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불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 "현대음악, 너무 겁내지 마세요"

김용래 2023. 4.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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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피에르 불레즈 창단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서 30년간 활약
26일 예술의전당서 동료들과 내한 공연
"현대음악은 작곡가·연주자가 같이 음악史 새로 쓰는 것이죠"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 파리국립고등음악원 교수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너무 겁내지 마시고 일단 한번 들으러 와보세요. 듣다가 싫으면 나가셔도 괜찮습니다. 그 곡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이 틀린 건 아니니까요."

오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서는 세계 최정상 현대음악 연주단체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에는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CNSMDP)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 단체의 일원으로 활약 중인 강혜선(62)은 피에르 불레즈, 필립 마누리, 진은숙 등 내로라하는 현대음악 거장들의 신작 50곡 이상을 세계 초연한 현대음악 전문 바이올리니스트다.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동료 단원들을 이끌고 잠시 귀국한 그는 2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대음악이 난해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잠시 거둬들이고 편하게 와서 즐겨 달라고 했다.

"음악이 안 좋다면 나가셔도 걱정하지 않을게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도 파리 초연 당시 관객들의 야유로 연주회장이 아수라장이 됐었잖아요. (웃음)"

강 교수가 몸담은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은 1976년 현대음악의 전설 피에르 불레즈(1925~2016)가 창단한 연주단체로, 작년엔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폴라음악상도 받았다.

이번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음악회 무대에서는 강혜선을 포함해 6명의 솔리스트가 불레즈, 스티브 라이히 등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뿐만 아니라 서양음악의 양식에 한국적 가치를 입힌 진은숙, 최우정 등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프로그램 구성도 너무 긴 곡은 빼고 비교적 짧은 곡들로 (지루하지 않게) 재미를 좀 주려고 했어요. 한국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현대음악에 관심을 더 가지실 수 있게끔 그 '맛'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강 교수는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15살 때 일찌감치 프랑스로 건너가 바이올린을 공부해 1993년 파리 오케스트라의 악장 자리까지 올랐다. 동양인 여성 연주자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고전음악을 주로 연주했던 그는 이후 우연히 현대음악의 거장 피에르 불레즈를 만나게 되면서 현대음악 전문 연주자의 길을 30년째 걷고 있다.

"스무살 때쯤 차이콥스키의 곡을 연주하는데 두어 번 하고 나니까 정말 못 하겠더라고요. 죽을 때까지 이렇게 매일 똑같은 곡을 연주한다고 생각하니 '아, 이건 내 길이 아니다' 싶었지요. 또 제가 어려서부터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컸습니다. 그러다가 불레즈를 운명처럼 만나게 된 거죠."

내한하는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단원들(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강혜선) [ⓒEIC /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러 온 불레즈에게 그는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과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당시 앙상블에 빈 자리가 없어서 입단은 불발됐다. 하지만 강혜선은 곧 다시 문을 두드렸고, 국제 콩쿠르를 방불케 하는 혹독한 오디션 끝에 1994년 마침내 이 세계적인 앙상블의 일원이 됐다.

그 후로 불레즈는 2016년 타계할 때까지 강혜선의 음악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승이자 동지로 함께 하게 된다.

"불레즈는 지휘자로서도 굉장했고 작곡가로도 매우 훌륭한 분이죠. 저는 그분으로부터 정말 너무 많이 배웠습니다. 불레즈가 생전에 성질이 안 좋다는 얘기도 좀 있었는데 저는 잘 몰라요. 저랑 잘 맞았던 거죠.(웃음)"

이번 내한 공연에선 불레즈의 6개의 악기를 위한 '파생 1'과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두 곡을 만날 수 있다. 이번에 연주되지는 않지만 불레즈는 생전에 '바이올린과 전자악기를 위한 앙템(Anthemes) II'(1997)라는 곡을 강혜선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작곡가로부터 곡을 헌정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강혜선은 "막중한 책임감"이라고 요약했다.

"그런 곡은 작곡자와 연주자가 매우 깊이 있게 대화하고 공부해야 탄생할 수 있어요. 특히 작곡가는 연주자의 장단점을 꿰뚫고 있죠. 음악사(史)를 작곡자와 연주자가 같이 새로 써나가는 느낌, 그런 게 현대음악을 하는 묘미입니다."

강혜선은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과도 오랜 시간 교류해왔다. 진은숙은 "강혜선의 초인적인 스태미너와 정확성, 무결점의 인토네이션, 수정같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 놀라운 음악적 창조성은 나에겐 계시나 다름 없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현대음악이 어렵지 않냐는 '우문'에 강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어렵죠! 하지만 바로 그게 좋아서 하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이 있어야 음악사(史)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다면 음악의 역사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멈춰 있을 겁니다."

예술의전당 무대의 마지막 곡은 스티브 라이히의 '박수 음악'(Clapping Music)이다. 미니멀리즘 음악을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중 한 명인 라이히는 악기 없이 뮤지션의 반복적이고도 리드미컬한 박수만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을 창조해 냈다.

"내한한 단원들 여섯 명이 이렇게(박수를 치며) 연습도 열심히 했어요. 굉장히 재미있는 작품이지요. 현대음악을 너무 겁내지 마세요."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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