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민주당 386이 '돈봉투' 주역 됐나 [홍영식의 정치판]
“20년 전 새 정치 모토 여의도 진입
도덕적 우월성 저버리고 기득권 취해
구태 정치인들 행태 답습”
최대 위기 맞은 이재명 대표
민주당發 정계 개편 촉발될 수도
21세기에 20세기의 후진적 고무신 선거 같은 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가 살포됐다는 의혹이 정치권에 일파만파를 던져주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정치판을 뒤집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돈을 받은 의원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오면서 내년 총선판을 뒤흔들 대형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무엇보다 한두 명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으로 돈을 살포하고 받은 정황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아직도 돈봉투냐”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 시기에 맞춰 검찰이 국면 전환용 수사를 하고 있다는 변명으로 막기에는 사안의 심각성이 너무 크다. 민주당으로선 그렇지 않아도 이재명 대표부터 사법 리크스로 줄줄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마당이다.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을 부결시키면서 대표 방탄당이란 오명도 뒤집어쓰고 있다. 이 사건마저 무작정 관련 의원들 보호에 나선다면 이중으로 비판을 듣게 되는 처지에 몰릴 수 있다.
당초 검찰의 ‘국면 전환용 기획 수사’, ‘야당 탄압’이라고 반발하던 민주당이 사건 핵심 인물인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진술과 육성 녹음 파일이 생생하게 공개되자 태도를 바꾼 것도 사태의 파장이 심상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공식 사과한 것도 그래서다. 그는 4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프랑스에 머무르고 있는 송영길 전 대표도 결국 24일 귀국한다.
드러나는 정황 구체적, ‘야당 탄압’ 프레임 안 먹혀
민주당이 태도를 바꾼 것은 그 무엇보다 이 사안이 2024년 총선 악재가 될 수 있고 이 대표의 운명과도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야당 탄압’ 프레임을 걸고 나갔다가 검찰 수사 결과 돈봉투 수수가 사실로 드러나면 ‘부패 정당’으로 낙인 찍혀 당이 입을 타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드러나는 정황들이 구체적이어서 더 이상 부인하기도 어렵다.
돈봉투 살포 의혹의 중심엔 윤관석 의원과 이성만 의원이 있다.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현역 의원 수만 10여 명에 달한다. 검찰이 윤·이 의원 압수 수색 영장에 적시한 내용에 따르면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2년 전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영길 당 대표 후보 경선 캠프에서 핵심적인 일을 했던 윤 의원과 이 의원, 이 전 부총장, 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 등이 민주당 현역 의원을 비롯한 수십 명에게 9400만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현역 의원에게는 300만원씩, 지역본부장, 지역상황실장 등에겐 수십만원씩 뿌렸다고 한다. 돈을 마련한 강 감사와 이 전 부총장 등이 돈 봉투 전달 상황을 공유한 내용이 녹음 파일에 자세하게 담겨 있다. 이런 녹음된 파일이 3만여 개나 된다. 언제 또 다른 의혹들이 터져 나올 지 모른다.
