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英, 中 견제 위해 6세대 스텔스 전투기 공동개발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23. 4. 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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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첨단기술 공유 않는 미국 대신 공유 가능한 영국과 협력… 21세기판 영일동맹 부활
일본, 영국, 이탈리아가 공동개발하는 글로벌 전투항공 프로그램(GCAP)의 6세대 전투기 개념도.[영국 국방부 제공]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항에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제국 연합함대의 기함이던 미카사함이 전시돼 있다.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끌던 일본 연합함대는 1905년 5월 27일 쓰시마 해전에서 제정러시아의 발트함대를 격파하고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만5000t급 전함인 미카사함은 당시 러시아 군함들을 격침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세계 최강 전투기 등장하나

이 전함은 일본이 1898년 대영제국에 주문해 제작됐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사용해 영국에 전함 6척과 장갑 순양함 6척의 건조를 의뢰했다. 미카사함은 당시 최신예 함정이었다. 영국 해군이 보유한 전함보다 성능이 좋아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영국은 1902년 1월 30일 런던에서 일본과 동맹을 체결했고, 같은 해 3월 1일 미카사함을 일본에 넘겼다. 영국이 일본을 적극 후원한 배경에는 러시아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다. 일본은 영국으로부터 최신예 함정과 포탄을 제공받은 덕분에 러시아 발트함대를 궤멸할 수 있었다.

​일본이 다시 영국과 손을 잡았다. 일본, 영국, 이탈리아 3국이 2035년까지 6세대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나선 것이다. 글로벌 전투항공 프로그램(GCAP)으로 불리는 이번 개발계획은 영국과 이탈리아가 추진하던 6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 템페스트(Tempest)와 일본의 차기 전투기 개발계획(F-X 프로그램)을 합친 것이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영국 BAE시스템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등이 참여했다. 6세대 차세대 전투기가 개발되면 일본의 F-2, 영국과 이탈리아의 유로파이터 전투기를 대체할 전망이다.

GCAP는 차세대 전투기 개발을 위한 단순 협력이 아니다.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동맹 차원의 공조다. 일본에선 벌써부터 '21세기판 제로센' 개발계획이라는 말이 나온다. 6세대 전투기는 미국 F-22, F-35와 중국 J-20의 스텔스 기능을 강화하고, 음속의 5배로 날아가는 극초음속 무기와 전자파 공격 등 지향성 에너지 무기를 장착한 차세대 전투기다. 인공지능(AI) 통제를 바탕으로 무인기(드론)와 통합 전술을 운용할 수 있어 세계 최강 전투기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제로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쓰비시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전투기로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할 때 동원됐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최대시속 530㎞에 달하는 빠른 속도와 짧은 선회 반경으로 미국 육해군 항공대의 구형기는 물론, 아시아에 배치된 영국제 스피트파이어 전투기를 대거 격추했다. 당시 미군은 조종사들에게 제로센과 일대일 공중전을 피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1942년 말 미 해군에 신예기가 공급되고, 미 육군도 유럽 전선에 배치했던 신형 전투기(P-38)를 태평양으로 돌리면서 제로센은 추풍낙엽 신세가 됐다. 일본이 패망할 무렵에는 자살특공대 '가미카제'가 사용했던 전투기로 악명을 남겼다. 그럼에도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부 일본인은 지금도 제로센을 '세계 최강 일본군'의 상징으로 꼽는다.

"영일동맹 후 가장 중요한 안보협정"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와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1월 13일 원활화 협정(RAA)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영국 국방부 제공]
미국 방산기업 록히드마틴과 F-X 프로그램을 추진하던 일본이 영국과 합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러시아의 위협 등으로 6세대 전투기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최첨단기술은 공유하지 않는다"는 미국 측 방침에 좌절했다. 록히드마틴은 일본이 F-22, F-35 제작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일본은 급변하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현실을 고려해 6세대 전투기 개발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싶어 한다. 전투기 개발 과정에서 "어느 쪽이 주도권을 쥐느냐"에 대한 국민적 감정도 작용했다. 결국 일본은 기술 공유가 가능한 영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탈퇴(브렉시트)한 이후 프랑스·독일·스페인이 주축인 차세대 전투기 프로젝트에서 제외돼 독자적으로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추진했다. 문제는 6세대 전투기를 독자 개발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타국과 협력할 경우 수출 시장 확보에도 유리하다. 더욱이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글로벌 브리튼'이라는 새로운 대외 전략을 추진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 진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앞선 맥락들을 고려해 영국은 일본을 가장 적합한 동맹국으로 상정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섬나라 영국과 동쪽 끝 섬나라 일본은 과거에 손잡은 적이 있다. 1902년 양국은 동맹을 맺고 당시 남하하던 제정러시아를 견제했다. 러시아에 대항했던 두 나라가 이번에는 중국에 맞서 제2 동맹을 추진하는 셈이다. 실제로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1월 13일 런던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안보조약이라고 할 수 있는 '원활화 협정(RAA)'에 서명했다. RAA는 양국 군대가 상대국에 입국할 때 비자를 면제받고 무기와 탄약을 쉽게 반입할 수 있게 한 조약이다. 이 협정을 맺으면 함정이나 전투기가 상대국에 쉽게 들어갈 수 있어 대규모 군사훈련이 용이하고, 유사시 상호 파병도 가능하다. 당시 수낵 총리는 "1902년 영일동맹 이후 가장 중요한 안보협정"이라고 평가했다. 양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동맹관계를 폐기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서로 총칼을 겨누며 전쟁을 벌였지만 다시 밀월관계를 복원한 것이다.

양국의 6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은 군사는 물론,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도 서로 이익이 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양국은 미국과 함께 서방을 대표하는 전투기를 제작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양국은 이를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군사 협력을 강화해 강력한 외교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이익도 막대하다. 영국은 GCAP가 연평균 2만1000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2050년까지 자국 경제에 262억 파운드(약 42조8000억 원)를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역시 영국과 공조로 6세대 전투기 개발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스텔스, 전자장비, 첨단 레이더, 엔진 기술 등을 습득해 방위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 밴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이 "GCAP는 짧은 연애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결혼이 될 것"이라고 말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다.

영국과 일본의 밀월관계는 더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양국은 2021년 1월 1일부터 발효된 자유무역협정(FTA)인 경제동반자협정(EPA)을 맺은 바 있다. EPA는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세계 주요국과 체결한 첫 무역협정이다.

CPTPP 가입한 영국

주목할 점은 영국이 3월 30일 일본이 주도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공식 가입했다는 것이다. 유럽 국가 중 CPTPP에 가입한 나라는 영국뿐이다. 기존 회원국은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11개국이다. 인구 6500만 여명에 세계 5위 경제대국인 영국이 가입하면서 CPTPP의 영향력도 커졌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CPTPP 회원국의 비중도 12%에서 15%로 확대됐다. 무역 규모도 6조6000억 달러(약 8700조 원)에서 7조8000억 달러(약 1경283조 원)로, 인구도 5억1000만 명에서 5억8000만 명(전 세계 인구의 6.6%)으로 늘어났다.

CPTPP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미국이 추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시작됐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창설된 TPP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탈퇴 결정으로 폐기됐다. 이후 일본은 2018년 12월 TPP의 골조를 이어받은 CPTPP를 만들었다. CPTPP에 가입하려면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데 그간 일본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일본은 미국 대신 영국을 끌어들여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대항하는 세력을 구축했다. 안보와 경제 등 현 국제 정세가 120여 년 전과 비슷한 상황에 21세기판 영일동맹 부활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질서의 축이 될 전망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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