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오기 전에 전기요금 인상해야…전력 공급 악영향 우려[세종백블]
10여개 전기산업 관련 단체 “한전 적자 가중시 생태계 붕괴”
탄녹위 민간위원 28명 중 23명 전기요금 인상 주장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여당인 국민의힘이 전기요금 인상 결정을 유보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로 자금난에 빠진 한국전력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계에선 냉방 수요가 많은 여름철이 오기 전에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한전에 따르면 자금 조달을 위해 올해 4월 중순까지 발행한 사채 순발행 규모는 7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한전법 개정에 따라 상향된 회사채 발행 한도 중 올해 신규 발행이 가능한 규모(28조2000억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문제는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않는다면 올해도 적자 발생으로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게 되고, 올 연말까지 회사채 발행 한도를 꽉 채워 자금을 조달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올해 4월 중순까지의 회사채 발행 속도와 규모를 고려하면 주주총회가 있는 내년 3월께 24조원 내외의 순발행이 예상된다는 게 한전 내부의 판단이다. 결국 장기채 등 누적 발행액(76조4000억원)까지 더해 내년 3월이면 현행법상 사채 발행 한도를 초과하는 셈이다.
나아가 올해 결산에서의 당기순손실 규모에 따라 한전은 '부분 자본잠식' 또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로 진입할 수도 있다. 국가기간산업을 떠받치는 공기업으로는 초유의 사태를 맞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회가 지난해 말 한전채 발행 한도를 '적립금과 자본금 합(合)의 5배'로 상향 조정한 데 이어 1년여 만에 또다시 법 개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올해 4월 중순까지의 한전채 발행 속도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인 한전의 적자 구조를 고려하면 이런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점을 고려해 산업계는 단계적인 요금 현실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전기협회와 한국전기기술인협회, 한국전기공사협회 등 10여개 전기산업 관련 단체로 구성된 전기관련단체협의회는 지난 18일 "한전의 적자 가중으로 국내 전기산업계는 생태계 붕괴가 우려될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전기요금 정상화가 지연되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전기요금 인상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 민간위원들도 지난 21일 입장문을 통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차질 없는 달성과 에너지시장 왜곡 시정을 위해 한전의 강력한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 전기요금 인상이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간위원 응답자 28명 가운데 23명이 이러한 전기요금 인상 주장에 동의했다고 부연했다.
한전은 요금 인상 결정에 앞서 재무구조를 개선할 고강도 자구책부터 내놓으라는 여당의 압박에 지난 21일 정승일 사장 명의로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인건비 감축, 조직 인력 혁신,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및 국민 편익 제고 방안이 포함된 추가 대책을 조속한 시일 내 마련·발표하겠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한전이 1982년 주식회사 설립 이후 사장 명의로 전기요금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정 사장은 입장문을 통해 "한전 및 발전 6사를 포함한 전력그룹사(10개)는 전기요금 조정에 앞서 국민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20조원 이상의 재정건전화계획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일부 언론이 문제를 제기한 한전 일부 직원 가족의 태양광사업 영위, 한국에너지공대 업무진단 결과 등에 대해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감사원 및 산업통상자원부 감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며 "그 결과에 따라 철저한 자정 조치를 빠른 시일 내 강구하겠다"고 했다.
한전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력 판매가격이 전력 구입가격에 현저히 미달하고 있어 요금 조정이 지연될 경우 전력의 안정적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또 한전채 발행 증가로 인한 금융시장 왜곡, 에너지산업 생태계 불안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며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전은 정부·여당에 제출한 재정건전화계획 이외에 임직원들의 임금인상분 반납을 검토 중이다. 한전이 고강도 자구책을 추가로 내놓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하며 요금 인상 필요성을 호소함에 따라 향후 당정 논의에서 전기·가스요금의 인상 시기와 폭이 결정될지 주목된다.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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