돈봉투는 당 대표 경선 투표를 앞두고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 의원 중 인천과 수원의 일부 의원들은 돈을 먼저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들 모두 송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2021년 4월 28일 이 전 부총장과 윤 의원 간의 통화 녹음 파일에는 윤 의원이 “나는 인천(지역구 의원) 둘하고 A의원은 안 주려고 했는데 얘들이 ‘형님, 기왕 하는 김에 우리도 주세요’ 또 그래 가지고 거기서 세 개를 뺏겼어”라고 말하는 내용도 있다. 친이재명계 핵심 의원들에게도 돈봉투가 전달됐다는 설이 나돌면서 민주당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관련 의원들은 탈당해 떳떳하게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도 들린다. 전수조사 얘기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돈봉투의 효과가 대표 경선의 판도를 가를 ‘거위의 깃털’이 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당시 송 후보는 득표율 35.6%로 당선됐다. 송 후보의 경쟁자였던 홍영표 후보는 35.01%로 0.59%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매표 행위가 없었다면 대표 당선자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송 전 대표는 당초 이 전 부총장의 개인 일탈로 몰아갔지만, 전후 상황을 보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송)영길이 형이 ‘안 그래도 내가 조금 처리해 줬어’라고 하더라” 등 이를 뒷받침하는 녹취록이 공개된 데다 대표 당선 뒤 돈봉투 사건의 핵심인 윤 의원을 사무총장, 이 전 부총장을 사무부총장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보은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386들의 도덕성에도 치명상을 입었다. 송 전 대표는 386의 대표 주자로 꼽혀 왔다. 관련 의원들 대부분이 386세대다. 386들이 20여 년 전 새 정치를 모토로 여의도에 진입하면서 내세웠던 도덕적 우월성을 저버리고 기득권에 취해 구태 정치인들의 행태를 답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 386의 아이콘이라고 하는 안희정·김경수 지사도 형사 처분을 받았다. 송 전 대표와 함께 386그룹의 맏형으로 불리는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 돈봉투 사건을 여권이 도·감청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로 급하게 꺼내 들었고, 국면전환용 수사로 의심된다며 검찰을 몰아세웠다.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돈봉투 사건은)86 운동권 출신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철저하게 파산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돈봉투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도덕 불감증은 저변에 만연해 있다. 한 의원은 사석에서 “수천, 수억도 아니고 고작 300만원을 갖고 그러느냐”고 했다고 한다. 친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부끄럽고 죄송하다”면서도 “전체적으로 큰 금액이라고 생각하지만 실무자들의 차비·기름값·식대 정도”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의원은 “역대 전대에서도 이런 수준의 돈 풀기는 있었던 것 아니냐”며 “드러난 게 잘못”이라고 했다. 집단적 부패 불감증이다. 이 대표가 사과했지만 당초 진행하기로 한 내부 조사를 철회하기로 한 것에 대해 사태를 너무나 안이하게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의원들 무더기 사법 처리 때는 당 존립 기반 흔들려
민주당의 딜레마도 크다. 돈봉투 관련 의원들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다. 녹취록 등 구체적인 증거가 나온 마당에 부결시킬 명분이 없다. 하지만 이미 체포 동의안을 부결시킨 이 대표와의 형평성이 문제다. 가결시킨다면 비이재명계에서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요구할 가능성이 낮지 않다.
비명계의 한 의원은 “돈봉투 수수 의원들에 대한 체포 동의안을 가결시키면 당장 이 대표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목소리들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대표는 돈봉투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대선 패배 직후 송 전 대표의 지역구(인천 계양을)를 물려받은 데다 대표가 되는 과정에서 송 전 대표의 도움도 컸다. ‘이심송심’이란 말까지 나왔다”며 “같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와의 이중 잣대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검찰 손에 쥔 판도라 상자 내용과 이 대표의 태도에 따라선 당이 두개로 쪼개지면서 ‘민주당발 정계 개편’을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 체포 동의안 부결을 위해 당 지도부와 친명계 의원들이 똘똘 뭉쳐 놓고선 돈봉투 관련 의원들에겐 체포 동의안을 가결시킨다면 비명계 의원들이 가만 있겠느냐”고 했다. 결국 민주당의 운명은 또다시 검찰 손에 맡겨진 형국이다.
◆왜 현역 의원 1인당 300만원 뿌렸나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뿌려진 돈봉투는 현역 의원 10여 명에게 300만원씩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 1인당 일률적으로 300만원씩 뿌린데 대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보통 대표 경선 때 후보가 지역구로 선거 운동하러 가면 지역구 의원 또는 당협위원장은 100명 정도의 당원을 동원한다. 1인당 여비와 식사값으로 3만원씩 계산하면 300만원이 나온다. 현역 의원이 아닌 지역본부장과 지역상황실장에게는 수고비 명목으로 수십만원씩 준 것 같다.”
홍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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