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된 은퇴…김연경은 박수받으며 떠날 수 있을까
샐러리캡·보상선수 문제로 흥국생명 잔류…내년 IOC 선수위원도 노려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2~23 시즌 V리그 여자부 우승은 한국도로공사가 차지했다. 정규리그 3위 팀이 2위 현대건설, 1위 흥국생명을 연거푸 무릎 꿇렸다. 챔피언십시리즈(5전3선승제) 때는 2연패 후 내리 3연승 기적을 만들었다. V리그 역대 최초 기록이다. 한국도로공사의 업셋 우승은 의도치 않게 큰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배구 여제'의 전격 은퇴 연기다.
흥국생명, V리그 챔프전에서 도로공사에 충격 역전패
김연경은 올 시즌 중반 "은퇴 고민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깜짝 속내를 밝혔다. 이후 배구계에서는 흥국생명이 통합우승을 하면 김연경이 은퇴 선언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최고의 자리에서 박수를 받으면서 김연경이 코트를 떠나는 그림이 그려졌다. 시즌 후 김연경은 FA(자유계약) 신분이 되는 터라 걸림돌도 없었다. 그러나 뜻밖에 한국도로공사에 우승을 뺏겼고, 김연경의 거취는 오리무중이 됐다. 챔프전이 끝난 후 김연경의 거취는 배구판 전체를 뒤흔들었다.
4월10일 열린 V리그 시상식에서 김연경은 장고 끝에 결론을 내놨다. 이날 역대 두 번째 기자단 만장일치로 시즌 MVP(개인 통산 5번째)에 뽑힌 후 김연경은 "지금은 조금 더 (배구를) 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통합우승이 가능한 팀에 입단하고 싶다"고도 했다. 준우승의 아픔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08~09 시즌 이후 국내 리그 우승이 없으니 챔피언 자리가 더 탐날 수밖에 없다.
김연경은 국내 리그에서 흥국생명 소속으로 챔피언전 우승을 3차례 경험했다. 신인 시절부터 맹활약하면서 전년도 꼴찌 팀을 프로 리그 출범 첫해(2005년) 통합 우승팀으로 끌어올렸다. 프로 데뷔 첫해에 득점왕·공격상·서브상 등을 휩쓸며 신인왕과 더불어 정규리그와 챔프전 MVP를 동시에 품는 기염을 토했다. 큰 키(192cm)와 천재적인 배구 센스로 프로 입단 전부터 '초고교급' 선수로 평가받던 그였다. 김연경은 오른 무릎 뼛조각 수술을 받은 2006~07 시즌에도 우승을 했고, 일본 프로리그 진출 직전인 2008~09 시즌에도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일본·튀르키예·중국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월드스타로 도약했다.
하지만 해외 리그에서 뛰면서 친정팀인 흥국생명과 앙금이 생겼다. 2012년 튀르키예 페네르바체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흥국생명이 '원소속 구단'의 권리를 주장했기 때문. 임대 신분으로 해외 리그 팀에서 뛰었을 때 해당 기간을 소속 선수로 볼 것이냐, 아니냐로 김연경과 흥국생명은 2년여간 대립했다. 이들의 갈등은 2014년 2월 국제배구연맹(FIVB)이 최종적으로 김연경의 '자유 신분'을 인정하면서 마무리됐다.
해외 리그에서 뛰던 김연경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자 2020년 6월 국내 리그로 돌아왔다. 전 세계가 셧다운된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지속할지 알 수 없었고 도쿄올림픽도 준비해야만 했다. 임의탈퇴 신분으로 해외에 진출했기 때문에 복귀 팀은 정해져 있었다. 흥국생명이었다.
국내 리그 최고 선수들인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와 김연경이 연합했기에 흥국생명은 당연히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돌발 변수가 생겼다. 팀 내부 갈등설이 솔솔 피어나더니 쌍둥이 자매의 학폭 의혹까지 터지면서 팀이 와해된 것. 김연경은 팀 분위기를 추스르며 챔피언전을 치렀지만 GS칼텍스에 무릎 꿇었다. 상처만 남은 복귀에 김연경은 다시 흥국생명을 떠났다. 흥국생명은 2021~22 시즌 리그 6위로 처졌다. 꼴찌가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최하위나 다름없었다. 최장시간 흥국생명을 이끌어온 박미희 감독도 재계약에 실패했다.
애증의 팀 흥국생명과 샐러리캡 최고 대우로 계약
중국 리그에서 잠깐 뛴 김연경은 여자부 역대 최고 대우(1년 총액 7억원)로 1년 만에 흥국생명으로 다시 돌아왔다. 흥국생명에서 한 시즌을 더 뛰어야만 FA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이자 영구 복귀 시즌(2022~23 시즌)도 어수선했다. 현대건설과 1위 싸움을 이어가는 와중에 신임 권순찬 감독과 김여일 단장이 동반 사퇴하는 일이 빚어진 것. 팀 성적과는 별개의 갑작스러운 수뇌부 교체에 흥국생명은 또다시 흔들렸다. 감독대행 체제로 경기를 치르는 등 파행을 거듭하다 이탈리아의 세계적 명장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을 선임한 후에야 정상 궤도를 되찾았다.
FA 자격을 얻은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동행에 물음표가 달린 것도 '흥국생명 선수 김연경'으로 걸어온 길이 꽤 험난했기 때문이다. 흥국생명 외 복수의 구단이 김연경 영입에 관심이 있었지만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과 보상 선수가 문제였다. 2023~24 시즌 V리그 여자부 보수 총액은 28억원(샐러리캡 19억원+옵션캡 6억원+승리수당 3억원). 선수 1명이 받을 수 있는 최고액도 정해져 있는데 연봉의 경우 샐러리캡의 25%, 옵션의 경우 옵션캡의 50%까지만 받을 수 있다.
보상 선수 또한 걸림돌이 됐다. 김연경의 경우 영입할 때 직전 시즌 연봉의 200%와 보호선수 6인 이외 보상 선수 1명, 혹은 김연경의 직전 시즌 연봉의 300%를 지급해야만 했다. 보상금은 차치하고 선수층이 두터운 팀의 경우 자칫 미래 유망주를 뺏길 수 있었다. 선수층이 얕은 페퍼저축은행 정도가 김연경에게 베팅을 할 수 있었는데 최약체 페퍼저축은행은 김연경이 원하는 "통합우승이 가능한 팀"은 아니다. 이래저래 선택지가 좁았던 김연경은 4월16일 흥국생명과 샐러리캡 최고 대우인 총 7억7500만원(연봉 4억7500만원, 옵션 3억원)에 계약했다. 김연경과 친한 미들 블로커 김수지 또한 IBK기업은행에서 흥국생명으로 적을 옮겼다. 김수지는 김연경이 함께 뛰고 싶어 했던 선수다.
김연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도 노리고 있다. 현재 유승민 현 탁구협회장이 IOC 선수위원으로 있는데 임기가 2024 파리올림픽 때 끝난다. 김연경 외에 사격 레전드 진종오가 선수위원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김연경의 은퇴 번복과 흥국생명 잔류는 V리그 흥행에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위드 코로나와 맞물려 김연경 복귀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V리그 여자부 관중은 코로나19 전인 2018~19 시즌(25만164명)보다 무려 38%(34만7267명) 증가했다. 여자부 챔프전 5차전 시청률은 3.40%로 V리그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김연경이 흥국생명과 재계약하면서 배구 열기는 그의 '로드 투 챔피언' 행보와 함께 다음 시즌까지도 이어질 전망이다. 과연 김연경은 2023~24 시즌 우승 트로피와 함께 박수를 받으며 은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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