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아름다움이 진리요, 진리가 아름다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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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과정의 특징 중에는 고교과정에서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학을 잘하는 사람과 문학을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며, 이들에게 각자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다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적어도 처음 이런 구분을 만든 이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수학과 문학이 전혀 다른 종류의 학문이라는 믿음을 포함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구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도 역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근대 과학이 발달하기 전 사람들은 교양으로 삼학(문법, 수사학, 논리학)과 사학(산술, 음악, 기하학, 천문학)을 모두 배웠습니다. 이중 논리학이 수학에 들어간다는 것을 고려하면 산술, 기하학을 포함해 모두 세 과목이 수학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근대과학의 발전 이후, 과학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학문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1959년 영국의 과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찰스 P. 스노우는 "두 문화"라는 제목의 강좌를 통해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소통 단절이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고, 이후 '두 문화'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이 문제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두 분야를 연결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했고, 융합이라는 단어 또한 시대를 풍미한 키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문학과 수학이 서로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7일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란에는 이 문제를 새롭게 바라본 "문학과 수학의 놀라운 관계"라는 책을 최근 출판한 영국의 수학자 새라 하트의 동명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그녀는 이 칼럼에서 문학과 수학이 왜, 그리고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ghwTgMq7YM ]
그녀는 먼저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이 수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 중 하나인 사이클로이드를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마이클 크라이튼 등 수학을 소설 중에 다룬 소설가들을 언급합니다.
물론 문학은 모든 이야기를 다룰 수 있으니 수학을 이야기하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처럼 역사를 가진 수학 문제를 설명하며 그 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갔는지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든 논픽션이 있고,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의 "골드바흐의 추측"같이 수학의 난제 하나를 핵심 소재로 삼은 소설도 있습니다. 최근 상영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도 수학을 어떻게 끌리는 이야기로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지요.
하지만 수학과 문학의 관계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위의, '소재의 자유'가 바로 문학이 가진 보편성이라면, 수학 또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구조, 패턴, 규칙성이라는 보편성입니다. 이 보편성은 논리적 정합성을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신기한 점은 우리가 속한 이 우주가 바로 수학이 설명하는 구조, 패턴, 규칙성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문학은 이 우주에 속한 인간과 자연을 표현하는 것이며, 따라서 문학은 그 자체로 구조, 리듬, 패턴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리듬과 패턴이 완벽할 때 우리는 만족감을 느끼며 우리는 놀라운 수학 정리와 감동적인 문학 소설에서 같은 종류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미감, 바로 아름다움으로 표현됩니다.
뛰어난 과학자가 훌륭한 글솜씨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곧, 좋은 글은 좋은 과학 이론처럼 논리적인 구조와 패턴이 숨어있는 글입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시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가장 적절한 단어를 선택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적절한 구조와 패턴, 단어가 어울릴 때 느끼는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문학과 수학이 가진 이런 특징이 이 두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은 본문에 인용된 소피아 코발레스프카아야의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 시인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더 깊이 볼 줄 알아야 한다… 수학자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19세기 화가인 파울 클레의 다음 말을 정확히 연상시킵니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이다."
당연히 이 말은 문학, 수학, 예술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류의 모든 학문은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을 시도한 이들의 기록입니다. 이를 통해 인류가 가진 지식의 창고는 언제나 더 넓어지고 풍성해져 왔습니다. 이렇게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구조, 리듬, 패턴을 사용하며 이때 우리는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을 따라 움직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가 말한 "아름다움은 진리이고 진리는 아름다움이다(Beuaty is truth, truth is beauty)"는 말의 뜻이겠지요.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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