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손자 폭로는 인정 욕구와 가족 사랑의 발로 [+영상]
● 사랑받지 못하는 ‘나’ 자각
● 가치관 혼란과 양심의 가책
● “잘했어” “맞아”에 대한 욕구
● 가족이 구원 받기를 바란 듯
[He+Story] 할아버지 전두환은 학살자
부친인 전재용 씨와 작은아버지 전재만 씨에 대한 비난도 있었다. 자신의 정신과 치료 병력도 숨기지 않고 우울증과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급기야 3월 17일에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도중 마약을 투약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는 3월 27일 마침내 미국에서 귀국해 체포됐고, 석방된 후 3월 31일 광주 5·18 묘역을 참배했다. 무릎을 꿇고 자신의 외투로 묘비를 닦으며 사죄했다. 일각에서는 그의 진정성을 아직 의심하며 더 지켜보자는 태도를 취했으나,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가족은 그를 품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전 씨는 앞으로 사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그야말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중간에 가족의 만류가 있었으나 그는 멈추지 않고 소신대로 행동했다.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에서 그의 심리를 추정, 분석해보고자 한다.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며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했고, 당사자와의 직접 면담이 없었기에 상당 부분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정서적 혼란 겪은 듯
첫째, 그는 왜 가족과 대립했을까. 어린 시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친이 다른 여성과 외도했기에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친모가 암에 걸렸다고 했다. 남편의 외도는 아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암 발병과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다. 즉 그는 우리 아빠가 엄마에게 못되게 굴어서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려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여기고 있음이다. 엄마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과 함께 아빠를 향한 원망과 분노가 커 보인다.일반적으로 유아기 시절 아이는 엄마와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대개 1차 양육자 또는 주된 양육자가 엄마이기에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유아기에는 엄마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고, 실제로 엄마와의 무수한 상호작용을 통해 대인관계의 기본을 쌓는다. 이른바 '안정 애착(secure attachment)'을 형성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아빠와도 유대감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친구들과 다른 어른들과도 대인관계를 맺어나간다. 그렇게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결국 성인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에게 계모가 생겨났다. 새로운 엄마의 등장은 그에게 정서적 혼란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초기의 혼란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그 후 계모와 아이의 관계가 어떻게 돼 가는지는 결국 둘의 상호작용 경험에 좌우된다. 즉 사이가 좋아질 수도, 아니면 나빠질 수도 있음이다.
그가 성장 과정에서 계모와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했는지 그래서 사이가 어땠는지 알 수 없으나, 성인이 되어 자신이 학자금 대출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 거부당한 경험은 계모에 대한 실망과 반감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가 새어머니에게 요청했던 행동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기에 이뤄졌을 것이다. 그런데 거부당했다. '더 이상 엮이기 싫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새어머니는 자신의 딸들에겐 행복을 보장했고 한국의 사립학교를 다니게 하다가 미국에 유학을 보냈다고 했다. 그 전에 이미 전 씨에게 증여됐던 웨어밸리 비상장 주식을 아버지의 지시로 새어머니에게 양도했다고도 했다.
