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놓인 '비대면 진료'…초진·재진 둘러싼 갈등도 증폭

고미혜 2023. 4. 2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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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허용 중단 앞두고 법제화 추진…허용 범위 등 놓고 논란
플랫폼업계 "초진부터 허용해야" vs 의약계 "비대면 초진 위험"
원격의료 (PG) [김민아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비대면 진료'를 둘러싼 의료계 안팎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한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를 상시 허용하기 위한 법제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허용 범위 등을 놓고 대립이 거세다.

'의료 접근성'과 '안전성'이라는 가치가 부딪치며 이어진 오랜 논쟁이 최근 의료계를 넘어 비대면 진료 플랫폼업계의 이해관계까지 얽혀 더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오랜 난제 비대면 진료…한시 허용 종료 앞두고 갈림길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나 화상을 통해 상담하고 약을 처방하는 비대면 진료는 해묵은 논쟁의 대상이었다.

정부는 정보통신 기기를 활용해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원격의료 도입을 여러 차례 시도하며 시범사업까지 벌였지만, 의사단체 등은 단체행동까지 불사하며 반대해왔다. 비대면 진료가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의료 질서를 어지럽힐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난제처럼 보였던 비대면 진료의 도입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의외의 돌파구를 만났다.

정부는 2020년 2월부터 감염 방지를 위해 한시적으로 유무선 전화, 화상통신을 활용한 상담과 처방을 허용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후 3년간 1천379만 명이 총 3천661만 회(코로나19 재택치료 포함) 비대면 진료를 이용했다.

비대면 진료 한시 허용 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코로나19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 이상일 때만 허용하기로 돼 있는데, 이르면 내달 중에 세계보건기구(WHO)의 비상사태 해제와 이에 따른 경보 단계 하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상회복 이후에도 비대면 진료를 이어갈 수 있게 제도화를 추진 중이다. 현재 국회에 5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으며, 법안 처리 전에 한시 허용이 종료될 경우 시범사업으로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아직 시범사업이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는 이대로 중단될지, 제도로 안착할지, 제도화되면 어느 수준일지 기로에 놓여있다.

'재진 한정' 놓고 플랫폼업계 반발

지금까지 비대면 진료를 놓고 주로 충돌해온 것은 정부와 의사단체였는데, 최근 양측은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놓고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았다.

지난 2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 대면 진료 원칙하에서 ▲ 비대면 진료를 보조적으로 활용하고 ▲ 재진 환자와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실시하되 ▲ 비대면 진료 전담 의료기관은 금지한다는 제도화 추진 원칙에 합의했다.

제도화까지의 큰 산을 넘은 셈이지만, 산은 또 있었다.

비대면 진료 한시 허용 이후 잇따라 시장에 진입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업체들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보편적 의료체계 촉구 성명 발표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스위치22에서 열린 보편적 의료체계 촉구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성명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15 pdj6635@yna.co.kr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 산하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를 중심으로 모인 업체들은 정부와 의협의 합의안, 그리고 비대면 진료 관련 법안 대부분이 재진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다는 데 반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뤄진 비대면 진료의 대다수가 초진이기 때문에 재진으로만 한정할 경우 업체 상당수가 고사한다는 것이다. 한시 허용 기간 초진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도 입증이 됐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코스포는 지금처럼 초진, 재진 구분 없이 국민 누구나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며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유력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동참 속에 서명자는 10만 명을 넘겼다.

의사단체들은 플랫폼업계가 비대면 진료의 잠재적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초진까지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것은 국민이 안전하게 진료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협, 대한약사회 등 보건의약 5개 단체는 지난 21일 공동성명을 내고 원산협이 "비대면 초진이라는 부적절한 방향성을 가지고 수익을 창출하려 한다"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고도 표현했다.

플랫폼업계와 정부, 의료계는 서로 다른 통계를 근거로 들며 충돌하기도 했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건수 중 초진 비율이 18.5%였다고 밝혔으나 플랫폼업계는 99%가 초진이라고 주장한다. 업계는 주요 7개국(G7) 대부분이 비대면 초진을 허용한다고 주장했으나 보건의약 단체는 일부 국가에서만 허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화로 코로나19 확진자 상태 모니터링하는 의료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약 배송·영리화·수가…또 다른 쟁점들

초진 허용 여부 외에도 비대면 진료를 둘러싼 논란은 더 있다.

약사단체의 경우 약물 오남용 우려 등을 들어 비대면 진료를 통한 약 배송에 반대하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정부가 약사회와의 협의 과정 없이 약 배송을 기정사실화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과거 시민단체 등이 원격의료 도입을 반대하며 내세운 주된 논점 중 하나였던 의료 영리화 우려 목소리도 여전하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한국에서는 영리기업이 의료로 수익을 내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이것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하며, 무상의료운동본부도 "원격의료는 기업의 의료 진출을 위한 플랫폼 민영화"라고 반대한다.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할 경우 수가(의료행위의 대가) 결정 과정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한시 허용되고 있는 비대면 진료의 수가는 전화 상담 관리료 30%가 더해져 기존 외래 진료의 130%로 책정돼 있다.

의료계는 비대면 진료 상시 허용 이후에도 대면 진료보다 높은 수가가 책정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 밖에서는 공간의 제약 등이 적은 비대면 진료의 수가가 더 낮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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