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왕' 일당 61명, 국내 첫 '전세사기 범죄조직' 될까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경찰이 380억원대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이른바 '건축왕' 일당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죄명이 적용돼 법정에서도 인정되면 건축왕 일당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세사기 범죄조직이 된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건축업자 A(61)씨 일당 61명의 전세사기 혐의 액수는 현재까지 388억원이다. 피해자 수는 481명이다.
그러나 경찰이 접수한 전체 고소 건수가 944건에 달해 앞으로 혐의 액수와 피해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20일 전국 수사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조직적인 전세사기에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가 있자마자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A씨 일당을 범죄조직으로 볼 수 있는지를 따지기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최근 피해자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전세사기가 큰 사회 문제로 불거진 만큼 경찰 내부에서는 엄벌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A씨 일당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형법 114조의 범죄단체조직죄는 사형, 무기징역, 4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려고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해 구성원으로 활동한 경우 적용할 수 있다.
유죄가 인정되면 조직 내 지위와 상관없이 조직원 모두 같은 형량으로 처벌받는다. 예를 들어 계좌를 빌려주는 등 사기 범행을 직접 하지 않은 가담자에게도 사기범과 같은 형량을 선고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여러 명이 동일한 목적을 갖고 범죄 행위를 했기 때문에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범죄단체조직죄는 단순하게 여러 명이 모여 함께 범죄를 저질렀다고 무작정 적용할 수 있는 혐의는 아니다.
지금까지 이른바 '조폭'으로 불리는 폭력조직에 주로 적용됐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이나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7)씨 등도 이 죄로 처벌받았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범죄단체는 내부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통솔체계, 특정 다수, 동일한 범행 목적, 시간적 계속성 등을 요건으로 갖춰야 한다.
경찰은 건축왕 A씨가 정점에서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원 등과 함께 조직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고 이들 사이의 '통솔 체계'를 집중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건축왕 일당의 일부 혐의를 먼저 기소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A씨는 2010년 설립한 단체에서 회장을 맡아 업무 전반을 총괄했고, '기획공무팀', '중개팀', '주택관리팀' 등을 두고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까지 조직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
A씨는 매주 중개팀 직원들과 회의하며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들의 전세계약 체결 현황을 보고 받고 전세보증금 액수를 직접 결정했고, 적극적으로 계약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공범들에게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내 '회사 사정이 좋지 않으니 전셋집을 신규 계약하거나 재계약할 때 금액을 올리라'고 지시했다.
A씨 일당이 법정에서 범죄단체로 인정되면 전세사기 조직으로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최근 인천지검 부천지청이 '전세자금 대출사기' 조직을 적발해 범죄단체조직죄 등으로 기소했으나 세입자들로부터 직접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사기 조직이 형법상 범죄단체로 인정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건축왕 일당을 범죄단체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 변호사는 "전세사기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A씨 일당의 사기 혐의부터 입증하는 게 우선"이라며 "사기가 입증돼도 범죄단체 구성 시점을 언제로 볼 건지와 누구까지 조직원을 볼 건지를 또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A씨 일당의 조직 체계가 조폭과 같이 엄격하지 않더라도 범행에 가담한 각자가 역할을 분담해 수행하면서 오직 전세사기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다같이 조직 속에서 범행했다면 범죄단체로 볼 여지가 크다"고 예상했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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