺼내 10분간 읽어 내려갔고, 그 뒤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26분간 회견을 이어갔다.
회견문 낭독에 앞서서는 5분 넘게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패한 이후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선거에서 지고 나서 외국에 나가 있으라는 권유가 많았지만 "선거법 공소시효가 끝나는 6개월을 끝까지 기다렸다"며 그동안 차도, 비서도 없이 백팩을 짊어지고 다니며 많은 시민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이따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회견문을 읽어가던 송 전 대표는 "민주당은 단순한 정당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민생평화를 지키는 보루였다"는 문장을 읽을 때는 목이 메는 듯 잠깐 멈추기도 했다.
1997년 입당한 후 26년간 '사랑하는 민주당'을 떠난 적이 없다면서 당 대표 시절 부동산 논란이 일었던 의원들에게 요구했던 대로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운동권 친구'인 우상호 의원들 당시 의원들에게 '가혹한 요구'를 했다며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송 전 대표는 당내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듯 "민주당은 저의 탈당을 계기로 모든 사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적극적이고 자신있게 대응, 국민의 희망으로 더욱 발전해가기를 기원한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당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정치적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당 원로인사인 유인태 전 의원의 정계은퇴 요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저는 정치를 직업이나 생계로 하지 않았다"면서 "제가 정치를 한 이유는, 학생운동 때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이라는 사명을 갖고 있다는 말씀만 드리겠다"고 응수했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가져온 '사명'을 끄집어내며 정계은퇴론에는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유 전 의원은 지난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송 전 대표가 정계 은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 이래 놓고 더 미련을 가진들 (정계 활동이) 가능하겠느냐"며 "구질구질하면 사람만 더 추하게 마무리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송 전 대표는 기자회견문에서 탈당 결심을 밝히면서도 "1997년 민주당 인천시당 정책실장으로 입당한 이후 26년 동안 한길로 함께 해온 민주당"이라며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입당한 당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정책을 강력히 지지하여 힘을 보태기 위해 변호사 시절 인천시당 당직자로서 정치를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송 전 대표는 검찰 수사에 당당히 응하겠다고 했지만 돈 봉투 의혹에 대해서는 '모르쇠' 입장을 되풀이하며 "돌아가서 하나하나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함구했다.
전대 당시 빼곡한 일정상 "캠프의 일을 일일이 챙기기 어려웠던 사정이었다"고 했고, 윤관석, 이성만 의원 등으로부터 보고 받은 기억도 전혀 없다고 했다.
또한 당시 전대 판세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여론조사에 계속 앞서 있었고, 그래서 나머지 두 후보 분이 후보 단일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송 전 대표는 지난주만 해도 검찰 수사에 대해 "정치적 수사"라고 반발했지만, 이날은 '정치 탄압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할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저의 책임을 국민 앞에 토론하고 사죄하는 자리다. 그 문제는 오늘 발언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에 대한 1심 선고 전날 "검찰이 이것을 기다렸다는 듯 민주당 전당대회 때 저를 도와준 9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송 전 대표는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방문 교수 겸 선임연구원으로 계약을 맺은 파리경영대학원(ESCP) 관계자 등과 면담을 하고 23일 오후 8시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출국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송 전 대표는 기자회견에 앞서 바닥에 벗어놨던 코트와 머플러를 주섬주섬 챙기면서 "모르겠다"고 답한 뒤 사무실을 나갔다.
평소처럼 이날도 백팩을 메고 등장한 송 전 대표는 "파리에 살면서 아내도, 비서도 없이 홀로 생활하고 있어 혼자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된 점을 양해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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