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우려를 ‘괴담’이라는 여당
일본 정부가 만든 ‘처리수’ 용어 사용
식탁안전 우려 목소리에 “가짜뉴스”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문제를 놓고 수산물 안전 및 해양생태계 파괴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 직후에는 일본 언론이 ‘윤 대통령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해 공식 석상에서 한 번도 “반대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 윤 대통령의 모호한 태도는 ‘대(對)일본 굴욕외교’ 논란과 더불어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4월 14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27%로 6개월 내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와중에 여당인 국민의힘이 오염수 방출 문제를 주제로 최근 개최한 긴급좌담회가 논란의 대열에 합류했다. 국민의힘은 “후쿠시마 관련 괴담과 가짜뉴스를 바로잡고 과학적 대응책을 모색하겠다”며 좌담회 개최 취지를 밝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놓고 제기되는 여러 의혹이나 우려 등을 괴담 내지는 가짜뉴스로 지목하고, 이를 평가절하하는 내용이 좌담회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오염수 방출에 문제 제기를 해온 시민단체 등에선 “국민의힘이 과연 어느 나라 여당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염수를 ‘처리수’라 공식화한 여당
지난 4월 13일 열린 좌담회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 관련 긴급좌담회’. 주목할 부분은 ‘원전 처리수’다. ‘원전 처리수’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대외적으로 만들어낸 말이다. 이들은 온갖 방사능 물질이 가득한 원전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거른 뒤 “안전하다”며 이를 가리켜 ‘원전 처리수’라고 부르고 있다. ‘오염수’와 ‘처리수’는 분명 어감도 다르고, 내포하는 의미도 다르다.
환경단체 등은 오염수를 굳이 처리수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후쿠시마 원전과 원전에서 비롯된 오염수 등의 위험성을 감추기 위한 일본 정부의 의도적인 행위라고 비판한다. 정부도 그간 후쿠시마 오염수를 ‘처리수’라고 공식적으로 표현한 적이 없다. 국내 언론도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최대 국정운영 파트너이자 여당인 국민의힘이 ‘처리수’라는 단어를 전면에 걸고 좌담회를 연 것이다. 이날 좌담회는 주최자인 안병길 의원(부산 서구·동구)을 비롯해 같은당의 박대출 정책위의장, 양금희·신원식·백종헌·최춘식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좌담회는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주제발표는 국책연구기관과 원자력 전문가가 맡았다. 주제발표에선 복잡한 여러 전문용어와 분석자료가 등장했지만, 간단히 다음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는 안전하다”(국책연구기관), “안전한데 언론과 여론이 괴담과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선동하고 있다”(전문가)다.
주제발표에 나선 김경옥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은 오염수 방류 이후 오염물질의 확산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언급했다. 이는 지난 2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한국방재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의한 해양 확산 시뮬레이션’과 같은 자료다. 당초 정부가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다가 어쩐 일인지 막판에 학술대회를 통해 공개돼 뒷말을 낳은 그 자료이기도 하다.
김 연구원은 자료를 통해 국내에서 ALPS로도 제거되지 않는 삼중수소 유입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시뮬레이션 결과 동해 등으로 유입되는 삼중수소의 양이 워낙 미미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등장한 이상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방사능 물질이 국내 바다로 유입됐지만, 기준치보다 낮거나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수치와 유사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아무리 여당이 불렀다 해도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국책연구기관이 와서 오염수 방류 등에 대해 “안전하다”고 단정적으로 확인해주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좌담회에서 나온 발표 내용이 공식 입장인지 각 기관에 문의했다. 그러자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시뮬레이션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는 것을 소개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원전 처리수 방류 이후의 영향은 전적으로 일본 측 자료에만 의존하고 있어 신뢰성 있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라고 밝혔다.
친원전 전문가들 “언론, 여론이 괴담 선동”
좌담회를 주최한 안병길 의원은 개회사에서 “현재 일부 정치권에서는 국민이 아닌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 온갖 괴담을 확산시키고 위협을 과장하면서 후쿠시마 처리수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책연구기관에 이어 주제발표에 나선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정 교수는 오염수 방류가 불러올 수 있는 각종 문제나 의혹 등을 제기한 시민단체나 지방자치단체의 성명, 이를 보도한 언론 등의 내용을 일일이 나열한 뒤 “방류 반대 측을 보면 이유나 논거가 없다”, “반핵단체의 선동적인 논거”,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반대 논리” 등으로 평가했다. 뒤이어 나선 이재기 대한방사선방어학회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장은 “(처리수를) 방류한다고 해서 생선 방사능을 증가시키고 사람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은 전혀 비과학적”이라며 “정치적 대일 갈등 때문에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면 국격만 훼손하고 국민 불안을 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2020년 총선 때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외부인재로 영입된 경력이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총선 공약으로 원전 활성화를 내걸고 정 교수를 포함해 친원전 전문가를 여럿 영입했다. 총선 결과 자유한국당은 참패했고, 원전 전문가는 모두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 이 소장은 과거 한양대 재직 시절부터 국내 대표적인 친원전 학자로 알려져 왔다.
이날 좌담회에서 오염수 방류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나 우려를 제기한 주제발표는 없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주제발표를 보면 그간 오염수 배출에 대해 쓴소리를 해온 한 전문가를 집단적으로 공격하는 행태마저 눈에 띈다”고 말했다.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국제사회가 가장 의혹을 갖는 일본 정부에 대한 신뢰성 문제나 오염수 방출에 따른 방사능 물질의 해양생태계 축적 문제 등은 제대로 거론되지도 않았다”며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듯한 여당의 태도는 결국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도 “국민건강과 식탁안전을 고려해 오염수 방류 문제를 최대한 검증하고 조심하자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하는 건데, 이를 괴담이나 가짜뉴스로 치부한다면 유감”이라며 “결국 판단은 국민이 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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