전 씨는 아마 자신이 가족 구성원이 맞을까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보다도 새어머니를 더 챙기는 것으로 여겨졌을 테고, 새어머니는 의붓아들이 아닌 친딸들만 사랑한다는 인식도 들었을 것이다. 혈연관계인 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새 아내를 선택했고, 비(非)혈연관계인 새어머니는 친자식들을 선택했다. 사랑으로 뭉친 가족이 아니라 가족 중 사랑받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니 가족을 옹호하고 지키려는 마음이 사라지면서 역으로 이미 알고 있는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고자 마음먹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부족하고 잘못이 많은 사람들임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함이다. 아버지인 전재용 씨가 언론에 죄송하다면서 아들이 아픈 상태라고 했다. 그러자 아들은 자신이 실제로 아팠을 때 전화 한 통 없던 가족이라면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발언이라고 폄하했다. 그에게 진정 가족의 사랑과 관심이 충분히 주어졌을지 의심해볼 수 있다. 가족이 비록 우리는 많은 사랑과 관심으로 그를 키웠다고 말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그가 어떻게 주관적으로 지각했는지다.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순수함·진정성 느껴져
둘째, 왜 세상에 폭로했을까. 단순히 가족에 대한 혐오나 반감으로 그들의 죄를 폭로했을까. 이미 그 전에 가족에게 죄인이니까 반성하고 사죄하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이러한 부분들이 여전히 궁금하지만, 아마 그는 자신을 그나마 정의롭다고 여겼을 것 같다. 혹은 양심적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는 스스로 죄인이라고 했다. 어둠이라고도 표현했다. 불법적 비자금으로 많은 경제적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왔고, 마약을 투약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그러니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하다. 그의 말대로 가족에게 세뇌돼 5·18은 북한군이 개입된 폭동이고, 할아버지 전두환 씨가 민주화의 아버지라고 믿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성장하면서 진실을 마주하게 됐을 때 그가 느낀 가치관의 혼란과 그것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엄청나게 컸을 것이다. 양심의 가책도 크게 느꼈을 것이다.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의로움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힘이다.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잘못했다고, 우리 가족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정의로움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순수함과 열정, 그리고 정의감을 엿볼 수 있다. 20대의 뜨거운 가슴은 시기적 또는 인간의 발달적 특성이기도 하다.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고, 사적 이익보다는 공적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으나 그는 행하고자 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셋째, 그는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의식적인 차원에서 그는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없다고 했고, 정치에 뜻도 없다고 했다. 그저 잘못을 고하고 앞으로도 사죄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피해 당사자들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국민이 자신을 바보처럼 여기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의 순수함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심리적 동기가 있다. 특히 무의식적 차원에서의 동기가 매우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았어도, 즉 자신의 의식으로 느끼지 못하더라도 해당한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 이러한 무의식적 동기를 해석해 설명해도 본인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부인하는 상황도 생겨난다. 필자가 해석하는 그의 무의식적 동기도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함을 미리 밝힌다.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인정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가족에 대한 양가감정(ambivalent feeling)
사실 이러한 말은 대개 어릴 적 부모님에게서 가장 먼저 듣게 된다. "잘했어" 또는 "맞아"라는 말을 들으면서 아이는 자신의 언행이 올바르다는 확신을 점차 갖게 된다. 비록 "잘못했어"와 "틀렸어"라는 훈육 또는 비난의 말도 들으면서 자라지만, 그래도 대체로 나는 잘하고 있다고 인식하며 자존감을 키워나간다. 그가 어릴 적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잘 거쳤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 그는 사람들에게 '잘했어요. 가족의 잘못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밝히면서 사죄를 구하다니, 용기가 대단합니다'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타당화(validation)'는 그의 낮아진 자존감, 자책감, 정서적 허기감 등을 채울 수 있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따뜻한 말과 행동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느끼면서 정신적 고통도 일부 덜어낼 수 있음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이 옳다고 여기는 순간 인간은 용기를 얻게 되며, 그것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긍정적일 때 행복과 만족감이 극대화될 수 있다.
앞서 다른 하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할 수 있다. 가족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공개적으로 표현한 사람이 어떻게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가족에 대한 '양가감정(ambivalent feeling)'이 있기 때문이다.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 예컨대 부모 자식이나 형제자매 간 또는 연인 간의 관계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공존하거나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도 사랑이라는 긍정적 감정이 미움이라는 부정적 감정보다 더 크기에 우리는 관계를 잘 유지해나가곤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미움의 감정이 절반을 넘어서 더 커지고, 심지어 80~90%의 수준으로 커질 때 그는 상대방에 대해 파괴적으로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변동성은 사실 가변적일 수 있다. 그도 중간에 잠깐 가족에 대한 폭로를 멈추고자 했다. 그러다가 다시 폭로를 이어갔으니 앞으로 또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다. 이제부터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커지거나 연민의 감정이 느껴질 소지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가족 대신에 자신이 용서를 구하고, 그것을 통해 가족도 구원받기를 바랐을 수 있다. 자신이 희생양이 돼 가족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비난이나 피해자들의 원한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내가 나서야 하겠다는 무의식적 외침이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했고, 그것은 현재진행 중이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자신도 지금의 마음가짐이 어느 정도 유지될지 혹은 어떻게 변할지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의 다짐대로 앞으로 마약을 완전하게 끊은 상태에서 결코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신과 양심을 지켜나가면서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말과 행동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그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궁극적으로 그의 언행이 용서와 화합의 밑거름으로 작동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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