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슈퍼매치 첫 판
[골닷컴] 영국 런던에 바넷이라는 5부 클럽이 있다. 옛 홈 경기장인 ‘언더힐 스타디움’이 꽤 유명했다. 본부석을 기준으로 그라운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부석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관중석과 지면이 맞닿는 선이 비스듬했다. 당연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공격하는 팀이 유리하다. 걱정 마시라. 후반전이 되면 진영을 맞바꾸니까.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그런 환경은 상상하기 어렵다. 두 팀은 동일한 환경에서 90분을 소화한다. 그런데 K리그 100번째 슈퍼매치는 그렇지 못했다. 최대 라이벌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승부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스코어라인과 분위기 모두 경사 각도가 ‘언더힐 스타디움’보다 심했다. FC서울은 위에서 아래로 펀치를 휘둘렀고, 수원삼성블루윙즈는 그걸 온몸으로 다 받아냈다. “순위표는 의미가 없다”라는 언론의 단골 멘트가 한없이 무안해지는 토요일 오후였다.
서울 서포터즈는 골이 들어갈 때마다 “수원 강등, 수원 강등”을 연호했다. 득점 내용은 홈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선제 득점은 올 시즌 팀에서 가장 두드러진 나상호의 발끝에서 나왔다. 국가대표 윙어 나상호는 골을 넣곤 파란 팬들 앞에서 두 손을 양쪽 귀에 가져다 댔다. 카타르월드컵 8강전의 리오넬 메시를 보는 듯했다. 나상호는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상대 팬이 가운데 손가락을 보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만”이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현규는 지금 스코틀랜드에 있다.
황의조의 첫 필드골은 모든 ‘검빨’이 행복해 할 수밖에 없는 환희 버튼이었다. 팔로세비치의 세 번째 득점이 터지자 “수원 강등”이란 외침은 최고조에 달했다. 서울 팬들은 뮬리치의 만회골에 “서비스! 서비스!”라고 외치며 환호했다. 슈퍼매치에서 골을 먹고 이렇게 즐거워했던 서포터즈가 있던가? 2023년 첫 슈퍼매치는 이상한 구석이 많은 90분이었다.
서울로서는 100번째 슈퍼매치가 파티였다. 몇 시즌 이어졌던 터널에서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 코로나19 팬데믹에 빼앗겼던 관중 수를 되찾은 성취감, 제일 꼴 보기 싫은 라이벌의 불행을 실컷 비웃을 수 있다는 만족감이 상암벌을 채웠다. 안익수 감독은 “한국 축구사에서 슈퍼매치는 큰 메시지를 주는 경기이고 팬들이 그런 동력을 주셨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빅매치의 ‘빅 승리’는 K리그 서포터즈만이 만끽할 수 있는 특권이다. 득점이나 승리에 대한 언행이 누구보다 신중한 안익수 감독이라도 이날만큼은 활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캡틴아메리카는 코피를 흘리면서도 “온종일 할 수도 있어(I can do this all day)”라고 말하지만, 수원에는 그럴 만한 맷집이 없었다. 1-3 패배라는 결과는 숫자에 불과했다. 경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수원은 심연으로 미끄러져 강하했다. 원정 응원석을 가득 메운 수원 팬들은 4년 만에 슈퍼매치 3만 관중 달성에 일조했음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성적을 책임지는 감독이 떠났고, 나무라기엔 고개 숙인 선수들이 너무 처량해 보였다. 파란 팬들은 클럽 경영을 성토했다. 상암 어느 곳에서도 그 대상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일 리가 없었다.
수원 선수들은 경기 전부터 이미 패한 상태였다. 라이벌전에서 위축된 선수들이 자신감을 지킬 방도는 없었다. 최성용 감독대행은 “부담감과 패배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라고 말했다.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역사는 ‘부담감’ 혹은 ‘패배의식’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한때 ‘2004년 이후만 상대전적으로 쳐야 한다’라며 자신만만해 했던 팀이라면 더 그렇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동병상련을 체험했던 기성용은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어려움을 겪었던 게 그런 부담감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부담감이 이렇게 무섭다.
최성용 감독대행은 금방이라도 굵은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목소리는 작게 떨렸다. 분노보다 좌절감에 가까웠다. 최 감독대행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지금 이런 자원밖에 없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수원의 현재 스쿼드는 수년에 걸친 결과물이다. 최근 선수단 연봉 총액은 리그 안에서 최소한 중간은 간다. 흰 눈 아래서 왕관 한 번 더 써보기를 꿈꿀 만큼은 아니라도 꼴찌로 떨어지거나 슈퍼매치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할 살림살이는 아니다. 수원 내부자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시 평평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내년에도 슈퍼매치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많다.
글, 그림, 사진 = 홍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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