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한명만 낳아도 병역면제’는 어때요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3. 4. 2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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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얼마 전 여권에서 ‘30세 이전에 아이 셋을 낳으면 병역면제’를 저출산대책 아이디어로 언급했다가 혼쭐이 났다. 거의 ‘봉변’에 가까운 반발 여론이 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부자 병역면제법’이란 관점에서 비판했다. 과연 이 시대에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 30세 이전에 애 셋을 낳을 수 있는 젊은이가 있을 것인가. 그것은 현실적으로, 또 정의론적으로 타당한 비판이다.

‘정의’를 잠시 접어두고 ‘현실적’ 관점에서만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 본다. 아무리 병역이 부담스럽다한들 그 대가로 애 셋은 비현실적이다. 그것도 서른 이전에? 베이비부머들이 태어나던, 그러니까 내 부모세대가 아이들을 낳던 시절에도 20대에 애 셋을 낳는 경우가 그렇게 많았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보다 현실적인 병역면제 기준으로 ‘서른 이전에 아이 한명’은 어떤가.

나는 꽤 많은 젊은이들이 솔깃할 것으로 본다. 병역에 따르는 기회비용과 20대 결혼과 육아의 기회비용을 저울질할 것이다. 그중 결혼과 출산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기왕에 하는 거 빨리’를 택할 가능성이 있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젊은이들은 생각을 고쳐먹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기대할 수 있는 직접적인 효과는 결혼 연령을 성큼 앞당긴다는 것이다. 저출산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만혼이다. 한국 청년들이 늦게 결혼하는 이유에는 군 복무로 인한 늦은 사회진출도 포함된다. 서른 중반이 되어 결혼하니 아예 안 낳거나 낳아도 한명만 낳는다. 출산과 양육은 일종의 적응이자 습관이다. 서른 이전에 결혼해서 아이 한명을 낳으면 경험과 여유가 생겨난 서른 이후에 한명 더 낳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기대되는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표준 모델’이 바뀐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속한 사회의 표준상에 영향받기 마련이다. 표준에 속하면 편안해하고 그것을 벗어나면 불안해한다. 오늘날 20대나 30대 초반의 젊은이를 떠올리며 ‘젊은 부모’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그 나이에 결혼하는 사람도 없다. 병역면제를 위해 20대에 출산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면 표준상도 서서히 바뀔 것이다. 20대 출산이 표준이 되면 저출산 문제는 큰 고비를 넘어있을 것이다.

세상의 일은 현실적으로 타당하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정의’의 관점. 20대 결혼과 출산은 확실히 부모의 경제력이 개입하는 문제다. 한국 현실에서 20대에 경제적으로 자립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젊은이는 희소하다. 병역 면제 기준을 아이 셋이 아니라 하나로 하더라도 ‘유전무병 무전유병(有錢無兵 無錢有兵)’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오히려 더 첨예해질 수 있다. 형편이 어지간하면 아들을 군대 대신 장가보내려는 중산층 부모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대는 성인이다. 그 나이에는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결행할 자유의지가 있어야 한다. 주거지원 등 출산 인센티브를 병행하면 부모지원 없이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독립적이고 용감한 청년들이 나올 것이다. 이것이 표준상이 되면 세계적으로 과보호되고 늦된 한국 젊은이들의 독립이 빨라진다. 또한 출산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자들만의 특권이라는 심리적 문턱을 낮춰 ‘일단 낳으면 길은 열린다’는 ‘출산벤처정신’을 북돋울 것이다. 지금 저출산 한국에 필요한 것은 그런 정신 아니겠나.

그러나 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그렇게 면제시켜주고 나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이미 저출산에 따른 병력자원 감소로 인해 현재 50만명대인 국군이 2040년대엔 30만명대 유지가 불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이런 형편에 ‘한 자녀 부모 병역면제’가 실시되면 군자원 고갈은 그야말로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악화할 것이다.

발상을 좀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군 전문가들 중에선 징병제를 통한 대군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현실을 들어 모병제로의 전환을 상수로 거론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그 이상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안보현실에서 모병제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얘기한다. 그러나 그 주장이 논리적으로 옳고 그르고를 떠나 징병할 자원이 없으면 징병제는 안되는 것이다. 한국의 저출산은 징병제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나는 약 20년의 과도기를 상정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완만하게 넘어가는 방안을 지금쯤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방안이라야 군 기계화 속도와 직업 군인 비중을 더 급속하게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걸 그냥 진행할 것이 아니라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즉 양수겸장의 인센티브로 활용해 보자는 것이다. ‘1자녀 아빠 병역면제’는 일부 정의론적 문제만 제외하면 꽤 현실적인 저출산 대책이면서 모병제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비상한 상황은 비상한 수단을 요구하는 법이다. 지금은 아이를 낳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애국인 시대다. 선후로 치면 아이를 낳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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